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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추론

황산벌 전투 루트를 따라서 : 김유신의 3도 중 하나 더보기
삼척 댓재공원 : 댓재는 <삼국사기>에 나오는 죽령인가? 더보기
대전 삼정동산성 : 탄현을 넘어오던 신라군을 감시하던 산성인가? 옥천군 군북면에서 대전 동구 대청동 가는 4번 국도 상 고개가 마달령이다. 이곳 마달령은 백제 탄현으로 비정되는 고개 중의 하나다. 마달령을 지나 대전 방면으로 들어오면 판암IC 부근에 당시 신라군을 감시하던 삼정동 산성이 위치하고 있다. 12년만에 다시 삼정동산성을 둘러보았다. 옥천군 군북면에서 대전 동구 대청동 가는 4번 국도 상 고개가 마달령이다. 이곳 마달령은 백제 탄현으로 비정되는 고개 중의 하나다. 마달령을 지나 대전 방면으로 들어오면 판암IC 부근에 당시 신라군을 감시하던 삼정동 산성이 위치하고 있다. 삼정동산성 가는 길은 많다. 필자는 당시 대전에 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서툴러 동신고등학교 옆길로 올라갔다. 옥천에서 대전가는 4번 국도가 삼정동 산성 동쪽 아래로 지나간다. 삼정동 산성은 이.. 더보기
부여 파진산 : 황산벌의 신라군을 기다리며 당나라 군대가 주둔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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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독산성(2) : 옥문곡 전투의 비밀을 간직한 신라 고성 아래 글은 2010년 11월 6일 독산성 주변을 둘러보고 쓴 글이다. 어려운 일도 아닌데 독산성 답사는 무려 12년이 지나서 이루어졌다. 지나보니 엊그제 같은데 인생은 짧고 허무하다. 신라 최초로 여왕이 등극하다 신라의 진평왕이 남자로서는 마지막 성골이었다. 632년 진평왕이 죽고 더 이상 왕실에 남자 성골이 없자, 하는 수 없이 진평왕의 딸 덕만공주가 왕위에 오른다. 이때 왕위에 오른 덕만공주가 바로 신라 최초의 여왕인 선덕왕이다. 여왕의 등장은 내외의 불안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당 태종은 자신에게 신라를 맡기는 것이 어떠냐며 노골적으로 선덕왕을 조롱할 정도였다. 상대등 비담과 염종의 반란이 일어난 것도 여왕의 권력에 대한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신라 조정은 선덕왕이 현명한 군주라는 것을 내.. 더보기
옥천 굴산성과 저점산성 : 신라가 남부여의 인후를 겨누다 청성면 면소재지인 산계리는 남으로 보청천을 향하여 튀어나온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이 바로 신라의 굴산성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소지마립간 8년 정월에 이찬 실죽을 장군으로 삼아 일선지방의 장정 3천명을 징발하여 삼년산성과 굴산성을 개축하였다.'고 한다. 소지마립간 8년은 AD 486년이다. 즉 신라는 5C 말엽에 이르러 보은지역에서 백제군을 몰아내고, 삼년산성과 굴산성을 다시 쌓았다. 이로써 신라는 백제의 금강 연안까지 진출할 교두보를 확보한 것이다. 후일 관산성 전쟁에서 '성왕의 비극'이 잉태되는 순간이다. 남부여 군주 성왕을 기습하여 성왕을 사로잡아 참수한 군대가 바로 삼년산군 출신 도도가 이끌던 신라군이었던 것이다. 백제 입장에서는 이곳 보은 지역을 유린당함으로써 전선이 금강까지 밀렸으.. 더보기
공주 정지산 유적 : 나제회맹 유적지를 찾아서(3) 취리산회맹[就利山會盟] (출저 : 인터넷 브리태니커) 665년에 신라 문무왕과 웅진도독(熊津都督) 부여융(扶餘隆)이 취리산에서 국경문제에 대해 서맹(誓盟)한 것. 660년에 백제가 멸망하자 당나라에서는 백제의 옛 땅뿐만 아니라 신라까지도 직접 지배하기 위해 663년에 문무왕을 일방적으로 계림주도독(鷄林州都督)에 임명하는 등 그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리고 의자왕의 아들인 부여융을 본국에 파견하여 유민을 안집(安集)시키고자, 그를 웅진도독대방군왕(熊津都督帶方郡王)으로 삼았다. 664년(문무왕 4)에 유인원(劉仁願)의 주재로 웅진에서 신라의 김인문(金仁問)·천존(天存)과 함께 화친의 서맹을 했다. 그후 다시 신라를 견제하기 위해 당은 665년 8월에 문무왕과 부여융에게 웅진 취리산에서 서맹하게 하여 .. 더보기
공주 연미산 : 나제회맹 유적지를 찾아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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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취리산 : 나제회맹 유적지를 찾아서(1) 취리산회맹(就利山會盟) - 개설 당나라가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에 의하여 멸망한 백제 땅에 웅진도독부(熊津都督府)를 설치하여 이 지역을 직접 지배하는 과정에서, 허수아비 정권인 백제를 내세워 신라에게 백제와 화친하도록 강요하여 이루어진 동맹이다. - 역사적 배경 7세기 초 당나라가 성립하면서 신라와 당나라는 서로 접근하였다. 고구려를 패망시키려는 당나라와 백제를 통합하려는 신라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648년(진덕여왕 2)신라의 김춘추(金春秋: 뒤의 태종무열왕)가 당나라로 가서 당 태종과 외교적 담판을 맺었다. 즉, 양국이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면 백제 전지역과 평양 이남의 고구려 땅은 신라에게 할양하기로 하는 일종의 영토분할을 약정하였다. 그 뒤 660년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정벌하였으나 .. 더보기
보령 도미부인 사당 : 그들은 행복했을까? 더보기
옥천 구진베루 : 성왕 전사지 통한의 구진베루 1. 베루에 대한 이야기 : 충청도 중에서도 옥천영동보은 지역에는 '베루'라는 말이 있다. 벼랑의 사투리인 듯하다. 비교) 덜게기(덜개기) : 벼랑으로 이루어진 협곡 2. 관산성 전쟁의 발발 3. 당시 전황 - 백제가 불리 4. 성왕의 출발지와 목적지 5. 당시 백제 내부상황 6. 통한의 구진벼루 더보기
홍성 소구니산성(천태리산성) : 백제부흥군의 성지, 주류성인가? <2018년 3월 11일> <표지사진 - 천태산 남쪽 계곡 입구에서 찍은 소구니(소고니)산성> 미타사 입구. 미타사에 주차하고 다시 내려와 동쪽 길을 걷는다. 그냥 지나쳐 오른쪽 길로 드디어 천태산이 모습을 드러낸다. 나중에 저 고개로 나온다. 고개 가기 전에 좌측으로 백제부흥군길로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