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3일>
표지사진 - 실상사 철제여래좌상
여름 초입 남원 실상사를 방문했다. 실상사는 딱 부러지게 뭐라고 할 순 없지만 필자는 매번 실상사에 끌리곤 한다. 지리산 산중의 넓다란 평지에 자리잡은 절이 실상사다.
신라 말 중앙의 교조화된 불교에 맞서 지방 호족의 후원아래 불교의 본지를 주창하는 선종이 성립되었다. 선종의 모토는 1) 불립문자, 교외별전.(문자로 세우지 않으며, 교외로 별도로 전한다) 2) 직지인심, 견성오도.(사람의 마음을 직시하여 본성을 보고 본체를 깨닫는다) 3) 즉심즉불, 즉시성불(즉자적인 마음이 곧 즉자적인 불(佛)이며 즉자적으로 불을 이룰 수 있다)로 정리될 수 있다. 신라 선종의 본거지는 9산이다. 선종은 도의선사가 전남 장흥에다 보림사를 개창하며 본격적으로 성립되었다. 이에 자극받은 홍척선사는 지리산 산중에 두번째로 선문을 세운다. 바로 실상사가 그것이다. 이후 선종은 9산을 이루며 불교는 자체 정화의 과정을 밟는다.
성철을 위시한 일단의 선각자들은 해방후 일본화되고 기복 불교로 오염된 불교정화 운동을 벌이며 불교 본지로 돌아갈 것을 경북 문경 봉암사에서 결의하고 조계종을 창립하였다. 하지만 50여년이 흐른 지금 조계종을 위시한 사판승(불교 살림을 맡아 보는 중)들이 조계종을 물질로 더럽히고 있다.
하긴 사판승들의 본질이 연꽃의 뿌리처럼 진흙탕을 헤매야 하는 것은 당연할 터. 그들의 타락이 오늘날만의 일은 아니다. 사판승들은 이판승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 탓한들 무엇하리? 이판에 들지 못하고 사판을 헤매는 땡중들을 비난한 들 입만 더럽히는 꼴이다. 흉흉한 불교계를 돌아보며 실상사를 개창한 홍척선사의 당시 마음으로 들어가 보고 싶다.
실상사 가는 다리 입구에는 석장생이 서 있다. 입구에는 2개의 석장생이 이었으나 36년 대홍수때 하나는 휩쓸려 갔다고 한다.
실상사는 풍수 호국 사찰로 정평이 난 곳이다.
피안의 세계로 가는 다리
엄천강. 남원 운봉고원에서 발원하여 남강에 합류한다. 호남 중에서 유일하게 낙동강으로 흐르는 물이다.
남강으로 달려가는 엄천강
실상사 입구를 바라보다
경남 함양 마천으로 내려가는 엄천강
다리를 건너면 석장승 2기가 나그네를 노려본다. 삿된 것은 버리고 오라는 준엄한 질책이 따를 판이다.
실상사 앞 석장승은 우주인을 닮은 듯하다.
설명문에는 석장생들이 험상궂은 듯 보이나 오히려 익살스럽고 해학적이라고 한다.
실상사 가는 길은 땡볕을 피할 곳이 없다.
실상사 전경
실상사 출토 기와를 모아 탑을 쌓아놓았다.
실상사 삼층석탑(서탑)
실상사 삼층석탑(서탑). 삼층석탑(쌍탑)은 철조여래좌상과 함께 우리나라 정기가 일본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기 위해 지맥을 누르고 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이러한 전설은 선종사찰인 실상사가 표방하고 있는 바는 아니다. 다만 전설에는 남강 상류인 이곳을 왜구가 자주 유린한 적이 있어 민간에서는 실상사의 철조여래좌상과 삼층석탑에 의지하여 왜구를 근절시키고자 하는 염원이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려말 이성계가 운봉고원에서 왜구를 격퇴시킨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 황산대첩비가 이를 증거하고 있다. 이곳은 지리산 산간지역이지만 왜구의 침입이 잦았던 곳이다. 아마도 운봉고원을 거쳐 호남평야의 내륙을 침탈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실상사 석등
실상사 보광전
보광전 안에는 동종이 있다. 동종에는 일본 열도가 그려져 있어 일본 동경을 강타한다고 한다. 촬영을 못한 것이 아쉽다.
보광전 동쪽에는 명부전이 있다. 명부전은 지장보살이 주재자인데 명부의 십왕이 모셔져 있다. 흔히 명부시왕(冥府十王)이라고 한다. 절에 명부전을 두는 까닭은 사후의 세계를 깊이 생각해보라는 경계의 의미가 있다. 명부전은 순수 불교의 사상은 아니다. 불교가 중국으로 와서 도교와 습합되어 나타난 동아시아 고유의 신앙이다.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3일간 이승에서 머물다가 명부사자(冥府使者)의 인도로 명부로 간다고 믿는데, 이때 명부에서 죽은 자의 죄를 심판한다는 열 명의 왕이 바로 명부시왕이다. 처음부터 순서대로 진광대왕(秦廣大王)·초강대왕(初江)·송제대왕(宋帝)·오관대왕(五官)·염라대왕(閻羅)·변성대왕(變成)·태산대왕(泰山)·평등대왕(平等)·도시대왕(都市)·오도전륜대왕(五道轉輪, 혹은 전륜대왕) 등이 있다. 이중 다섯 번째인 염라대왕은 시왕 중의 우두머리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염대대왕의 실제 순위는 그렇게 높지 않다.명부전 권력 순위는 5위이다.
