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13일>
신라는 소지마립간 8년(AD 486년)에 삼년산성과 굴산성을 개축하였다. 신라가 상주에서 백두대간을 넘어 처음 개척한 군이 바로 삼년산군이다. 삼년산군의 치소는 지금의 보은군 보은읍 성주리의 삼년성이다. 삼년성은 백제가 초축하였고, 소지마립간대에 이르러 신라가 백두대간을 넘어며 개축한 것이다.
<삼국사기 잡지 지리조>에 따르면, 삼년산군에는 2개의 속현이 있었다고 한다. 하나가 굴현이고 다른 하나가 살매현이다. 굴현의 치소는 지금의 옥천군 청성면 소재지인 보정천 가의 언덕에 쌓은 굴산성이다. 신라는 삼년산성과 동시에 굴산성을 개축한 것을 보면 금강의 지류인 보정천까지 개축하여 백제의 금강 저지선까지 위협하였던 것이다.
한편 살매현의 치소는 지금의 괴산군 청천면 일대에 있었을 것으로 비정된다. 특히 미륵산성 아래 공림사와 그 입구인 청천면 사담리 사담마을, 미륵산성 서쪽의 청천면 고성리 성암마을, 현 청천면 소재지 등이 살매현의 치소로서 유력한 후보지이다.
결론적으로 신라의 관점에서 보면, 삼년산군의 개척은 금강의 지류인 보정천 일대의 굴산성에서 백제를 공격하고, 남한강 지류인 달천 일대의 미륵산성에서 고구려를 공격할 수 있는 거점 형성에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신라는 금강 지류인 미호천과 남한강 일대에 신주를 개척하는 바, 신주가 삼한 통일의 토대였다면, 삼년산군 및 두 속현의 개척은 신주의 초석이었던 셈이다.
미륵산성은 청천면 고성리 성암부락 동쪽 계곡을 둘러싸고 있는 포곡식 산성이다. 공림사 북쪽의 낙영산과 화양동 계곡 남쪽에 있는 도명산 중턱을 둘러싼 성터로 ‘도명산성’이라고도 부른다. 지금은 무너져 본래의 모습을 확인하기 어렵지만, 현재 남아있는 벽은 길이 700m에 높이가 약 2m이다. 성 안에서 신라 토기조각과 고려 전기의 기와조각이 발견되었다. 또 건물터를 중심으로 도기조각, 자기조각, 돌로 만든 절구, 숫돌이 발견되었다.
문화재청 홈페이지 설명에 따르면, 유물들의 성격으로 보아 고려시대 때 쌓은 성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미륵산성의 초축은 고구려에 의해, 개축은 신라에 의해 이루어졌을 것이다. 고대 신라에서 백두대간을 넘어 남한강 지류인 달천강에 이르는 루트는 대략 3가지다. 첫번째가 지금의 문경읍 관음리 하늘재(계립령) 루트인데, 이는 수안보를 거쳐 달천강 하류나 제천 월악산 아래 덕주산성을 거쳐 남한강으로 직접 나갈 수 있다. 두번째는 문경읍 각서리 이화령 루트인데, 괴산군 연풍면을 지나 칠성면 태성리 산성을 거쳐 달천강 중류로 나갈 수 있다. 세번째는 상주시 화북면 장암리 산성(일명 견훤성)에서 백두대간상의 늘재를 넘어 화양동 계곡으로 들어가거나 아니면 역시 백두대간상의 밤티재를 넘어 공림사 계곡 입구인 사담마을 거쳐 달천강 상류에 접근할 수 있다. 그런데 늘재를 넘건 밤티재를 넘건 두 길 모두 미륵산성 남북 루트로 미륵산성만 지키고 있으면 백두대간을 넘어오는 적을 완전 제압할 수 있다. 따라서 미륵산성 일대는 고구려나 신라 입장에서 중추에 해당하는 곳으로 방어성이 없었다는 것은 군사적 관점에서 보아도 이해하기 어럽다. 다만 미륵산성의 규모는 나말 여초에 형성되었을 것이다. 까닭은 왕건과 견훤의 삼한통일전쟁 때문에 미륵산성이 다시 중요해졌고, 이때 고려군 아니면 후백제군에 의해 현재의 규모가 확정된 듯하다.
