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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기행/백제 산성

부여 청마산성(2) : 남부여가 도성인 사비성 부근에 장기 농성을 쌓다

<2010년 11월 14일>

 

~ 부여 청마산성(1)에서 계속 ~

 

표지사진 - 용정리 독쟁이 계곡. 청마산성은 정면에 보이는 계곡 입구(용정소류지 부근)를 막아 포곡식 산성을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부여청마산성

 이 산성은 백제 말기에는 수도인 사비를 방어하기 위한 외곽 시설로 축조된 것으로 보이며, 현재 서쪽 성벽이 가장 잘 남아 있는데 높이는 약 4~5m, 너비 3~4m 정도이다. 동쪽 성벽도 이와 비슷한데 많이 무너져 있다. 무너진 부분의 단면 층을 보면 기초 부분으로 내려갈수록 잡석(雜石)을 많이 넣어 축조하였고, 특히 기초 부분은 먼저 개흙(진흙)을 깔고 그 위에 잡석을 깐 다음에 성벽을 축조하고 있다. 또한 다른 성과 같이 내부는 자연적인 호를 이루고 있다. 북쪽 성벽에는 4, 5단의 석축 상태가 원형대로 남아 있다. 전반적으로 성벽의 붕괴가 심하나 성벽의 통과 지점은 확인할 수 있다. 지형상으로 보아 수구(水口)는 서쪽 성벽에 설치되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된다. 수도였던 사비와 연락하기 위하여 이 산성의 주문(主門)은 서쪽 수구문 쪽으로 있었을 것이나 무너져서 알 수 없다.

 백제 산성은 방어가 목적이었던 관계로 성문이 적은 것이 특징인데, 그래서인지 남문이 없으며 시야가 트인 곳에서 망대터로 여겨지는 흔적이 있다. 성내에 있는 계곡의 위쪽으로 현재 경작하고 있는 곳이 당시 건물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된다. 성내에는 속칭 각씨우물이라 전해 내려오는 우물터가 있는데, 수량이 풍부하다. 경룡사지(驚龍寺址),의열사지(義烈寺址) 등이 남아 있으며, 성 남쪽에는 유명한 능산리 백제고분군이 있다.

 이 산성은 백제 왕도의 나성의 바깥을 지키는 산성으로서, 서쪽의 성흥산성(聖興山城),북쪽의 증산성(甑山城),남쪽의 석성산성(石城山城)과 함께 수도 사비를 보호하기 위한 외곽 방어 시설로서 큰 의미를 지닌다. <부여군청 홈페이지 인용>


 

산성 내부 산책길은 편안하게 이어지고 있다. 

 

 

 

 산성 외부. 앞 능선을 경계로 우측이 부여읍 능산리 능안골로 보이며, 좌측이 초촌면 신암리 신뜸마을로 사료된다.

 

 산성 내부 계곡

 

 

 

 

 

 산성 내부. 평탄지. 건물지로 보이나 확실치는 않다.

 

 

 

 산성 내부 평탄지

 

 산성 내부

 

 정표

 

 맥꾼들의 표지기. 이곳이 금강기맥 길이다. 청마산성 성벽은 금강기맥과 많은 부분 일치한다. 산성의 남벽과 동벽은 금강기맥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제부터 동벽구간이다.

 

 기맥길 우측으로 난 벤치가 있는 이길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부근 산성이 어떻게 이루졌나 궁금하여 잠시 벤치길로 향한다.

 

 

 

 이곳까지가 산성구간일터...

 

 내려가는 길이 또 유혹한다.나중에 산행을 마치고 지도를 다시 훑어보니 이길이 금강기맥에서 분기한 석성산성과 파진산 가는 능선이었다. 청마산성의 남부여군들이 이 능선을 통해 동쪽에서 사비성으로 들어오는 적들을 기습하거나 포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걷고 싶은 유혹이 강하다.

 

 

 

벤치가 또 나온다.

