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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기행/백제 산성

서천 남산성 : 백제 설림군의 치소

<2022년 3월 19일>

 

<표제사진 - 서천 남산성 서문터>

 

좌측길로

 

 

 

<2008년 11월 29일>

 

서천 남산성은 서천읍 남쪽 구릉을 휘감은 테뫼식 산성으로 금강과 서해가 만나는 곳을 응시하고 있다. 만약 금강 입구로 적군의 선단이 들어오기라도 한다면 맨 먼저 봉화를 올려 수도인 사비성으로 전달하였을 것이다. 남부여 수도인 사비성이 나당연합군에게 함락당하고 웅진성에서 의자왕이 포로가 된다. 이후 당나라군이 의자왕을 비롯 12,000여명의 남부여인 포로를 당나라 장안으로 압송해 갈 때, 남부여 백성들이 의자왕이 마지막 가는 길을 보기 위해 이곳 남산성에 올랐다고 한다. 아! 남부여의 비극이여! 이때 남부여 유민들이 부른 노래가 바로 '산유화가'이다.

 

 

 남산성 정상에서 바라본 서해

 

남산성 북쪽의 평야, 고대에는 이곳도 바다였다고 한다. 그런 연고로 고대 남산성은 서해로 튀어나온 반도였다고 한다.

 

 남산성 서문터

 

 남산성 서문터2

 

 낙조로 물들고 있는 금강 입구, 의자왕을 보내며 남부여 유민들이 불렀을 산유화가(山有花歌)가 절로 떠오른다.

 

지금은 서해안 일대에서 촌로들의 구전이나 농요로서 전해지고 있다.  다음이 산유화가의 가사다.

궁야평 너른 들에/ 논두 많구 밭두 많다/ 씨뿌리고 모 욍겨서/ 충실허니 가꾸어서/ 성실하게 맺어 보세//

산유화야 산유화야/ 오초(吳楚) 동남(東南) 가는 배는/ 순풍에 돛을 달고/  북얼 둥둥 울리면서/  어기여차 저어가지/  원포귀범(遠浦歸帆)이 이 아니냐//

산유화야 산유화야/  이런 말이 웬말이냐/  용머리를 생각허면/ 구룡포(九龍浦)에 버렸으니/ 슬프구나 어와 벗님/ 구국충성 다 못했네//

산유화야 산유화야/ 입포에 남당산은/ 어이그리 유정턴고/ 매년 팔월 십륙일은/ 왼 아낙네 다 모인다/ 무슨 모의 있다던고//

산유화야 산유화야/ 사비강 맑은 물에 / 고기 잡는 어옹덜아/ 온갖 고기 다 잡어두/  경치 일랑은 낚지 마소/ 강산 풍경 좋을시고//

에-헤-에헤야-헤헤/에-헤-에여루 사-사-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