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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추론/대회전

임실 성미산성(1) : <삼국사기>의 각산성인가?

<2011년 2월 13일>

 

표지사진 - 임실 성미산성 동벽

 

* 학계에서 각산성을 임실 성미산성으로 비정하고 있다. 필자는 바로 이전의 <청양 두솔성> 편에서 무왕 6년(605년)에 축조한 각산성을 청양 두솔성으로 추정하였다. 이러한 의문점을 해결하기 위해 임실 성미산성을 답사하였다. 오늘 글은 602년의 모산성 전투와의 연관성 속에서 각산성을 추정해 보았다. 역사의 신만이 알겠지만, 각산성에 대한 자료를 분석하다보니 각산성은 임실 성미산성 일대라는 확신이 든다. 이후 <청양 두솔성> 편의 글은 수정할 생각이다.

 

602년(무왕 3년) 8월 남부여 좌평 해수는 보병과 기병 4만을 거느리고 모산성을 공격하였으나 결국 실패하고만다. 모산성 전투 패배 후의 전황에 대해서 이도학 교수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신라는 무왕이 각산성을 축조하여 맞서자 605년에 정확한 장소를 알 수 없는 백제의 동쪽 변경을 공격하였다. 신라가 공격한 곳은 아막성에서 남원을 거쳐 임실로 연결되는 지역으로 추정된다. 이는 백제가 신라에게 전북 동부 지역에서 밀리면서 수세에 처했음을 반영한다. 신라는 함양에서 팔령치를 넘은 다음 운봉고원을 거쳐 남원과 임실 등의 전북 동부 지역으로 진출하였고, 백제는 각산성 등을 축조하여 신라의 공격을 대비하였다. 무왕의 가야 지역 진출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신라군의 반격에 밀려 남원과 임실 및 장수 일대에서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전개하였다."  이도학, <백제 집권국가형성과정 연구>, 한양대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1991, p385

 

 

 이도학 교수가 설명하고 있는 부분은 다음의 <삼국사기 백제본기 무왕 6년 조> 기사이다.

 

“무왕 6년(605) 봄 2월에 각산성(角山城)을 쌓았다. 가을 8월에 신라가 동쪽 변경을 침범하였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무왕 6년 조>


 남부여는 모산성 전투에 패한 2년 6개월 후 각산성을 축조하였다. 해수가 이끈 4만의 병사가 모산성에서 대패하였다면, 이후 벌어질 신라의 서진에 대비하여 산성을 축조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따라서 각산성은 모산성과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을 것으로 추론된다. 그렇다면 각산성은 어디일까?

 모산성은 아막산성으로 지금의 남원시 아영면 성리 서쪽 백두대간 상의 치재 남쪽에 위치한 산성이다. 남부여는 백두대간을 넘어려고 4만의 군대를 동원하여 모산성을 공격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이후 승리의 기세가 오른 신라군은 남부여의 동부전선을 끊임없이 자극한 것이 <백제본기 무왕 6년 8월 조> 기사이다. 이를 이도학 교수는 신라군의 반격에 밀려 남원과 임실 및 장수 일대에서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전개한 것으로 인식한 것이다.

 

임실군(任實郡)은 본래 백제(百濟)의 현이었는데, 경덕왕(景德王)이 주군(州郡)의 이름을 고쳤다. 지금까지 모두 그대로 따른다. 영현(領縣)은 2개이다. 마령현(馬靈縣)은 본래 백제(百濟)의 마돌현(馬突縣)이었는데, 경덕왕(景德王)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까지 그대로 따른다. 청웅현(靑雄縣)은 본래 백제(百濟)의 거사물현(居斯勿縣)이었는데, 경덕왕(景德王)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은 거령현(巨寧縣)이다. <삼국사기 잡지 지리 임실군 조>

 

 <삼국사기 잡지 지리 임실군 조> 기사에는 임실군이 백제의 현이었다고만 하여 남부여 때의 지명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이 기사에서 보이는 임실군의 역할이 주목된다. 임실군에는 영현이 둘인데, 바로 남부여의 마돌현과 거사물현이 그것이다.

 마돌현은 지금의 진안군 마령면 일대로 치소로는 마령면 강정리산성이 유력하다. 지금의 행정 개념으로 보면 마령면 일대는 임실군이 아닌 지근거리에 있는 진안군에 속해 있다. 하지만 고대 남부여와 신라는 마령면 일대를 임실군의 영현으로 삼았다. 주지하다시피 고대 행정 체계는 군사 체계와 궤적을 같이 한다. 따라서 군사적으로 마돌현은 임실군의 영을 따랐으며, 주 기능은 임실군의 치소를 동쪽에서 방어하는 것이었다.

 한편 거사물현은 모산성 전투 이후 신라군과 직접 대치하는 최전선이 되었다. 당시 거사물현의 영역은 섬진강 지류인 오수천 일대인 남원시 덕과면·보절면·사매면, 장수군 번암면·산서면, 임실군 지사면·오수면 일대로 사료된다. 그런데 거사물현 또한 임실군의 영현으로 임실군의 군사적 통제를 받았다. 이는 거사물현의 주 기능이  임실군의 치소를 남방에서 방어하는 것임을 말한다.