미륵산성은 4가지 공법을 사용하여 쌓은 점이 특징이다. 현재는 중심성과 바깥성의 성벽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다. 성안의 정상부근 바위에 도명산 마애불이 음각되어 있고 문터, 건물터 8곳, 성 안팎으로 물을 통과시키는 장치인 수문터, 우물터 4곳이 남아 있다고 한다.
필자는 미륵산성 답사 출발지로 공림사에서 시작하였다. 한번의 답사로는 산성 전체를 둘러보지 못했다. 생각보다 미륵산성의 규모는 커, 다음번에는 화양동계곡에서 답사하기로 작정하며 겨울 아주 늦은 오후 하산하였다.
땀 흘린지 20여분 지나자 미륵산성 남문터가 보이기 시작한다. 답사는 이곳에서 좌로 빠져 남벽과 서벽 일대만 보았다. 이길은 조봉산가는 길이다.
남문터 부근의 산성 안내판
오늘은 남서벽 일대만을 들러 보았다. 산성 규모가 5.1km라니... 조금 일찍 올걸. 예비군 참호로 만들어버린 미륵산성 석축의 모습. 미륵산성의 현대적인 활용이랄까? 가끔 산성 답사를 하다보면 산성의 돌들을 빼다가 참호로 멋지게 만들어 놓은 것을 본다. 참호를 볼 때마다 '예나 지금이나 산성은 군사적 요지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끔 한다.
남벽
성문터, 제2남문터 아니면 서남문터라고 해야 하나?
성문터
소나무 사아로 보이는 청천면 사담리 일대. 희미하게 보인 산영이 덕가산(일명 솟굼산이라고도 한다. 707.0m)일터...
낙영산 일부
사진 감상 시간이당... 솔직히 방향 감각을 상실하여 무슨 산인지 자신이 없다. 기억을 되살려 산을 표기해도 왠지 자신이 없다. 하늘도깨비가 이런 날이 별로 없었는데... 하늘도깨비도 나이를 먹는구나. ㅠㅠ
도명산(643m). 미륵산성은 도명산 중턱을 동벽으로 하여 성암마을 동쪽 계곡을 지향하는 포곡식 산성이다. 다음 답사시는 도명산 자락을 보아야겠다.
뒷산이 조봉산(680.0m)
미륵산성은 청천면 고성리 성암마을 동쪽 계곡을 포곡식으로 쌓은 성이다. 조봉산 가기전 봉우리에서 북쪽으로 성암마을 동편 계곡으로 성곽이 지향하고 있다.
이 봉우리에서 경치 감상하다 성곽길을 놓치는 우를 범하고 조봉산으로 향하다 되돌아오다 성곽길이 북쪽으로 지향하고 있음을 보았다. 휴, 다행이다.
미륵산성 보루터
계곡으로 지향하고 있는 성곽길. 서벽이다.
계속 계곡을 향하여 가고 있다.
계곡 입구로 난 암문터. 일명 척후병을 보낼 때 사용하는 개구멍(?). 지금 내려갔다간 뼈도 못추릴 것 같은데...
계곡으로 지향하는 성곽길에서 바라본 낙영산(684m). 동쪽 방향 시선을 돌린다.
계곡으로 지향하는 성곽길에서 바라본 조봉산. 서쪽 방향 시선을 돌린다.
계곡으로 지향하는 성곽길에서 바라본 도명산. 북쪽 방향으로 시선을 돌린다.
자연 방어선. 성곽길은 여기서 일단 끝나고 자연 암벽이 성곽의 역할을 한다.
성곽이 지향하는 성암마을 동쪽 계곡 전경. 자, 이제 하산이다.
되돌아 오면서 찍은 남벽 일부
제2남문터
덕가산 전경
공림사 앞 거석
공림사 뒷편의 낙영산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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