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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 고리산성

대전 갈현성 더보기
관산성 전쟁에 대하여 관산성 전쟁 1) 관산성 전쟁에 대한 반도와 열도의 현존 기록 진흥왕 15년(554) A. 백제의 왕인 명농(明襛)이 가량(加良)과 함께 와서 관산성(管山城)을 공격하였다. 군주(軍主)인 각간(角干) 우덕(于德)과 이찬(伊湌) 탐지(耽知) 등이 맞서 싸웠으나 전세가 불리하였다. B. 신주(新州)의 군주인 김무력(金武力)이 주(州)의 군사를 이끌고 나아가 교전하였는데, 비장(裨將)인 삼년산군(三年山郡)의 고간(高干) 도도(都刀)가 급히 쳐서 백제왕을 죽였다. C. 이에 모든 군사가 승리의 기세를 타고 크게 이겨서 좌평(佐平) 네 명과 군사 2만 9천 6백 명의 목을 베었고, 한 마리의 말도 돌아간 것이 없었다. 문무대왕은 이미 영공(英公)과 함께 평양을 격파하고 돌아오며 남한주(南漢州)에 이르러 여러 신하.. 더보기
옥천 환산성(고리산성) : 남부여 동부전선 전방사령부를 가다 어쩌면 관산성 전쟁은 신라 중심의 역사 서술에서 나온 말일 수도 있다. 남부여 성왕대의 관산성 전쟁 승리와 삼한 통일을 이룩한 신라의 입장에서 보면 '환산성 전쟁' 보다는 '관산성 전쟁'이라고 명명하고 싶은게 당연할 지 모르겠다. 남부여의 근간이 흔들린 '관산성 전쟁'의 남부여 전방사령부가 위치했을 환산성을 답사하기로 마음먹었다. 옥천읍에서 4번 국도를 타고 삼양교 부근에 들어서면 산성의 트라이앵글(관산성, 서산성, 삼양리산성)이 나온다. 이곳이 바로 고대 신라의 최전방 서부전선이다. 적들이 이 트라이앵글 지역으로 들어오기라도 한다면 세방향에서 화살들이 비처럼 쏟아져 바로 고슴도치 신세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곳을 호시탐탐 노려보던 곳이 있다. 바로 옥천군 군북면 소재 노고산과 고리산이다. 이곳 노고성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