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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기행 (충청도)/청주, 증평

청주 낭성산성 : 신라, 어부지리를 얻다

<2009년 4월 5일>

 

미원천(달천의 지류)에서 바라본 낭성산성

 

 

신라군은 상주에서 백두대간을 넘어 중화지역을 장악한다. 보은의 삼년산성 축조(소지마립간 8년, 486년)는 신라가 백두대간 동쪽의 낙동강 유역을 공고히 하고 금강 유역으로 진출하겠다는 야심의 기념물에 다름아니다. 이로부터 얼마 뒤 신라군은 보은 벌판에서 남부여군을 몰아내고 금북한남정맥을 넘어 고구려군의 근거지인 남한강 상류 지류인 달천유역으로 진출한다. 달천 상류인 청원군 미원면 성대리 터말부락 뒷산인 표고 346.4m의 산정과 남사면에 걸쳐 석축한 내성과 토루의 외곽을 이룬 테뫼식 산성이 바로 청원 낭성산성이다. 이로써 신라군은 고구려와 남부여군 사이에 끼어든다. 이로써 삼국의 국경이 개 어금니처럼 남북으로 세로로 열지어 서게 된 것이다. 신라군은 낭산산성을 토대로 한북정맥을 돌파하는 바, 한북정맥상에 위치한 구녀산 이티 동북방의 구녀산성과 초정약수를 지나 청원군 북이면 부연리 은성마을 뒷산으로 추정되는 낭비성까지 구축함으로써 금강 상류 유역인 미호천의 지류인 보강천 앞까지 진출한 것이다. 이로써 신라군은 상주-백두대간(중화지역)-보은 삼년산성-청원 낭성산성-이티 구녀산성-북이면 낭비산성으로 이어지는 확고한 고대 군사교통로를 확보하고 삼한 통일의 기치를 내걸수 있게 된다. 이를 바탕으로 고구려를 남한강 상류 유역에서 몰아내고 신주를 건설할 수 있었으며, 남부여를 옥천벌에서 몰아내고 지금의 대전과 옥천 경계의 식장지맥을 사이에 두고 남부여 군과 다툴 수 있었던 것이다. 신라의 낭성산성 구축은 고대 삼국 전쟁의 역사상 그 의미가 자못 크다하지 않을 수 없다.

  

 

청원군 미원면 성대리 터말부락과 그 뒤산인 낭성산성

 

 

 터말부락을 오른쪽으로 뒤돌아 15분쯤 올라가면 낭성산성의 석축이 무너져내린 더널지대가 나온다

 

 

석축의 흔적

 

 

 석축의 흔적2

 

 

 낭성의 정상에 서면 건물터가 나온다.

 

 

삼각점

 

 

정상의 건물터

 

 

 낭성의 서남방에 보루성인 돌봉산성이 나무틈 사이로 희미하게 보인다. '명하노니 군사들이여! 잔목들을 제거하여 낭성의 시야를 확보토록 하여라.' 명을 따를 군사들은 간곳 없고 낭성은 퇴락하여 가는 구나.

 

 

 잔목들로 채워진 낭성 내부

 

 

 낭성의 서벽

 

 

낭성의 서벽2 

 

 

 

낭성의 내성

 

 

 낭성의 내성2

 

 

낭성의 내성3

 

 

 낭성의 내성벽

 

 

 낭성의 내성터

 

 

낭성의 내성을 내려오다

 

 

 내성

 

 

 

 

 

 

 

낭성은 이중성으로 내성을 내려오니 외성의 건물터가 나온다.

 

 

터말부락 남쪽 골자기로 내려오다가 낭성의 외성을 관찰하다

 

 

외성

 

 

낭성산성 내려오는 길에 바라본 건너편 산

 

 

 미원천 보에서 바라본 낭성산성의 보루성인 돌봉산성 전경, 시간이 늦어 돌봉산성 탐사는 다음 기회에...

 

 

<2019년 12월 15일>

 

다음 기회가 10년 지났다.

청주 돌봉산성을 답사하며 새로 낭성산성의 전경을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