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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기행 (충청도)/아산, 천안

천안 광덕산성 : 신라군 드디어 만뢰지맥을 넘어 병천 일대에 교두보를 쌓다 동성산성 답사를 마치고 만뢰산성 가는 길로 애마를 몰았다. 6번 시도로를 타고 광기천을 거슬러 오른다. 천안 병천면 봉항리 석항마을에 이르러 더 이상 만뢰지맥을 넘는 아스팔트 길은 없다. 석항 마을 뒤 시멘트 도로를 따라 석항소류지로 오른다. 더 이상 애마가 오를 수 있는 길은 없다. 애마가 멈춘 곳. 정면이 바로 만뢰산성 부근이다. 이 계곡을 타고 신라군은 언제든지 광기천 일대를 주름잡고 병천까지 즉 남부여의 대목악군을 언제든지 삼킬 기세다. 따라서 남부여는 동성산성, 도원산성과는 별도로 작성산성이 필요했다. 광덕산성과 이곳 만뢰산성에서 동시에 내려오려는 신라군을 막기 위해서는 작성산성이 필요했던 것이다.   계곡을 내려오는 길   계곡을 오르는 길. 계곡 사이로 보이는 산이 만뢰지맥이다. 신라의 만뢰.. 더보기
천안 동성산성 : 신라 신주의 군대를 막던 구리 성문은 어디에 있을까? 에 따르면, 김유신의 할아버지 김무력은 신주 방면 행군 총관이 되어 일찌기 군사 1만 여명을 거느리고 백제왕과 그 장수 4명을 사로잡고 1만 여명의 목을 벤 일이 있고, 김유신의 아버지 김서현은 만노군 태수가 되어 갈문왕 입종의 아들인 숙흘종의 딸 만명을 데리고 함께 가버렸다. 당시 신라 골품제하에서 가야 왕족 출신임을 감안하여 진골로 대우받았던 김서현과 신라의 완전한 성골 가문인 만명의 결합은 야합으로 비난받았다. 야합은 말 그대로 들에서 개들처럼 남녀가 교합하는 것이다. 김서현의 노골적인 정략 결혼에 대해 신라 조정과 언론은 그야말로 야합이라며 비난을 금치 않았다. 이러한 비난과 신라 왕실 및 귀족들의 천대에도 굴하지 않고 김서현은 만명과의 정략 결혼을 일 방편으로 하고 아버지 김무력처럼 신라 국경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