 

이곳이 청마산성 남동방으로 난 보루성의 마지막일 것 같다. 가끔 산성을 답사하다 보면 능선이 어어진 곳의 산성터가 불명확한 부분들이 있다. 이는 능선의 고저차가 별로 없어 성벽을 쌓는다하더라도 방어의 실익이 줄어든다. 이런 곳이 산성의 제일 취약한 곳인데, 이런 곳에는 보루성을 둠으로써 산성의 방어력을 보강한다. 현재 구간이 딱 이런 곳으로 사료된다.

 

성돌인지는 불명확하다. 추정할 뿐이다. 부여군에서는 청마산성 지표조사라도 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전국 산성 답사를 하다보면 개별 지역의 산성이라는 거대한 기념물들은 그 지역의 역사와 지리적 특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 왜 선조들이 힘들여가며 산성을 쌓았을가 궁구해보면 답은 명확하다. 우습겠지만 간단히 말해 이 지역이 중요했다 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연이어 왜 중요하지 라는 의문이 생긴다. 산성 연구의 시작인 것이다. 필자가 전국 산성을 언젠가는 다 돌아보고 말겠다는 야심찬(?) 꿈을 꾼 것도 이러한 동기일 듯하다. 산성 지표조사보고서도 턱없이 부족하거니와 실지 답사를 하지 않으면 역사가와 역사학자들의 서술이라는 것이 매우 공허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예컨대 <삼국유사>에는 신라 선덕여왕의 지기삼사 중 하나인 옥문곡 전투를 서술하고 있다. <삼국유사>의 저자인 일연은 옥문곡을 지금의 경주시 건천읍 부근인 여근곡으로 비정하는 오류를 범했다. 후대 학자들은 안성천 일대, 경북 상주시나 성주군 일대, 경남 합천군 일대로 비정하는 다양한 견해를 제시한다. 실지 답사를 해보면 옥문곡 전투의 현장이 어디인지는 자명하다. 옥문곡 전투에 대해서는 합천 독산성편에서 자세히 서술하기로 한다.

   

 이곳에서 이정표까지 다시 돌아가기로 작정한다.

 

 이정표로 돌아와 금강기맥(산성의 동벽) 길을 따른다.

 

 

 표지기

 

 산성의 동벽구간

 

 안부. 부여읍 용정리 독쟁이계곡과 초촌면 신암리를 잇는 고개길이다.

 

신암리 방향. 산성 외부.

 

 용정리 방향. 산성 내부.

 

 동벽 구간 계속

 

 성돌의 흔적.

 

 석축의 흔적

 

 석축의 흔적

 

산성 내부

 

 동벽 구간은 낙엽의 융탄자를 깔아 놓은 듯하다. 미끄러지는 것 조심하면 산책로로 최상이다.

 

낙엽에 묻힌 지적 경계점 표지

 

 동북벽 장대지. 석축의 흔적이 완연하다. 이곳에서 금강기맥과는 이별을 고해야 한다. 청마산성의 남벽과 동벽구간은 금강기맥과 능선을 같이 하다가 이곳에서 북벽과 능선을 달리한다. 북벽 구간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이정표. 송곡리 방향이 금강기맥이고, 용정리 방향이 북벽 구간이다.

 

 금강기맥 가는 길. 금강기맥 답사자들의 산행기를 보니 초촌면 신암리 평정말 부근 기맥 상에 석축의 흔적이 완연한 보루 내지 산성이 있는 것으로 적고 있다. 역시 청마산성의 보루성으로 사료된다.

 

 동북벽 보루 전경

 

 

 

 동북벽 보루 석축 흔적

 

 북벽 가는 길(용정리 방향)

 

 민묘 1기

 

 

 

 북벽 외부 송곡리 방향

 

 낙엽의 융탄자를 깔아놓은 북벽 산책길

 

 이정표로 삼아도 좋을 듯하다. 하늘도깨비 명명 속칭 쌍방울 바위. 산성 내부 방향.

 

 산성 외부로 돌출된 바위. 아쉽게도 북벽 부근에서는 석축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산성 외부 송곡리 방향

 

 오르막 산책로

 

 

 

 누군가 담배갑으로 이정표를 만들어 놓았네!

 

 

 

 북벽에서 북방을 조망하지만 나무가지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다.