 이로서 임실군의 기능이 확연해진다. 임실군은 남원에서 전주로 가는 남북교통로와 장수·진안에서 정읍·부안으로 가는 동서 교통로가 교차하는 지점에 입지하여 남부여 동방과 남방을 동시에 수호하는 역할을 지닌 것이다. 즉 임실군의 치소는 이 일대 동남방 최전선의 사령부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필자는 이에 주목하여 각산성을 임실군의 치소로 추정한다. 그 유력한 후보지로는 지금의 임실군 관촌면 섬진강 동안의 성미산성으로 꼽는다. 이 일대는 성미산성 외에도 섬진강 서안의 방현리산성·대리산성·슬치리산성이 있어 이 일대 교통로를 통제하기 위한 남부여의 노력이 엿보인다. 즉 이 일대가 산성들이 집중 분포하는 동서와 남북 교통의 결절지라는 점에서 임실군의 치소인 각산성이 소재한 곳으로 유력해 보인다.

 결론적으로 모산성 전투 이후 남부여와 신라간에는 거사물 지역을 사이에 두고 각축을 벌였을 것이다. 그리고 거사물 지역을 둘러싼 각축의 배후에는 각산성(임실 성미산성)이 있었을 것이고, 임실군의 남부여 대 이름은 각산군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정해 본다.

 

 그리고 각산성은 남부여 부흥 전쟁 시기에 다시 한번 <삼국사기>에 등장한다. 

 

태종무열왕 8년(661) 여름 4월 19일에 군사를 돌이켰는데, A. 대당(大幢)과 서당(誓幢)이 먼저 가고 하주(下州)의 군사는 맨 뒤에 가게 되었다. 빈골양(賓骨壤)에 이르러 백제의 군사를 만나 서로 싸웠지만 패하여 물러났다. 죽은 사람은 비록 적었으나 병기(兵器)와 짐수레를 잃어버린 것이 매우 많았다. B. 상주낭당(上州郎幢)은 각산(角山)에서 적을 만났으나 진격하여 이기고, 드디어 백제의 진지에 들어가서 2천 명의 목을 베었다. C. 왕은 군대가 패배하였음을 듣고 크게 놀라서 장군(將軍) 금순(金純)·진흠(眞欽)·천존(天存)·죽지(竹旨)를 보내서 군사를 증원하여 구원케 하였으나 가시혜진(加尸兮津)에 이르러서 군대가 물러나 가소천(加召川)에 이르렀다는 것을 듣고 이에 돌아왔다. 왕이 여러 장수들이 싸움에서 패배하였으므로 벌을 논하였는데, 각기 차등있게 하였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태종무열왕 8년 조>

 

 이는 신라군이 모산성 이서의 즉 백두대간 서쪽의 남부여 부흥군을 공격한 기사로, 비록 사비도성은 함락되었지만 금강 이남의 동진강과 섬진강 유역은 여전히 남부여군이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전주에서 남원가는 17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임실군 관촌면 사선대 부근에서 진안가는 49번 지방도로 갈아타고 3분여 가다 보면  임실 성미산성과 수월사 이정표가 보인다.

 

우측이 관촌면 사선대 방향, 좌측이 진안가는 방향.

 

새로 개통된 전주광양간 고속도로가 보인다. 그 뒤로 임실 성미산성의 동벽이 어렴풋이 보인다. 요즘은 구제역 소동 때문에 산성 답사하러 시골 동네 들어가는 것이 미안하다. 하늘도깨비는 무구 청정 지대니 안심하길... 축사 근처에는 얼씬도 안합니다. 하늘도깨비가 다닌 동네에 구제역 낫다는 뉴스는 접해보질 못햇으니 아직까지는 청정 지대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은데...그래도 모르니 조심 또 조심! 

 

임실 성미산성 전경

 

수월사 가는 길

 

수월사 가는 길 좌측으로 성미산성 오르는 길이 있다.

 

수월사 입구

 

수월사 극락보전

 

당산령 나무 안내판. 빛이 반사되어 글씨가 잘 나오지 않았다. 어! 하늘도깨비도 찍혔네!

 

왼쪽 할아버지 나무, 오른쪽 할머니 나무. 노거수는 수령 600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당산령 나무 아래에서 굿판을 벌이고 있었다.

 

극락보전 안내문. 하늘도깨비 몸매!

 

극락보전

 

불유화신상

 

안내문. 아미타불 전에서 득도한 후 중생구제를 위해 시방세계에 화신으로 오신 분이 불유화신이란다. 수월사의 유래는 수월관음보살에서 나온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불교와 도교 및 산신 신앙이 습합된 인물이 불유화신이란 생각이 든다.

