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27일>
표지사진 - 북성에서 바라 본 서벽 아래의 시흥천
성곡동산성은 고구려 장항구현의 치소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장항구라는 명칭에서 확인되듯 성곡동 산성 일대가 안산천과 서해가 만나는 장항구로 사료되기 때문이다. 성의 둘레도 800m 정도로 치소의 규모로는 작은 편이나 해안성임을 감안하면 큰 편이다. 장항구는 신라가 당항성을 장악한 이후 고구려 최남단 서해 포구로 고구려 말기까지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삼한을 통일한 신라도 당항성과 함께 그 중요성을 인정하여 현에서 군으로 승격시킨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안산천 최상류인 수암봉(398m) 서쪽 아래인 지금의 안산읍성터는 고려 이후 왜구의 침입을 대비해 장항구에서 지금의 치소로 옮긴 것으로 사료된다.
고구려는 수군이 강해 남부여나 신라를 공격할 중앙군은 압록강이나 대동강 어구에서 출발해 이곳 장항구까지 이르렀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안성천 유역이 삼국간의 최대 화약고로 전화되었기 때문이다. 이어 신라가 당항성을 장악하고 대당 수로를 개척한 이후에는 더더욱 고구려는 이곳 장항구 일대를 중시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장항구 일대를 지키는 해안 보조성으로는 목내동산성, 원시동산성, 별망성 등이 있다. 안산천 하류인 장항구 일대에 해안성들이 많이 포진한 것은 그 만큼 장항구의 전략전 가치가 매우 중요하였다는 증거이다. 성곡동산성은 안산시 단원구 성곡동 시흥5교 동쪽 구릉상에 있다.
성곡동산성(북성 부분) 전경
성곡동 산성을 오르기 위해 돌안말 운동장으로 진입한다.
돌안말운동장
운동장 동쪽의 산 구릉. 이 산의 정식 명칭은 해봉산(48m)이다. 해(蟹)는 '게 해'이다. 이는 산 구릉이 게의 발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산성의 북단
산성 오르는 길
동쪽을 바라보며...
해봉산에는 개발의 대가로 나무가 거의 없는 민둥의 언덕이다. 몇몇 홀로 산을 지키는 나무들이 눈 사이로 애초로워 보인다.
민둥산
남쪽의 언덕
산성의 북단에서 남쪽을 바라보며 산성을 조망하다. 사실 산성의 흔적은 전체적인 윤곽만 남아있을 뿐이다. 필자는 답사하기 전 이런 모습일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가장 이색적인 산성 답사로 기억될 것 같다.
산성의 서쪽을 지나는 시흥천은 자연해자 역할을 하며 산성의 남단에서 서해로 흘러들었을 것이다.
산성의 서쪽. 어쩌면 지금의 시흥천 일대도 고대에는 바다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곳 성곡동 산성은 섬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안산 반월공단 일대는 매케한 가스로 답사하기 힘들었다.
산성의 북단에서 북쪽을 조망하다.
산성의 북동쪽 일대. 사진 끝 좌측 구릉이 목내동산성으로 사료된다.
산성의 동쪽
산성의 서남쪽 일대. 아래 다리 구축물은 제2서해안고속국도 건설을 위한 것이다. 이 조그만 해봉산은 그나마 서북단이 훼손될 것 같다.
산성 북단의 삼각점
산성의 남쪽
애처로운 소나무가 매연에 시달리고 고속도로 건설에 언제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산성의 북단
산성의 서벽이 윤곽만 확인할 수 있을 정도다. 그리고 이곳 북성 일대는 민묘들이 차지하고 있어 성곽의 형태도 많이 변형되었다.
산성의 남단. 시흥5교를 지나는 77번 국도가 산성을 남북으로 양단해 놓았다.
산성의 서벽으로 사료되나 묘지 조성으로 그 형태는 변형되었을 것이다.
시흥5교로 내려가는 계단길
17세기 초엽에 조성된 홍명원 선생 묘
홍명원 선생 묘소
산성의 북쪽을 조망하다.
산성의 남단
77번 국도가 산성을 남북으로 양단했다.
산성의 남쪽. 산성의 남단으로 건너가기 위해 주차한 곳으로 다시 돌아간다.
산성의 중앙에서 동쪽을 조망하다.
산성의 중앙에서 산성의 북단을 조망하다.
산성의 동북쪽. 중앙 산구릉이 목내동산성으로 사료된다. 만약 성곡동 산성이 장항구현의 치소가 아니라면 목내동산성이 치소였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문학산성과 이곳 성곡동산성 답사에 지쳐 다음을 기약한다.
산성의 중앙 구릉
산성의 북단
산성의 서벽 아래로 시흥천이 남류한다.
산성의 중앙 구릉
하산길에 바라 본 고목 아래 우물
우물 내부
시간의 흐름에 고목은 스러져 가고 있다.
동북벽. 북성 답사를 마치고 77번 국도 건너 남성으로 이동한다.
산성 남단 아래 주차장에서 바라 본 남벽. 자연 성벽인지 공단 조성 과정에서 굴착된 것인지는 알기 어렵다.
남쪽 성곽 정상에는 잿머리성황당이 있다.
성곡동산성의 남동벽
남동벽 아래에도 우물이 하나 있다.
마을 유래비
남성 오르는 길
법흥사 대웅전
법흥사 대웅전 뒤로 북성이 보인다.
남성 정상의 모습
안내문. 잿머리성황당은 해신을 모신 사당이라는 사실과 이곳이 고려 때 대 중국 서해 항구였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는 곧 이 일대가 고구려의 장항구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잿머리성황당 전경
눈속에서 북단의 산성이 희미하게 보인다.
남단의 산성 정상
남벽 아래. 이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
하산해서 주차장을 거쳐 남벽 아래로 내려가 보았다.
남벽
남벽
남벽의 바위지대
답사후기 : 성곡동산성을 답사하면서 안산 일대의 매연에 놀라웠다. 70년대 한국 산업의 동력이었던 제조업이 아직도 안산 반월공단에서는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를 너무 쉽게 잊었던 필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신선한 감동을 느꼈다. 공단에서 역사의 유적인 산성을 찾는 필자는 완전한 이방인이었다. 그리고 반월 공단에서 몇 안되는 성곡동 해봉산 공원이 이처럼 초라하게 대접받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한때 고구려 최남단 군사 항구인 장항구였으며, 신라와 고려대에는 당항성과 더불어 대 중국 서해 항구인 이곳이 퇴락한 것에 대해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진다. 필자가 성곡동산성에서 너무 많은 것을 기대했던 걸까? 기대 만큼 아쉬움도 큰법인가? 성곡동 산성이 제 모습을 찾는 그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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