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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추론/대회전

옥천 굴산성과 저점산성 : 신라가 남부여의 인후를 겨누다

<2021년 6월 12일>

 

<표제사진 - 궁촌재에서 바라본 저점산성과 굴산성, 빨간 점이 저점산성, 파란 점이 굴산성>

청성면 면소재지인 산계리는 남으로 보청천을 향하여 튀어나온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이 바로 신라의 굴산성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소지마립간 8년 정월에 이찬 실죽을 장군으로 삼아 일선지방의 장정 3천명을 징발하여 삼년산성과 굴산성을 개축하였다.'고 한다. 소지마립간 8년은 AD 486년이다. 즉 신라는 5C 말엽에 이르러 보은지역에서 백제군을 몰아내고, 삼년산성과 굴산성을 다시 쌓았다. 이로써 신라는 백제의 금강 연안까지 진출할 교두보를 확보한 것이다. 후일 관산성 전쟁에서 '성왕의 비극'이 잉태되는 순간이다. 남부여 군주 성왕을 기습하여 성왕을 사로잡아 참수한 군대가 바로 삼년산군 출신 도도가 이끌던 신라군이었던 것이다. 백제 입장에서는 이곳 보은 지역을 유린당함으로써 전선이 금강까지 밀렸으며, 굴산성의 개축은 남부여의 인후 즉 남부여의 목구멍을 칼로 겨누는 형국이 된 것이다.

신라군은 상주에서 반도의 척추인 백두대간상 중에서도 해발 고도가 제일 낮은 지역인 중화지역을 장악하고 이를 토대로 삼년산성을 축성한다. 삼년산성의 축조는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의 분쟁지역 중심으로 들어오는 일대 반도 각축의 새로운 국면이 전개되었음을 알리는 상징적 기념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로써 신라는 백제와는 금강 연안을 사이에 두고, 고구려와는 금북정맥을 넘어 금강의 지류인 미호천과 남한강의 지류인 달천강에서 대립하게 된 것이다.

보청천은 보은 지역을 관통하여 옥천군 청성면 지역에서 금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굴산성은 바로 보청천 하류에 위치하며, 굴산성의 서안 지역은 보청천이 금강을 향하여 힘차게 달려가는데, 금강 합강 지점까지는 깊은 협곡을 형성하여 백제와 신라간에 자연 방어선 역할을 한다. 그리고 굴산성의 남쪽 지역은 지금의 영동군 용산면 지역으로 백두대간의 지맥인 팔음지맥이 자연 경계를 이루는 곳으로 이곳을 통과하여 초강 유역으로 나아가 백제로 가려면 첩첩 산중이 가로막고 있다. 결국 굴산성만 지키고 있으면 신라군의 후방은 실로 튼튼하기 이를데 없는 것이다. 공격과 수비 모두가 유리한 지역이 바로 굴산성인 것이다. 이는 신라와 백제의 태생적인 어쩔수없는 비가역적인 현상이다. 즉 백제가 굴산성에 입지하여 동쪽의 신라군을 맞는다면 이는 배수진을 치는 꼴이 되어 굴산성이 포위되기라도 한다면, 퇴로가 막히는 꼴이 되어 후방 보급이 원할치 않게 된다. 다시 말해 신라 입장에서는 남쪽으로는 영동군 산악지대의 중요한 고개만 지키고, 서쪽의 협곡에 기습병만 배치하면 백제의 후방은 간단하게 차단되는 꼴이 된다. 반대로 신라군이 굴산성에 입지하여 서로 보청천 하류의 협곡지대와 남으로 영동군의 산악지대에서 기습적으로 백제를 공략할 수 있는 좋은 은폐지가 될 수 있다.

<2009년 12월 5일, 필자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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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성초등학교

 

청성면 면사무소 주차장에 주차하고, 옆 119 건물 도로로 진입하면,
청성초등학교 옆길이 나오고,
뒷길로 들어서면 저점산성 가는 산길이 나온다.
보청천
굴산성
궁촌재 방향
엉겅퀴 꽃

 

<2009년 12월 5일>

 

경부고속도로 영동IC를 빠져 나왔다. 보은 방향으로 19번 국도를 내닫다 보면, 보청천 북안에 청성면 소재지가 나온다. 청성면 면소재지 전체는 남으로 보청천을 향하여 튀어나온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다. 바로 이곳이 신라의 굴산성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소지마립간 8년 정월에 이찬 실죽을 장군으로 삼아 일선지방의 장정 3천명을 징발하여 삼년산성과 굴산성을 개축하였다.'고 한다. 소지마립간 8년은 AD 486년이다. 즉 신라는 5C 말엽에 이르러 보은지역에서 백제군을 몰아내고, 삼년산성과 굴산성을 다시 쌓았다. 이로써 신라는 백제의 금강 연안까지 진출할 교두보를 확보한 것이다. 후일 관산성 전쟁에서 '성왕의 비극'이 잉태되는 순간이다. 남부여 군주 성왕을 기습하여 성왕을 사로잡아 참수한 군대가 바로 삼년산군 출신 도도가 이끌던 신라군이었던 것이다. 백제 입장에서는 이곳 보은 지역을 유린당함으로써 전선이 금강까지 밀렸으며, 굴산성의 개축은 남부여의 인후 즉 남부여의 목구멍을 칼로 겨누는 형국이 된 것이다.