 

 

 

 

 

 반가운 이정표. 밤나무단지 부근.

 

 이정표가 가르킨 용정리 방향 산책로

 

 북벽은 이길로? 솔직히 석축의 흔적을 찾지 못해 조금 헷갈린다. 청마산성의 북방 가중리 일대와 부여읍 북족의 금강이 조망된다.

 

 가운데 보이는 주장산 구릉에도 산성이 있다. 금강 남안에 위치하여 사비 나성(외성)의 북방을 비호하고 있는 주장산성이다. 둘레는 약 280m에 불과한 테뫼식 토축산성이나 사비성 방어에 긴요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사비성 남쪽의 석성산성과 동일한 역할을 맡은 북쪽 산성이다. 결론적으로 사비성은 내성(부소산성), 외성(나성, 청산성, 금성산성), 장기 농성(청마산성), 외곽방어성(주장산성, 울성산성, 증산성, 부산성, 외리산성, 석성산성, 청마산성)의 계획적이고 완벽에 가까운  4중 방어막을 형성하고 있는 도성이었다. 사비성이 무기력하게 함락당한 것이 아이러니에 가깝다. 역시 모든 성패는 산성 같은 무주물이 아니라 사람이 가장 중요한 변수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한다.

 

 이정표가 있는 이곳 밤나무단지 부근에서 북벽은 모호하다. 이 부근에서 계곡을 향하여 서벽이 나 있을 것 같다.

 

 금강기맥에서 분기하여 주장산으로 향하는 산줄기. 사비성의 자연 북벽을 형성하다가 주장산성이 있는 곳에서 금강과 만난다.

 

 가운데 산구릉이 주장산이다. 좌측 끝 부분이 주장산성이다.

 

 

 

 북벽으로 생각하고 걷다가 무언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쪽은 청마산성 서북쪽 보루성으로 가는 길인 듯하다. 부여군에서는 청마산성 산책로도 정비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빨리 지표조사라도 마무리하여 부소산성 외에 이곳 청마산성도 훌륭한 관광 자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되돌아 나오며 서북쪽을 조망한다.

 

 북쪽 조망

 

 서북쪽을 조망하니 앞산 뒤로 사비 내성인 부소산성이 보인다.

 

 

 

 밤나무 단지로 하산하면서 이곳도 산성이 아닐까 하고 한컷 찍어본다.

 

 밤나무 단지 아래 내려와 보니 산줄기 오른쪽 모퉁이 정도에서 계곡 쪽으로 서벽이 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밤나무 단지가 있었던 송곡리에서 다시 조그만 고개 하나를 넘어 용정리 독쟁이 마을로 들어선다. 정면에 보이는 산 구릉이 체마소 고개 서쪽의 금강기맥 길이다.

 

 독쟁이 마을로 하산하면서 서벽 시작점을 못찾은 아쉬움을 달래며 여기저기 찍어본다.

 

 독쟁이마을 부여왕불가마

 

 서남벽 보루. 청마산성 시작 구간이 보인다.

 

 

 

 청마산성 계곡 가는 길

 

 용정리 독쟁이 계곡. 청마산성은 정면에 보이는 계곡 입구(용정소류지 부근)를 막아 포곡식 산성을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용정리 서쪽 벌판. 좌측 다음 능선이 사비 내성인 부소산성이며, 그 오른쪽으로 낮은 능선이 사비 외성(나성)을 이루는 청산성이다. 사비 내성 지근거리에 장기 농성인 청마산성이 존재하고 있다.

 

 갈대와 용정리 서쪽 벌판

 

 주인을 기다리며 체마소 고개를 지키고 있는 애마. 이참에 이놈 이름 한번 지어야겠다. 무원부지(無遠不至). 아무리 먼곳이라도 이르지 못하는 곳이 없다. <삼국유사>에서 원광법사가 화랑도를 이르며 붙인 이름이다.

 

체마소 고개 전봇대에는 재미있는 글귀가 적혀있다. '쓰래기 버리는 강아지는 죽인다' 이 얼마나 점잖은 표현인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