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11일>
~ 죽령루트(1)에서 계속 ~
송평교. 무섬마을에서 내성천과 서천이 합강하는 지점을 지나면 송평교가 나온다. 송평교는 서천을 지나는 다리이다. 서천은 소백산과 죽령 일대에서 발원한 물들이 영주 시내를 지나 무섬마을 북쪽에서 내성천에 합류한다. 서천을 거슬로 북쪽으로 올라가는 길이 죽령루트이다.
영주시 의회 건물 뒤 철탄산 등산 안내도
철탄산은 영주의 진산이다. 이곳에는 성재산성이 있다. 성재산성은 고구려 나이군의 치소로 추정된다. 날씨도 궂고 시간상 오늘은 죽령루트를 주마간산식으로 훑을 요량으로 답사를 다음을 기약한다. 다만 서천 동쪽의 철탄산 능선에 고구려의 나이군 치소로 추정되는 성재산성(혹은 철탄산성)이 있었음을 확인한다.
영주 서천교 부근(영주 정수장 맞은 편)에서 영주 시내의 서쪽을 남북으로 흐르는 서천과 그 동쪽의 철탄산과 성재산의 능선을 조망하다.
정수장 뒤로 성재산성이 보인다.
서천교 부근으로 철탄산 일 능선이 서쪽으로 가지를 뻗어 왔다.
서천교와 그 동쪽의 영주 시내.
서천을 따라 북주하는 것이 죽령루트이다.
가흥삼거리 부근에서 직진하여 36번 국도를 타면 서천변을 따라 풍기읍을 갈 수 있다. 북으로 멀리 백두대간(소백산 부근)이 시야에 들어온다.
서천 변 36번 국도 상에서 바라 본 북방의 백두대간(죽령과 그 서쪽). 신라군이 고구려군을 구축하고 이곳을 지나갈 때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남쪽을 바라보다. 서천변은 나이군의 옥토였을 것이다. 경북 북부의 산악지대에 이러한 평원이 펼쳐저 있다니 신기하다. 이를 두고 신라와 고구려간에 혈전을 벌인 것이 이해가 된다.
36번 국도를 타고 서천변을 따라 가다 보면 안정면 소재지가 나온다. 이곳에서 안정교 부근에 이르면 섬 같은 마을이 하나 나온다. 서천의 상류를 이루는 남원천과 금계천이 합강하는 북쪽 지점에 풍기읍 동부리 토성마을이 있다. 토성마을에는 이름 그대로 오래된 토성이 하나 있다. 이 토성은 동쪽의 금계천과 서쪽의 남원천 사이에 있어 두 하천을 자연해자로 한 평지의 철옹성이었다. 나려간에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을 때 이 토성은 고구려에 많은 힘을 실어주었을 것이다. 이곳이 지금의 영주시 풍기읍 일대로 추정되는 고구려 이벌지현의 치소인지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이 토성의 위치로 보건대 고구려 토성임에는 틀림없을 것 같다. 당시 신라군이 이 토성을 목도했을 때 어떤 생각을 했을까? 저 곳을 점령할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이 들었을 것이다. 이곳은 말 그대로 수성(水城)이다. 지금의 영주시 북쪽과 풍기읍 남쪽의 서천 일대는 옥토이다. 이 옥토를 갖느냐 마느냐가 이곳 동부리 토성의 싸움에 달려있었을 것이다.
토성노인회관
토성교 부근. 금계천을 지난다.
금계천 상류
금계천 하류
토성교 지나 금계천 동쪽에서 바라본 토성의 남단부.
금계천은 동쪽의 자연해자이다.
토성의 중심부
토성의 북단
북쪽에서 남쪽을 향해 바라 본 토성의 북단
필자는 동부리 토성 부근에서 죽령루트에 대한 답사를 마무리짓기로 하였다. 대신 남는 시간에 풍기읍 동쪽 순흥면 읍내리 벽화고분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벽화고분은 고구려 잔존 유적이다. 순흥면 일대는 고구려 급벌산군의 치소가 있던 곳으로 추정된다. 경북 중부 일대에 산포해 있는 적석유구와 이곳 백두대간 남쪽의 벽화고분은 고구려가 이곳까지 영역을 넓힌 사실을 증거하는 유적들이다. 준비된 것은 아니지만 어제 새삼 죽령루트를 밟아 보겠다는 결심은 잘한 것 같다. 죽령루트 주변 곳곳에서 고구려의 냄새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정표
벽화고분(모형)이 모습을 드러낸다.
안내문
입구
이국적인 고분 지킴이. 힘센 장사(力士)라고 한다. 중앙아시아 계통의 장사이다.
실제 벽화고분 가는 길
고분이 산재해 있다.
비봉산 등산로인가? 고분군을 표시해둔 영역인가?
~ 죽령루트(3)으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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