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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도성기행/가야 폴리스 기행

고령 지산동고분군 : 대가야 왕들의 무덤

<2014년 4월 6일>

 

 

<표제사진 - 대가야고분군 전경>

 

 

경북 고령 대가야박물관은 가끔 가지만, 언제고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정작 대가야고분군과 주산성을 답사한 적이 없었다. 제사 지내고 동생과 함께 고모, 숙부님 내외 배웅해 드리고 의령에서 바로 대전을 가지 않고 고령에 들려 대가야박물관에 주차하고 곧바로 주산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광해군 시대를 풍미했던 북인의 사상적 근원인 남명 조식(1501~1572) 선생이 대가야 왕릉을 보고 놀라서 갱상도 말로 감탄하며 왈,

"산 위에 저게 뭐꼬?"

그게 바로 주산을 향해 뻗은 대가야 고분군이다.

 

대가야는 낙동강 연안의 가야폴리스들을 통합한 가야였다. 여기서 대가야란 통합의 의미를 담지하고 있다. 물론 크다는 것이 통합이긴 하지만. 그리이스에 폴리스가 있다면, 한국에는 가야가 있다. 원래 가야란 특정 국가를 의미하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인도말로 '도시'를 지칭하는 일반명사였다.(가야가 범어로 '소'를 뜻한다고도 한다. 지금도 인도 갠지즈강 유역에는 가야, 보드가야, 부다가야 등의 지명이 남아 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은 아라라는 지명도 있다.) 일본어로 '한(韓)'은 '가라'로 음독한다. 가야와 가라는 같은 말이다. 삼한은 '삼가라'로 보면된다. 따라서 한강 이남의 삼한은 70여 개의 가야폴리스로 구성된 땅이라고 볼 수 있다. 낙동강 일대만 가야라고 보는 것은 오인이다. 외부 유이민인 삼국은 이러한 가야폴리스를 정복해나갔다. 가야가 한반도에서 사라진 것은 6C 중반의 관산성 이후이다.

 

<삼국사기>는 가야가 사라진 후 신라가 삼한을 통일할 때까지 살아남은 삼국에만 착목하여 책이름에 삼국을 넣은 것이다. 대가야는 이러한 삼국의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삼한인(가야인) 스스로 자구책의 일환으로 형성된 국가였다. 그래서 응집력이 약했다. 그들은 신라보다 백제에 의존하여 생존을 도모하였다. 하지만 여우나 늑대나 최종목표는 똑같다. 관산성 전쟁 이후 대가야가 멸망하자, 신라와 백제는 땅 따먹기 잔치를 벌렸다. 이로써 낙동강 서부 유역과 섬진강 일대의 대가야 영역은 나제의 먹이로 전락하고 만다. 이것이 가야의 비극이다. 그 중심에 고령의 대가야가 있었다.

 

대가야의 아이덴티티에 대해선 다음에 상술할 생각이다.

 

 

마침 대가야 체험축제를 하고 있었다. 고령읍 방향.

 

합천, 거창 방향

 

'대가야 왕릉의 출현'이라는 기획특별전이 11월까지 열린다고 한다.

 

대가야왕릉전시관 입구

 

왕릉전시관 좌측으로 산책로가 있다.

 

고령읍 동쪽 금산(286m). 동쪽 낙동강 유역으로 나가 대구로 향하는 길목이다.

 

 

 

 

 

 

 

금산

 

 

 

 

 

 

 

 

 

 

 

우측 봉우리가 주산(310m)이다.

 

 

 

동쪽 금산에도 산성과 봉수대가 있다. 만약 신라군이 낙동강을 도하하면 고령군 성산면 강정리 낙동강 서안에 위치한 봉화산에서 연기나 횃불이 타오르고, 이곳 금산성(망산성)에서 바로 봉화나 봉수를 피워 대가야 도성에서 침략에 대비하면 된다. 신라군이 대가야로 진격하려면 낙동강을 건너고 다시 금산성을 거쳐와야 하기 때문에 대가야 궁성을 공격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좌측 동북방으로 의봉산성이 의연히 솟구쳐있으며, 우측 금산성이 대가야 궁성을 비호하고 있다.

 

 

 

 

 

 

 

 

 

의봉산과 금산. 이 능선들이 대가야 궁성을 보호하는 자연 동벽이다.

 

 

 

 

 

 

 

 

 

 

 

 

 

 

주산

 

금산

 

 

 

 

 

 

 

의봉산과 금산

 

 

고분군 남쪽으로 가야대학교가 보인다.

 

 

 

 

 

 

 

 

 

 

 

지산동 44호분

 

 

 

 

 

지산동 44호분

 

 

 

지산동 44호분

 

 

 

 

 

 

지산동5호분(전 금림왕릉) 일듯...

 

벚꽃

 

벚꽃 뒤로 동북방의 미숭산(734m)이 보인다.

 

 

지산동5호분

 

지산동6호분

 

 

 

주산

 

 

5호분 정상에 서있는 용기있는(?) 사람들. 왕릉의 저주(?)라도 걸리면 어쩔려고? 뭐 크게 뭐라 하시진 않겠지.

 

 

 

 

 

 

미숭산. 산꾼들은 미숭산에서 주산까지 걷는다.

 

 

 

 

 

 

 

700여 기나 된다고 하니 놀랍다.

 

 

고분과 주산성. 고대가야폴리스 특히 낙동강 유역은 산성과 고분이 한 세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번 왕이면 영원한 왕인가 보다.

 

능선따라 배치된 우리나라 고분군은 무지 아름답다.

 

그윽한 곡선미.

 

 

 

 

고분군이 끝나는 지점부터 주산성 답사가 시작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