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5일>
<표지사진 - 만동묘 전경>
주자 이래 구곡에 거처한다는 것은 유학자들의 자존감에서 기인한다. 특히 유교국가 조선에서는 공자보다 추앙받는 주자의 삶을 그대로 모방하려는 성리학자의 외형적 자만심의 발로에서 구곡에 거처한 듯 보인다.
송자로까지 불리며 조선 최고의 성리학자로 군림한 우암 송시열 또한 구곡의 유혹을 벗어나지는 못하였으랴?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첨예한 현실 정치에 참여하고도 말년에는 구곡에 거처하며 처사로 자처하기를 즐겨하였다. 사화를 벌여 무수한 선비를 죽이고도 구곡의 처사로 명호가 남기를 바란다면 허영심을 넘어 너무 뻔뻔한 행태는 아닐까? 주자가 구곡에 거처한 내면은 성찰하지 못하고 주자의 외형적 허영에만 절어 살았던 조선의 성리학자들에게 구곡은 현실 정치의 명분을 추구하는 토대요, 무기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너무도 아름다운 괴산 화양동 구곡도 그렇게 우암에게 이용되었다. 더한 것은 구곡에 만동묘까지 세워 비장한 사실일 것이다. 즉 그는 끝내 처사로 살지 못하고 국내 정치를 위해 외교의 문제를 이토록 아름다운 화양동 구곡까지 끌어들인 것이다.
청나라가 번성할 무렵 명나라 황제의 신위를 화양구곡에 숨기고 의리를 내세워 전제정치를 구사한다. 명에 대한 의리를 내세워 국내에서는 서인 전제 정치를 주창하였고, 그 불꽃은 구곡에 숨겨둔 만동묘에 있다. 청나라에 기운 듯한 소현세자를 독살한 명분도 다 이놈의 의리 때문이었다.
만동묘는 사대의 정수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상은 사대와는 전혀 무관하다. 흔히 우리가 사대주의라고 하면 대국을 섬기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명나라는 이미 사라진 제국이다. 적어도 만동묘가 사대주의의 기념물로 남으려면 당시 명나라가 존속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라진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내세우는 것이 사대와 무관하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서인들의 친명주의는 사대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다. 실상은 서인들이 국내정치를 독점하기 위해 내세운 명분일 뿐이다. 백성을 수탈하고 정적들을 제거하기 위해 친명주의를 내세웠을 뿐이다. 친명주의는 사대주의가 아니라 복고주의이고 만동묘는 그 기념물이다. 겉으로는 청나라를 받드는 척하면서 청나라의 눈을 피해 교묘하게 화양 구곡에 만동묘를 비장하고 백성위에 군림한 서인들의 행태를 보노라면 박쥐와 다를 바 없다.
그럼 만동묘의 존재가 청나라에 알려지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서인들의 이중적 행태에 분노한 백성이나 남인들은 몰래 청나라 조정에도 알렸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청나라는 알고도 이를 조용히 눈감아줬다. 현실화되지 않은 위험에 무리해서 조선을 압박할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 서인들은 의리를 지키지도 못했다. 명나라 부활의 움직임이 일었을 때에도 조선은 파병하지 않았다. 이는 그들의 저의가 어디에 있었는가를 알려주고 있다.
지금도 사대주의는 판을 치고 있다. 친일이니 친미니 친중이니 하는 것이 다 사대주의다. 과거 일제 하에서는 친일이 사대주의였다. 하지만 지금은 친미나 친중이 사대주의다. 그런데 우암이 만동묘를 세운 것은 지금 친미나 친중을 버리고 마치 친일을 주창하는 논리와 비슷하다.
즉 지금의 논리로 보면 '식민지근대화론'과 비슷하다. 우리나라가 근대화한 것에 일제 식민지의 공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는 논리다. 물론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이 무조건 친일파는 아니다. 경제사학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철도 깔고, 다리 놓고, 건물 짓고 했으니 근대화에 일조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누구 좋자고 한 것인가? 또한 대한제국이 식민지로 전락하지 않았다면 그 정도는 했을 것이다. 이미 고종황제는 전기도 놓고 경인선을 부설하지 않았는가? 식민지근대화론은 당연한 현상을 학설로 주창하니 그 저의가 의심스럽다.
사대주의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대주의는 리얼리즘이다. 그들은 생존에 유리한 사대주의를 주창하는 것이다. 솔직히 까놓고 말하면 대국의 이해를 완전히 무시하고 소국이 생존할 방안은 없다. 소국 입장에서 대국을 이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을 이용하려면 그들과 친밀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보통 사대주의자들은 기회주의자이기 십상이다. 사대를 사익에 이용하는 것이다.
송시열도 지금의 사대주의자들을 본다면 혀를 끌끌 찰 것이 분명하다.
<2017년 1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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