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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도성기행/가야 폴리스 기행

거제 사등성 : 고대 남해의 지배자 골포국의 해상 왕성을 가다

<2010년 12월 18~19일>

 

 

표지사진 - 사등성과 남쪽의 백암산(495m) 능선

 

거제도는 통합 창원시 남쪽 바다의 장벽 역할을 한다. 이 때문에 창원의 남쪽 바다는 내해와 비슷하다. 이 내해의 지배자가 포상팔국 중의 하나인 골포국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거제 사등성은 골포국의 해중 왕도로 사료된다. 해중왕도라 함은 육지에 기반을 둔 별도의 중심지가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런데 안내문에는 사등성이 독로국의 왕성으로 기록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독로국은 지금의 부산시 동래구 복천동고분군의 주체로 이해되고 있다. 고대 삼한의 무수한 가야 폴리스의 위치를 정확히 비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다만 이곳 창원과 거제가 감싸고 있는 내해를 지배한 가야 폴리스가 분명 존재하였을 것이란 추정은 가능하다고 본다.

 필자는 이를 골포국으로 추정하였다. 왜냐하면 <삼국사기 물계자전>과 <삼국유사 피은 물계자전>에 골포국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 일대는 낙동강 하구 바로 서쪽 내해 해상 교통로 상에 있어 제 가야 폴리스의 관문 같은 곳이다. 그리고 부산포와 더불어 열도와 반도로 진출입할 수 있는 요지이다. 따라서 아라 내지 가야를 공격한 포상팔국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거점이 이곳이다. 기록상에는 골포, 칠포, 고사포, 보라국, 고자국, 사물국 등이 나오는 바, 이중에서도 3C 초 골포국이 이끄는 삼국이 사로국을 침공한 갈화전투가 주목을 끈다. 사로국은 지금의 부산포까지 동해 육로를 따라 외연을 확장하고 있었다. 이는 곧 가야 폴리스의 중계 무역권이 위협받는 수준에 이르렀고, 이 때문에 포상의 8국이 연합하여 사로국을 공격한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육상에 기반을 둔 가야 폴리스가 포구와 중계 무역에 기반을 둔 포상의 해양 세력을 장악하던 시기가 당시였으며, 창원 일대의 육상 포구가 위협받자 해중인 이곳 거제 사등성으로 거점을 옮겼을 것으로 사료된다. 그리고 얼마 안가서 안라국이나 금관국에 의해 정복당하고 포상 팔국은 고성 일대의 소가야국으로 통합되었을 것이다. 물론 열도로의 이주도 하나의 중요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거제도 일대는 신라가 남부여를 완전히 무너뜨린 663년 이후에나 비로소 장악할 수 있었다. 열도와 남부여 세력은 반도 진출의 통로인 이곳 내해를 지배하며 완강히 버티다가 결국 문무왕 17년(677)에 이르러서야 상군(裳郡)을 설치할 수 있었다. 상군으로 명명한 것은 이곳이 신라의 아랫도리 같은 곳으로 뜻풀이를 할 수 있다. 이곳 원주민들에게는 다소 치욕적인 이름이다. 이는 이곳이 신라에게 오랫동안 통치를 허용하지 않았던 곳이라 신라인들이 다소 경멸적인 이름을 부여한 것 같다. 그러다가 경덕왕 16년(757)에 거제군이라 하며 비로소 온전한 이름을 붙인다.

 

 

사등성 전경

 

대전통영고속도로 남쪽 끝인 통영나들목에서 14번 국도를 타고 신거제대교를 건너면 바로 오량성이 나온다. 이곳에서 10여분 가다보면 사곡삼거리 성내공단이 나온다. 공단에서 14번 국도 건너편이 성내마을이다. 필자는 성내마을 못미처 대리마을 가는 길에서 빠져 사등성을 서쪽에서 조망하였다. 남쪽으로 조선기자재 협동화 공단인 성내공단의 크레인이 보인다. 그 남으로 성내마을을 감싸안은 사등성이 있다.

 

사등성 서벽

 

사등성 남쪽으로 백암산이 보인다.

 

사등성 북벽과 내부. 동북쪽으로 바다건너 연초면 한내리 일대의 솔병산(440m) 자락이 보인다.

 

사등성 서북벽과 내부

 

백암산 서쪽의 개금치를 넘어면 거제시 둔덕면이 나온다. 둔덕면에는 폐왕성과 기성현성이 있어 사등성과 더불어 초기 골포국의 해상 채널이 지금의 신거제대교가 위치한 해협을 중심으로 포진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한다.

