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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기행/백제 산성

논산 황산성 : 백제 황등야산군의 치소

<2010년 7월 18일>

 

황산성의 연원은 깊다. 부여인들이 금강 연안으로 들어오기 전부터 황산성 일대는 '표정리식' 토기 문화를 일군 토착 세력이 강력했을 것으로 추론된다. 지금의 충청도와 전라도를 우리는 백제문화권역으로 통칭하지만, 백제라고 불렸던 부여인들이 금강 연안으로 남하하기 전부터 금강과 영산강 유역에는 많은 가야 폴리스들이 자생하고 있었을 것으로 사료된다. 즉 반도에서 삼국이 정립됨으로써 수많은 가야 폴리스들이 멸망하였고, 낙동강 일부 지역에서 삼국과 최후의 항전을 벌였던 까닭에 마치 가야가 경상도 일부 지역에서만 존속했던 것으로 오인되었다. 이는 가야의 꼬리만 보고 가야의 전부를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부여는 내부 갈등에 의해 북부여(고구려)와 남부여(백제)로 분열되었다. 475년 어렵게 일군 한강 유역의 위례성 마저 북부여에게 내준 남부여는 이때부터 금강 연안으로 남하하기 시작했다. 금강 연안의 가야 폴리스들이 남부여에게 복속되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이다. 이즈음 황산성 일대의 가야 폴리스인들도 남부여인들의 우위를 인정하고 백제라는 거대 공동체에 편입된 것으로 이해된다.

황산성이 소재한 논산시 연산면 일대에는 '표정리식 토기'가 출토된 고분군들이 산재해 있다. 이들 고분의 주인공들은 150여년 가까이 남부여에게 협력하였고 특히 지정학상 사비 도성의 동쪽 관문을 지키는 든든한 후원 세력으로 기능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황산벌 전쟁 이후로 가야 폴리스로부터 남부여(백제)까지 이어진 기나긴 역사의 여정도 마무리되었을 것이다.

 

논산시 연산면 소재지에서 관동리 가는 방향으로 황산성 안내판이 서 있다.

 

황산벌 전쟁 당시 신라군은 삼도로 삼분하여 황산벌로 진격하였는데, 보이는 산은 그 중 하나로 추정되는 금강기맥 상의 황령재이다.

 

양정고개 가는 길. 양정고개는 탄현으로 추정된다. 지금도 4번 국도가 지나가 계룡시와 대전시 방면으로 갈 수 있는 제일 빠른 길이다. 이곳 연산면 소재지에서 양정고개까지는 협곡이 펼쳐져 있어 입구만 봉쇄하면 새장 속에 걸려든 새처럼 오도가도 못하는 형국을 만들 수 있는 유리한 곳이다. 남부여 군주 의자왕과 계백 장군이 노렸던 유력한 전술이다. 하지만 김유신이 탄현을 넘는 척하면서 삼도로 나뉘어 진격하는 바람에 연산면 소재지 후방 황산벌까지 전선이 확대되면서 계백의 남부여군은 무너졌던 것이다.

 

관동교 좌측 높은 봉우리가 황산성이다. 황산성 우측 아래 골짜기가 관동리 일대이다. 관동리에는 화랑 관창에 대한 슬픈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황산성과 관동리 이정표

 

황산성과 그 우측의 함지봉(386.5m)

 

연산천 건너 남동쪽의 금강기맥상의 황령재. 금강기맥은 사비 도성의 동쪽 자연방어벽 역할을 하였다.

 

황령재 남쪽의 금강기맥

 

황령재 북쪽의 금강기맥. 탄현으로 추정되는 양정고개까지 다다른다.

 

관동리 계곡 북쪽으로 함지봉이 보인다.

 

황산성 가는 임도에서 바라본 남쪽의 연산면 일대. 좌측으로 금강기맥의 능선이 힘차게 북류하고 있다. 금강기맥의 우측 구릉과 평지가 바로 황산벌이다.

 

뒷 능선이 바로 북류하는 금강기맥이다. 금강기맥은 남부여 도성 사비의 동벽 역할을 한다.

 

금강기맥의 황령재 부근

 

관동리에서 임도를 따라 오르면 미니주차장이 나온다. 등산로 안내도.

 

이정표1

 

안내판

 

이정표2

 

황산성 오르는 길

 

 

 

 

 

서문터 오르는 길. 서벽 구간이 시작된다.

 

서벽 아래 길

 

서문터 오르는 길

 

이정표가 보인다.

 

약사암 방향으로 시작해서 일주하려 한다.

 

약사암 방향

 

연못이다. 재작년(08년) 올때는 간과했던 것 같다.

 

황산성은 테뫼식 산성이나 산정 바로 아래 조그마한 계곡에 수원이 풍부하여 포곡식 산성 못지 않게 장기 농성의 요건도 구비한 것 같다. 

 

 

 

 

 

기와 파편

 

서남벽 구간이 보인다.

 

나무 동굴을 지나서...

 

남벽이 보인다.