 

수월사 뒷편으로 오르다 산성가는 길이 막혀 있음을 알았다. 할머니들도 참! 하늘도깨비가 산성간다고 할 때, 그쪽으로는 길을 막아 놓았으니 둘러가라고 하든지... 그래서 막아 놓은 길옆 수풀을 헤치고 나왔다. 산성을 눈앞에 두고 내려가서 다시 올라오기에는 어째 좀... 

 

수풀 사이로 동벽이 보인다.

 

산성 입구

 

동벽에 올라 남녘을 바라보니 아래로 임실 관촌면 사선대가 보인다.

 

동벽 오르는 길

 

성미산성 안내판

 

동벽

 

동벽 뒤로 동남쪽으로 연이은 산 능선들이 보인다.

 

남쪽의 사선대와 우측의 섬진강. 좌측동 남쪽으로 내려가는 17번 국도로 남원 방면으로 가다보면 고대 남부여 거사물 지역이 나온다. 거사물은 지금의 장수 지사면과 남원 덕과면, 보절면 일대이다. 이곳이 602년 모산성 전투 이후 남부여와 신라간에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인 지역으로 사료된다.

 

산성 내부

 

산성의 남쪽. 섬진강이 내려가다 막히는 산 능선 우측에 임실군 신평면 대리산성이 있어 섬진강을 따라 서류하는 동서 교통로를 보호하고 있다. 사진에 보이는 다리 우측이 전주가는 북쪽 길이다. 이 일대에서 전주를 가려면 호남정맥인 슬치를 넘어야 한다. 이 슬치 서쪽에 임실군 관촌면 슬치리 산성이 있어 남북교동로를 보호하고 있다. 또한 성미산성 바로 서쪽에 관촌면 방현리산성이 있어 섬진강 양안을 보호하고 있다. 이 일대는 장수와 진안에서 넘어오는 동서 교통로와 남원에서 올라오는 남북교통로가 교차하는 교통의 결절지이다. 따라서 이곳에 산성을 집중적으로 배치하여 남부여 서부와 북부의 땅을 보호한 곳이다. 필자가 성미산성을 각산성으로 추정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동벽

 

산성 내부의 돌벽. 이는 밭을 만들기 위해 석축한 것으로 사료된다. 물론 이전에는 평탄지를 조성하기 위해 석축한 것일 수도 있다.

 

동벽 구간.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신축한 것이다. 남쪽의 사선대와 섬진강. 원래는 섬진강이 사선대 서안 절벽까지 물이 흘렀다고 한다. 따라서 고대 성미산성은 동벽 구간만이 산 구릉으로 연결되어 있어 동벽만 튼튼히 하면 철옹성이 되는 것이다. 삼면이 자연해자로 보호되고 있다. 더구나 각산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성미산은 원뿔형의 산성으로 매우 가파르다. 교통의 결절지라는 점과 산의 모양으로 이미 성미산은 군사상의 요지임을 알 수 있다.

 

남녘으로 좌측 남원방면으로 가면 고대 거사물 지역이 나온다. 아래로 전주광양간고속도로가 지나간다.

 

남쪽의 사선대 절벽. 모자지간에 등산을 온 모양이다. 다정하게 산성 동벽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보기에 좋았다. 인사를 주고받고 내려간다.

 

북벽 오르는 길

 

정상의 안내판

 

정상의 동북방. 이 길이 진안과 장수로 가는 동서 교통로이다. 49번 지방도와 궤적을 같이한다. 진안 마령면이 나오는데, 마령면 일대가 남부여의 마돌현으로 임실군의 영현이다. 마돌현은 이곳 성미산성의 동쪽 방어를 담당하고 있다. 마령면 경계인 고개 부근에 오르면 마이산이 보인다.

 

정상의 북방으로 방미산(568.6m)이 보인다. 성미산성 북쪽은 방미산과 이곳 성미산(431m)이 가까이 붙어 있어 흡사 병목(협곡)을 이룬다.

 

정상에는 민묘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서북방으로 북쪽에서 섬진강이 남류하고 있다.

 

북벽 아래로 내려가는 등산로. 눈이 덮여 있어 내려가기에는 적합하지 않을 듯하다.

 

정상의 서쪽. 전주광양간 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뚫려있다. 듣기로는 전 구간이 개통되었다고 한다. 하늘도깨비 산성다니기는 편할 듯하다. 고속도로 휴게소 부지 좌측 산 뒤로 고속도로와 평행하게 17번 국도가 북쪽의 전주로 지향하고 있다. 휴게소 부지 좌측 산 능선이 호남정맥으로 그 좌측 낮은 부분이 슬치 일대로 사료된다. 슬치 서쪽에도 산성을 쌓아 남원에서 올라오는 남북교통로를 보호하고 있다.

 

섬진강 서안의 공수봉(367m). 이곳에 방현리산성이 있다.

 

 

 

 

 

정상의 동북방. 진안 장수로 나아가는 동서교통로이다.

 

정상의 서쪽. 공수봉 일대.

 

정상의 남쪽 평탄지. 민묘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 임실 성미산성(2)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