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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한국전쟁

영동 노근리 사건 현장을 찾아가다

<2010년 9월 29일>

 

한국전쟁 당시 패전을 거듭하던 미군에 의해 집단 학살이 자행된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사건 현장을 방문했다. 아름다운 영동군 산하에서 이처럼 끔찍한 비극이 발생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은 듯 경부선 쌍굴다리는 고즈넉하고 아이러니하게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표지사진 - 아치형 쌍굴다리 밑에는 총탄 흔적들이 지금도 즐비하다

 

1950년 7월 18일 미 제1기갑사단(사단장 호바트 게이)이 일본 요코하마에서 포항에 상륙하면서부터 노근리의 비극은 예비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7월 20일 저녁 무렵 북한군 3사단(사단장 이영호)은 미 24사단을 완전히 무력화시키고 대전을 점령한다. 이 때문에 미 24사단의 철수 엄호와 북한군이 경부국도(지금의 4번 국도)를 통해 옥천에서 영동으로 금강 도하를 시도할 때 새로운 저지선을 구축하기 위해 7월 20일 저녁에 미 제1기갑사단이 영동읍으로 급파된다.

미 제8군사령부는 영동읍 서쪽의 두 도로(경부국도와 금산-무주 방면 도로)를 함께 방어토록 하였으나, 미 제1기갑사단 포병사령부 팔머 준장은 게이 사단장에게 영동읍 서쪽 두 도로를 방어한다는 것은 병력이 분산되어 각개 격파당할 우려가 있으므로 영동읍 동쪽에서 유리한 지형을 선정하여 병력을 집중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의견을 피력하였다. 게이 사단장도 이에 동의하고 미 제8군사령부에게 건의하였으나 동 사령부 최초의 명령대로 실행하라고 회신하였다.

결국 하는 수 없이 게이 사단장은 사령부의 명령대로 제8기갑연대 제1대대를 경부국도(지금의 심천면 약목리 일대)에, 제2대대는 무주도로(지금의 양강면 묘동리와 유점리의 경계인 갈령 일대)에 분산 배치하고 제5기갑연대는 영동읍 동쪽 3Km 부근에 예비 진지를 구축하였다.

7월 22일 저녁 9시 무렵 북한군 제3사단 제8연대가 미 제8기갑연대 제1대대가 지키고 있는 금강 서안에 진출하고 7월 23일 아침 금강 도하 공격을 개시하였다. 이에 제1대대는 화력을 집중하여 북한군의 도하를 저지하는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무주도로 방면의 갈령 부근을 방어하던 제2대대는 북한군 제3사단 제7연대와 제9연대를 맞아 분투하였으나, 북한군의 일부가 우회하여 갈령의 후방인 묘동 부근에서 도로를 차단함으로써 제2대대는 고립되는 위험에 빠진 것이다. 이에 7월 24일 아침 예비대대인 미 제5기갑연대 제1대대와 사단수색중대가 무주도로의 북한군 차단선을 뚫고 겨우 위기를 모면하였다.

이틀간 북한군 제3사단 제8연대의 금강 도하를 잘 견더내던 미 제8기갑연대 제1대대는 7월 25일 북한군 일부가 경부국도 북쪽의 송천 남안으로 우회하여 제1대대의 후방을 차단하면서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결국 포병의 엄호하에 제1대대는 영동읍으로 후퇴하고 말았다. 한편 무주도로 갈령부근의 동 연대의 제2대대 또한 후방이 차단되면서 7월 25일 4시 반 전후하여 주력은 차단선을 뚫고 영동읍으로 후퇴하여 집결하였으나 후위의 퇴로가 다시 막히게 된다. 이에 미 제5기갑연대 제2대대는 후위 부대를 구출키 위해 무주도로 방면으로 나아갔다가 겨우 26명만이 복귀하고 나머지는 사망하고 행방이 묘연하였다. 이날 제5기갑연대에서 사상자가 275명이나 되었다.

결론적으로 미 제8군사령부의 경부국도와 무주도로 동시 방어 전술은 병력의 분산만 초래되어 북한군의 우회전략에 여지없이 붕괴되어 미 제1기갑사단의 병력 손실만 엄청나게 키운 꼴이 되고 말았다.

노근리 주민 학살 사건은 미 제8군사령부의 전략 실패와 제1기갑사단 지연전 작전 실패로 말미암아 미군의 엄청난 병력 손실이 배경이 되고 그 후퇴 과정에서 미군 비행기의 오인 사격 및 미 제1기갑사단의 사건 엄폐 차원에서 주민에게 가한 기관총 사격이 사건의 전말이다.

미군 비행기의 오인 사격 또한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후퇴하던 미 제1기갑사단이 이 사건을 엄폐하기 위해 살아있는 주민들에게 기관총 사격을 가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할 수가 없다. 게다가 한국전쟁사를 편찬한 국방부에서는 학살된 주민들을 북한군의 첩자 내지 미군 진지를 뚫기 위한 인간 방패막이로 호도하여 명예까지 실추시켰다.

하늘도깨비는 이 땅을 피로 물들였던 당시의 권력자들에게 조소를 보내며, 당시 영동군 노근리 일대에서 학살된 주민들과 이름없이 스러져간 미군과 북한군 병사들의 신명에게 한없는 념을 올린다.

 

 

 

 

 영동 노근리 쌍굴다리는 일제 식민지 시절인 1934년에 만들어졌다.

 

 문화재청은 노근리 쌍굴다리를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이 땅에 노근리 사건 같은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기를 후세에 교훈으로 삼기 위해서일까? 궁금하다. 

 

 

 

 

 

 

 

 

 

 쌍굴다리 아래 개근천은 여전히 침묵하며 초강으로 흘러갈 것이다.

 

 황간면 우천리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