 

남동쪽으로 금강기맥이 시원하게 조망된다. 금강기맥 서쪽 아래 구릉과 평지가 황산벌이다. 황산벌은 정확히 말하면 연산천 상류 연산면 일대를 지칭하나, 김유신의 3도 전술에 의해 전선이 확대됨으로써 탑정호(논산저수지) 상류 양촌면 일대까지 포괄하게 된 것 같다. 금강기맥 뒤 능선은 대둔산이다. 김유신의 3도는 남으로 대둔산과 북으로 계룡산 사이의 금강기맥상의 3고개를 지칭한다. 그 3고개는 먼저 양정고개(탄현으로 추정), 황령재(연산면 소재지 동쪽 고개), 황령재 남쪽의 덕목재 혹은 곰치로 추정된다.

 

남문터 부근

 

황령재 부근. 김유신 진격로 3도 중의 하나로 추정된다.

 

석축의 흔적

 

금강기맥의 황령재. 그 아래 좌측 연산천을 거슬러 올라가면 개태사가 나오고 양정고개가 나온다. 지금도 부여와 경주를 연결하는 4번 국도가 지나가지만 고대에도 사정은 다를 것 같지 않다. 대둔산과 계룡산 사이 금강기맥 상의 고개 중에서 제일 해발고도가 낮고 평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전, 옥천 방면으로 갈 수 있는 최단거리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목책을 세워 방어하지 않았다는 것이 고대 사서의 기록이다. 필자가 양정고개를 가장 유력한 탄현으로 추정하는 근거는 고대나 현대의 지리 관념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다만 고대 탄현이 대전 동방의 식장지맥상의 고개라면 대전에서 옥천 넘어가는 4번 국도상의 마달령이거나 자모실 고개로 비정할 수 있다. 하지만 대전 근방의 탄현을 넘었다고해서 남부여가 바로 위기에 봉착하는 것이 아니다. 신라군이 거쳐야 할 산성들과 복병들이 상존하고 시간적 여유도 어느 정도 있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식장지맥 상의 고개는 역사적으로 한번 뚫렸던 적이 있었다. 관산성 전쟁 당시 성왕을 포함하여 3만에 가까운 남부여군이 식장지맥 부근의 고리성과 백골산성에서 전사하였기 때문이다. 이때도 신라군은 식장지맥 상의 고개는 얼마든지 넘을 수 있었고 사비 도성으로 진격할 수 있었다. 식장지맥 상의 고개가 뚫린다면 남부여가 방어에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곧바로 남부여가 위기에 빠져 사활을 걸고 도성을 지켜야 하는 급박한 상황에 처하는 것은 아니다.

 

남벽에서 바라 본 금강기맥 천호산 부근

 

황산벌과 그 남쪽으로 좌측에는 대둔산(878.9m)과 우측에는 천등산(706.9m)이 보인다.

 

 

 

기와 조각

 

남동벽 내부 산책로

 

 

 

남쪽으로 황산벌이 잘 조망된다.

 

 

 

동쪽의 금강기맥. 천호산 부근으로 천호산은 고대에 황산으로 불렸던 것 같다.

 

황령재 부근

 

연산면과 양촌면 일대. 황산벌 우측 1선 봉우리가 청동리산성(매봉산성)이며 2선 봉우리가 병암리산성(갈마산성)이다.

 

정상 장대지 가는 길

 

 

 

 

 

동벽 산책로

 

 

 

동벽 산책로. 수풀을 제거한 덕분에 산행하기 편했다.

 

수풀이 덮혀있지만 산성 내부 평탄지임

 

기와 조각. 평탄지는 건물지임이 분명하다.

 

정상 장대지가 보인다.

 

 

 

황산 정상에 서니 남쪽으로 대둔산과 금강기맥이 보인다.

 

이정표

 

향적산 가는 길. 북문터(?)일까?

 

오른쪽 봉우리가 함지봉일터...

 

관동리 계곡 상단과 동쪽으로 금강기맥 천호봉이 보임. 천호봉 아래가 개태사임. 개태사 부근이 왕건이 후백제군을 격파한 곳이다. 따라서 황산벌 전쟁도 비슷한 양상이었을 것이다. 아! 역사는 반복되는 것인가?

 

금강기맥이 북류하여 계룡시 양정고개까지 치닫고 있다. 상식적으로 판단하면 탄현이 어디인지는 자명하다. 탄현은 나제간의 간선도로이며 금강기맥이 지나는 고개로 볼 수 밖에 없다.

 

장대지 상단에서 바라본 남방.

 

동남방 황령재 부근

 

서남방 탑정저수지 방향. 앞 능선 뒤가 바로 탑정호이다.

 

서방

 

서남방 일대. 탑정호 북안 나무가지 두 개가 가린 산 구릉에 계백장군 묘가 있다.

 

장대지 바위. 계백장군 바위로 명명할까?

 

서벽 하산길

 

서남방

 

외성리산성은 우측 산 능선 끝자락에 있지만 수풀 때문에 시야에 잘 들어오지는 않았다.

 

결국 외성리산성 찍는데는 실패.

 

서벽 하산길

 

되돌아보며...

 

 

 

서벽 산책로

 

 

 

벤치와 소나무

 

서문터가 보인다.

 

웬 돌벽이람. 탑만들다 실패했나?

 

서문터 부근의 평탄지

 

 

 

서문터 내려가는 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