신라군은 상주에서 반도의 척추인 백두대간상 중에서도 해발 고도가 제일 낮은 지역인 중화지역을 장악하고 이를 토대로 삼년산성을 축성한다. 삼년산성의 축조는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의 분쟁지역 중심으로 들어오는 일대 반도 각축의 새로운 국면이 전개되었음을 알리는 상징적 기념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로써 신라는 백제와는 금강 연안을 사이에 두고, 고구려와는 금북정맥을 넘어 금강의 지류인 미호천과 남한강의 지류인 달천강에서 대립하게 된 것이다.

보청천은 보은 지역을 관통하여 옥천군 청성면 지역에서 금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굴산성은 바로 보청천 하류에 위치하며, 굴산성의 서안 지역은 보정천이 금강을 향하여 힘차게 달려가는데, 금강 합강 지점까지는 깊은 협곡을 형성하여 백제와 신라간에 자연 방어선 역할을 한다. 그리고 굴산성의 남쪽 지역은 지금의 영동군 용산면 지역으로 백두대간의 지맥인 팔음지맥이 자연 경계를 이루는 곳으로 이곳을 통과하여 초강 유역으로 나아가 백제로 가려면 첩첩 산중이 가로막고 있다. 결국 굴산성만 지키고 있으면 신라군의 후방은 실로 튼튼하기 이를데 없는 것이다. 공격과 수비 모두가 유리한 지역이 바로 굴산성인 것이다. 이는 신라와 백제의 태생적인 어쩔수없는 비가역적인 현상이다. 즉 백제가 굴산성에 입지하여 동쪽의 신라군을 맞는다면 이는 배수진을 치는 꼴이 되어 굴산성이 포위되기라도 한다면, 퇴로가 막히는 꼴이 되어 후방 보급이 원할치 않게 된다. 다시 말해 신라 입장에서는 남쪽으로는 영동군 산악지대의 중요한 고개만 지키고, 서쪽의 협곡에 기습병만 배치하면 백제의 후방은 간단하게 차단되는 꼴이 된다. 반대로 신라군이 굴산성에 입지하여 서로 보청천 하류의 협곡지대와 남으로 영동군의 산악지대에서 기습적으로 백제를 공략할 수 있는 좋은 은폐지가 될 수 있다.

 

 

 궁촌재(505번 지방도 고개마루 정자)에서 바라본 청성면 소재지, 아래마을은 궁촌리이며, 보청천 옆의 조그마한 언덕이 바로 청성면 소재지로 굴산성터이다.

 

 

굴산성은 도로에 의해 양분되어 있으며, 청성초등학교 뒤산에는 저점산성이 있다. 저점산성은 굴산성이 포위되거나 하였을 때, 지원군이 도달할 때까지 버터야 하는 농성의 역할을 하였다.

  

 

 굴산성에 연이어 있는 좌측에 저점산성이 있다.

 

 

 궁촌리

 

 

 보정천 연안에서 바라본 굴산성

 

 

 청성초등학교 뒷길로 올라가면 저점산성이 나온다. 오르는 길에 바라본 굴산성 내부.

 

 

 저점산성 오르다 바라본 아름다운 보정천, 보정천 뒤로 보이는 산이 팔음산(762.3m)이다. 백두대간상에 위치한 중화지역인 상주시 화서면의 진산 봉황산에서 흘러나온 지맥이 천택산(683.9m)을 거쳐 팔음산에 이르고, 옥천 청산면 천금산과 천관산, 옥천 청성면에 이르러 굴산성의 남쪽 산악지대를 형성한다. 팔음지맥은 보정천을 남쪽으로 휘감아 돌면서 깊은 산을 만들며 옥천과 영동군의 경계가 되며, 보정천은 서로는 협곡을 만들며 청성면 고당리에서 금강에 합류한다.

 

 

굴산성의 성곽, 세월이 흘러 밭으로 개간되어 본연의 모습을 잃었다.

 

 

보청천, 그 뒤로 좌로는 팔음산, 우로는 백화산 포성봉(933.8m)이 보인다. 백화산은 영동 황간면에 있으며, 금돌산성이 있다.  금돌산성은 김유신이 남부여 사비성을 공략할 때, 경주에서 나와 태종 무열왕이 주둔한 곳으로 유명하다.

 

 

 백화지맥

 

 

 굴산성의 윤곽이 뚜렷하다. 지금은 청성면이 옥천군에 속해있지만, 신라에서는 굴현이라 하여 지금의 보은인 삼년산군의 속현으로 되어 있었다. 참고로 삼국사기에 따르면 삼년산군에는 속현이 둘인 바, 하나가 굴산성이 있는 굴현이고 다른 하나는 살매현으로 남한강 지류인 달천강의 상류인 지금의 청천면 지역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삼년산성의 뚜렷한 목표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삼년산성을 교두보로 남으로는 굴산성을 중심으로 남부여의 금강 연안을 공략하는 것이고, 북으로는 달천강 상류 청천성을 중심으로 고구려의 남한강 연안을 공격하는 군사 요새의 구축인 것이다.

 

 

 보청천

 

 

 저점산성의 남쪽 성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