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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기행 (충청도)

논산 노성산성 더보기
논산 달이산성 더보기
공주 한산성 더보기
영동 만계리산성 더보기
진천 태령산성 : 고구려 만노군(금물노군)을 정복한 후의 신라의 치소인가? 공식적으로 태령산에는 산성이 없다. 그런데 김유신 탄생지나 산정상의 태실 및 연보정 등으로 추정컨대 만노군 치소로 산성이 존재했을 확률이 높다. 연보정 및 국궁장인 화랑정을 중심으로 포곡식 산성이 있었을 것이다. 신라가 고구려 금물노군을 정복한 후 신라가 치소로 사용했을 것이다. 김유신의 할아버지인 김무력이 당시 고구려와 백제의 전장터에 신주(미호천 일대)를 개척하고 아버지 김서현이 만노군 태수를 승계받았을 것이다. 또한 만노군 태수가 민가에 거쳐했을 가능성은 없기 때문에 이 일대에 치소로서 산성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더보기
홍성 신금성 : 백제 결기군의 치소 신금성은 백제 결기군의 치소, 신라와 고려 결성군의 치소로 오랫동안 사용되었다. 조선 초에 이르러 결성읍성을 축조하면서 폐성되었을 것으로 사료된다. 아무래도 서해안에 연접한 관계로 고려시대 일부 판축하면서 개축하였으나 평지, 야산성으로는 왜구의 침입을 방어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더보기
서산 당산산성(반양리산성) : 고려 정해현과 조선 해미현의 치소 더보기
서산 전라산성 : 백제 여촌현의 치소 더보기
영동 갈모봉산성 더보기
진천 대모산성 : 고구려 금물노군의 치소 더보기
대전 흑석동산성 : 황산벌로 향하는 길목을 지키던 <삼국사기>의 진현성인가? 대전 흑석동산성은 에 등장하는 정현성 혹은 진현성으로 비정되고 있다. 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태종무열왕 7년(660) 8월 2일 백제의 나머지 적병이 남잠성(南岑城)·정현성(貞峴城)·▣▣▣성을 차지하고 버텼다. 또 좌평 정무(正武)가 무리를 모아서 두시원악(豆尸原嶽)에 진을 치고 당나라와 신라 사람들을 노략질하였다. 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당나라 용삭 2년(662) 7월에 인원,인궤 등이 웅진 동쪽에서 복신의 남은 군사를 대파하고, 지라성(支羅城) 및 윤성(尹城), 대산(大山), 사정(沙井) 등의 목책을 함락시켰는데, 군사를 죽이고 사로잡은 것이 매우 많았으며, 군사들을 나누어 그곳에 계속하여 주둔시키고 수비하게 하였다. 복신 등은 진현성(眞峴城)이 강가에 있고, 높고 험하여 요충지로.. 더보기
대전 사정성 : 과연 <삼국사기>의 사정성인가? 동성왕 20년(498년) 가을 7월에 사정성(沙井城)을 쌓고 한솔 비타로 하여금 그곳을 지키게 하였다. 성왕 4년(526년) 겨울 10월에 웅진성을 수축하고 사정책(沙井柵)을 세웠다. 사정성(沙井城)은 에 이름은 있으나 위치가 불명확한 성 중의 하나로 나온다. 대전 중구 사정산성은 에 나오는 사정성으로 비정되고 있다. 사정산성의 위치가 신라에서 백제로 들어오는 길목에 위치해 있는 산성임에는 맞지만 에 나오는 사정성이나 사정책인지는 확실치 않다. 사정성은 필자가 거주하는 곳과 가까워 언제든 가 볼 수 있어 11년 겨울 초입에 가벼운 마음으로 올라봤다. 산성의 북벽 구간 성 내부 산성의 남벽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