 

서벽 내부

 

서남벽 내부

 

서남벽과 외부

 

 서벽을 통해 성 내부로 들어가는 길. 성내마을 가는 길이다.

 

 서벽과 외부. 남쪽으로 백암산이 보인다.

 

 서벽과 개금치 가는 길.

 

 안내문에는 독로국의 왕성이었다고 한다. 물론 부산 동래 연안에 거점을 둔 독로국의 힘이 이곳까지 미칠 수 있겟다. 그랬다면 사로국이 독로국을 장악하고 독로국 군사와 군선을 이용하여 이곳 거제도까지 진출하여 해상 기지를 건설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이 구전으로 전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삼한 시절의 일을 어찌 정확히 알 수 있겠는가? 아무튼 산성에 익숙한 필자로서는 이처럼 모래 평지에 쌓아올린 석축성을 보고 있자니 매우 신선함이 느껴진다.

 

 안내판이 서있는 곳에서 산성 내부로 들어가는 입구는 치성의 구조로 된 듯하다.

 

 서벽 상단

 

 사등성이 보호하고자 했던 성내마을. 과연 골포국 내지 독로국의 왕성지가 있었을까? 무지 궁금하다.

 

 성내마을(성 내부)

 

 서남벽 상단

 

성 외부 대리마을

 

 성 외부. 북쪽으로 14번 국도가 지나간다.

 

 서벽의 석축이 아직도 건재하다. 사등성은 마을과 혼재되어 있어 복원 비용이 제법 들겠지만 보람 또한 클 것으로 사료된다. 낙안읍성처럼 훌륭한 모습을 갖출 수 있을 것 같다.

 

 

 

 서벽의 치성

 

 남쪽으로 치성 하나가 더 보인다.

 

서벽 치성 전경

 

 

 

 서벽의 남쪽 치성

 

 

 

 정면에서 바라 본 치성

 

 

 

 남쪽으로 또 하나의 치성이 보인다. 서벽 일대에만 치성 4개나 관찰된다. 그 중 하나는 길 때문에 완전히 파괴된 듯하다.

 

 북쪽에서 바라 본 세번재 치성

 

 네번째 치성은 옹성의 구조를 하고 있다.

 

 옹성으로 성문이 있었다.

 

 남국의 보리밭 뒤로 북벽의 모습이 이채롭다.

 

 

 

 북벽 전경. 이쯤에서 북벽은 초등학교와 마을에 의해 흔적이 모연하다. 성내 마을의 집 대부분 담장을 성돌을 헐어 만들었다.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바라 본 북벽

 

 하릴없이 마을 내부 골목길을 돌아다니니 할머니들이 필자를 의구하게 쳐다본다. 간단히 목례를 하니 누구 집 자식인지 검증하려는 듯 자세히도 쳐다본다. 꼭 낮에 나온 도깨비 쳐다보듯 하니 쑥스럽구만! ^^ 사등성 보러 왔다고 하니 그제서야 시선을 거두시네. ㅎㅎㅎ

 

 마을 이정비 옆의 안내판.

 

 사등성 남벽

 

 남벽

 

 남벽

 

 남벽

 

 사등성 서남벽

 

 서문 옹성터로 추정되는 곳. 길이 나있어 외벽이 허물어지고 낮아졌다.

 

 사등성 서남벽 전경

 

일주하였으나 동벽 부분은 살피지 못하였다. 대우조선에 다니는 국민학교 동창 놈이 눈빠지게 기다린다니 더 이상 지체하기 힘들었다. 참고로 거제에는 관방유적(성곽과 봉수)이 확인된 것만 30개소 정도 있다. 그 중 성곽이 22개소이다. 이는 거제도의 지정학적 입지를 말하는 것이다. 열도에서 반도나 대륙으로 향하는 해양 관문이기 때문이다. 고대에는 부산포보다는 거제 일대의 해상 포구가 반도와 대륙으로 열린 길이다.

 

 다음날 아침 일찍이 거제시 남부면 망산 남록의 홍포에서 남해(한려해상국립공원)를 감상하였다. 

 

 

 

 

 

 

 

 

 

 

 

 

 여차마을과 여차몽돌해수욕장. 오른쪽 봉우리는 천장산(277m)이다.

 

 

 

점심을 먹고 거제포로수용소를 방문했다. 거가대교가 개통되어선지 입장하려면 줄서서 표를 사야할 정도였다.

 

 

 

 

 

 PX 및 무도장

 

 

 

 

 

 경비대 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