죽은 자는 시왕 중 7명의 대왕에게 순서대로 각각 7일씩 49일 동안 심판을 받는다. 그 중에서 변성대왕은 다섯 대왕이 심판한 것을 토대로 윤회 여부 이전에 재심을 담당한다. 그런데 살면서 죄업을 많이 지은 자는 49일 이후 3명의 대왕에게 다시 심판을 받는데, 죽은 후 100일이 되는 날은 제8 평등대왕, 그리고 1년이 되는 날에는 제9 도시대왕, 3년째에는 제10 오도전륜대왕의 심판을 받아 총 3년의 기간 동안 명부시왕의 심판을 받는다. 이처럼 명부전은 총 5심제로 운영되고 있다. 인간의 재판이 3심제인 것에 비해 명부의 공판정은 더욱 철저하게 영가를 심판하는 것이다. 물론 인간의 재판보다는 더욱 공정할 것으로 보인다.
보광전 동쪽에는 명부전(지장전)이 있다. 지장보살. 지장보살은 명부 세계를 주재하는 보살이다.
명부전의 심판관들(지장보살 오른쪽)
명부전의 심판관들(지장보살 왼쪽)
명부전의 최대 권력자이자 주재자이다. 사람이 죽으면 지장보살의 원력에 기대어야 한다. 지장보살이 위대한 것은 모든 중생을 구제한 후에야 비로소 자신도 성불하겠다는 결의와 실천을 했다는 것이다.
도명존자. 지장보살의 비서.
진광대왕. 칼산지옥을 담당함. 죽은 이의 최초 일주일을 담당하는데, 살생죄의 심판관이다.
송제대왕, 한빙지옥 담당. 죽은이의 3주째 담당으로 사음과 간음의 심판관이다.
오른쪽 모퉁이에 계신 분이 제일 유명한 염라대왕이다. 염라대왕이 이고 있는 것은 전생부이다. 명부전의 서열은 그리 높지 않다. 다만 이 분이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는 것은 영가의 전생을 비추어보아 윤회 여부를 판단하는 심판관이기 때문이다. 염라대왕은 발설지옥의 담당자로 영가의 5주째를 담당하고 있으며 선악을 비추는 업경대에 전생을 비추어주곤 한다.
누군가 염라대왕의 발아래 천원자리 지폐를 놓아 두었다. 염라대왕에게 뇌물을 주어 미리 발설지옥(혀가 뽑히는 지옥)을 피하려는가 보다. 살아 생전부터 이랬으니 효과는 클 듯하다. 염라대왕께 할 말이 있잖아.
태산대왕. 거해(鉅骸)지옥 담당. 염라대왕의 서기이다. 영가의 7주째 담당자. 다음 생의 운명을 결정한다. 우리가 사구재를 올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가가 마지작 7주차 심판을 받고 윤회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지장경에는 영가를 위해 누군가 지장경을 읽어주기만 해도 다시 인간으로 환생할 수 있다고 한다. 염라대왕과 태산대왕은 우리가 잘 보여야 하는 명부전의 대왕들이다.
도시대왕. 풍도지옥의 담당자로 영가 1년차를 담당하고 있다. 죄업 최후 심판자로서 진실로 참회하면 구원의 기회가 부여된다고 한다.
심판의 집행자들. 꿈에 나올가 두렵다. 우리 차카게 살자.
무독귀왕. 지옥 관리 역할자이다. 명부전 총재내지 사무총장이다. 지옥문 열쇠상자를 보관하고 있으며 사람들의 악한 마음을 없애준다고 한다. 무독귀왕의 전생은 지장보살의 안내자였다고 한다. 지장보살에 이는 명부전 권력서열 2위이다.
초강대왕. 화탕지옥의 담당자이며 영가의 2주째를 담당하고 있다. 훔치거나 빼앗은 죄를 심판한다.
오관대왕. 칼숲지옥의 담당자로 영가의 4주째를 담당하고 있다. 거짓말, 욕설, 교만, 험담을 업의 저울로 심판한다고 한다.
변성대왕. 독사지옥을 관장하며 영가의 6주차를 담당한다. 앞서 다섯명의 대왕이 심판 한 것을 기초로하여 재심하는 대왕이다. 미륵보살의 화신으로 알려져 있다.
평등대왕. 철상지옥을 관장하며 영가의 100일을 담당. 분노의 형상이나 내심은 자비롭다고 한다.
전륜대왕. 흑암지옥(黑闇地獄) 관장. 영가의 3년차 담당. 최종(5심) 심판관이다.
명부전 감상을 마치고 뒤쪽의 철제 약사여래불을 감상하러 갔다.
실상사 철제여래좌상. 우리나라의 정기가 일본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기 위하여 4천여근의 철로 만들었다는 약사여래불이다.
서쪽으로 백두대간 정령치에서 뻗어온 능선.
보광전 측면
금당지
지리산 실상사 호국범종
실상사 3층석탑(서탑)
보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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