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성기행 (충청도) 썸네일형 리스트형 대전 사정성 : 과연 <삼국사기>의 사정성인가? 동성왕 20년(498년) 가을 7월에 사정성(沙井城)을 쌓고 한솔 비타로 하여금 그곳을 지키게 하였다. 성왕 4년(526년) 겨울 10월에 웅진성을 수축하고 사정책(沙井柵)을 세웠다. 사정성(沙井城)은 에 이름은 있으나 위치가 불명확한 성 중의 하나로 나온다. 대전 중구 사정성은 에 나오는 사정성으로 비정되고 있다. 사정성의 위치는 신라에서 백제로 들어오는 길목에 위치해 있다. 백제 성왕 대에는 지금의 사정성 아래에 책을 설치하고 이 일대를 직접 통제한 것으로 보인다. 책까지 설치한 것을 보면, 신라가 관산성 즉 지금의 옥천 일대까지 국경선을 넓혀 백제로서는 사람들의 이동에 민감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후 성왕은 관산성 전투에서 최후를 맞이한다. 사정성은 필자가 거주하는 곳과 가까워 언제.. 더보기 홍성 퇴뫼산성(송암리산성) 필자는 옛 등산길로 퇴뫼산성에 올랐지만, 와야마을 버스 정류장에서 홍양길 275번길 따라가다가 넓은 공터가 나온다. 여기다 주차하고 퇴뫼산을 오르는 것이 좋다. 더보기 대전 금고동산성 대전 금고동산성은 갑천과 금강이 만나는 합수부에 축조한 백제 산성이다. 더보기 논산 노성산성 더보기 논산 달이산성 더보기 공주 한산성 더보기 영동 만계리산성 더보기 진천 태령산성 : 고구려 만노군(금물노군)을 정복한 후의 신라의 치소인가? 공식적으로 태령산에는 산성이 없다. 그런데 김유신 탄생지나 산정상의 태실 및 연보정 등으로 추정컨대 만노군 치소로 산성이 존재했을 확률이 높다. 연보정 및 국궁장인 화랑정을 중심으로 포곡식 산성이 있었을 것이다. 신라가 고구려 금물노군을 정복한 후 신라가 치소로 사용했을 것이다. 김유신의 할아버지인 김무력이 당시 고구려와 백제의 전장터에 신주(미호천 일대)를 개척하고 아버지 김서현이 만노군 태수를 승계받았을 것이다. 또한 만노군 태수가 민가에 거쳐했을 가능성은 없기 때문에 이 일대에 치소로서 산성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더보기 홍성 신금성 : 백제 결기군의 치소 신금성은 백제 결기군의 치소, 신라와 고려 결성군의 치소로 오랫동안 사용되었다. 조선 초에 이르러 결성읍성을 축조하면서 폐성되었을 것으로 사료된다. 아무래도 서해안에 연접한 관계로 고려시대 일부 판축하면서 개축하였으나 평지, 야산성으로는 왜구의 침입을 방어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더보기 서산 당산산성(반양리산성) : 고려 정해현과 조선 해미현의 치소 더보기 서산 전라산성 : 백제 여촌현의 치소 더보기 영동 갈모봉산성 더보기 이전 1 2 3 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