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20일>
표지사진 - 망이산성 내부에 있는 구송소나무
진흥왕 14년(553) 가을 7월에 백제의 동북쪽 변두리를 빼앗아 신주(新州)를 설치하고 아찬(阿湌) 무력(武力)을 군주(軍主)로 삼았다. <신라본기>
553년에는 백제가 어렵게 고구려로부터 탈취한 동북변경 6군을 공취한다. 이때 신라는 신주를 설치한다. 신주 설치는 신라가 미호천 상류 일대를 장악하고 한남정맥을 넘어 남한강 하류로 진출할 교두보를 확보했다고 볼 수 있다. 신주의 치소는 지금의 진천읍 대모산성이 유력하다.
당시 신주의 영역은 지금의 충북 음성군과 진천군 일대이다. 이곳은 미호천 상류의 넓은 분지로 이루어져 있다. 신라가 신주를 설치하였다면, 다음 행로는 한남정맥 상의 수레티를 넘어 고구려 개차산군을 정복하는 것이다. 개차산군은 남한강 지류인 청미천 상류 지역으로 교통의 십자결절지인 곳이다. 지정학상 요지로 향후 신라의 북진과 서진의 향배가 달린 곳이다. 고구려가 이러한 요지를 쉽게 내줄리 만무하다.
신주에서 한남정맥을 넘어 남한강 지류인 청미천 유역으로 진출할 수 있는 고개가 바로 수레티 고개이다. 수레티 고개는 지금의 중부고속도로 화봉육교 아래이다. 수레티는 말 그대로 수레가 넘을 정도로 큰 길이란 뜻이다. 고구려가 이처럼 중요한 수레티를 지키기 위해 수레티 동쪽의 망이산 정상에 요새를 구축했다. 그 요새가 바로 안성(음성) 망이산성이다.
죽주산성을 답사하고 죽산면 매산리 석불입상을 감상한 다음, 망이산성으로 향했다. 망이산성 가는 길은 죽산면 소재지 매산삼거리에서 장호원 가는 38번 국도로 진행하다가 일죽면 소재지로 들어와 음성 삼성면 방향의 329번 지방도를 타고 가다 306번 지방도와 분기하는 지점(농협주유소 사거리)에서 좌회전하면 된다. 3분여 가다보면 휴게소 맞은편 우측으로 등산로 이정표가 보인다.
미륵당 오층석탑 안내문
매산리 석불입상 안내문
미륵석불입상 전경. 누가 빈 소주병을 올려 놓았다.
소주병 치우고 한컷...보개를 쓴 모양이 이채롭다.
안내문에는 이목구비의 균형이 맞지않아 기괴한 느낌을 준다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다정다감한 인간미도 풍기는 것 같다. 후천 세상에 미륵불이 오실 때, 보개를 쓰고 온다더니... 그리고 키가 무척 커서 보통 사람들은 미륵의 얼굴을 쳐다 볼 수 없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공평무사한 부처님이라면 우리를 다 굽어 보시지 않을까?
미륵당 오층석탑과 미륵석불입상
미륵을 가장 잘 표현한 석불입상인 듯하다.
망이산성 등산로 이정표
망이산 등산로 안내도. 오른쪽 차현(車峴)고개가 바로 수레티이다. 수레티를 한자로 쓰면 차현이다. 수레티는 전국에 많이 있다. 수레가 지나갈 정도로 큰 길이 나있는 고개이다. 수레티 이름을 달았다면 고대 주요 간선 교통망으로 이해하면 된다. 지금은 중부고속도로가 지나고 있어 화봉육교가 있다. 음성군 삼성면 대야리에서도 망이산을 오를 수 있어 망이산은 안성과 음성 주민들이 공히 사랑하는 산이다. 정상에 서면 음성들판과 안성 죽주들판이 둘다보인다.
안내문
오르다 바라 본 망이산. 멀어 보이지만 오르는데 4~50분이면 족하다.
등산로
이제부터 된비알이다. 산성 답사의 끝자락엔 항상 된비알이 나온다.
구송소나무 부근의 석축. 북벽으로 볼 수 있다.
여길 오르면...
짠~하고 구송소나무가 나온다.
동북방을 굽어보다
아홉 줄기의 소나무라서 구송소나무인가? 도깨비 눈에는~아, 좌측에 숨어 있었구나!
산성의 동북방
산성의 서북방. 죽산면 비봉산이 보인다. 좀전에 답사했던 죽주산성이 있던 곳. 망이산 서쪽 아래로 중부고속도로가 보인다.
다시 한번 세어 보자.
미륵석불입상과 구송소나무는 안성시 죽산면을 상징하는 기념물이다.
산성 내부 산책길
망이산성은 산 능선의 평탄면을 잘 이용하여 남북 양쪽을 다 방어할 수 있게 축조하였다.
기와 조각
평탄지에 헬기장 조성. 이곳은 북쪽 장대지로 사료됨.
이곳에는 기와조각이 매우 많았다.
북쪽 장대지를 내려오며 서벽을 감상하다.
서벽
축성의 흔적이 의연하다.
지나온 북쪽 장대지
멀리 북쪽으로 비봉산의 동록에 축조한 죽주산성이 조망되며, 아래로는 중부고속도로가 북으로 열려있다.
서벽에서 바라 본 죽주산성
서벽
산성 내부
서문터로 사료됨. 안성시 일죽면 화봉리에서는 임도가 이곳 서문터까지 나 있다.
발굴터 이정표는 떨어져 아래에 매달려 있다.
서벽 부근의 산성 내부
서문터 부근의 석축 흔적
북쪽 장대지 가는 길
안내문
안내문 근처의 정상 표지석. 이곳은 정상이 아니다.
산성 서녘 부근에는 산 능선이 연이어 있다. 제일 높은 산맥이 칠장산 부근에서 분기한 금북정맥으로 남으로 주행하며 천안시의 동벽을 이루며 금강 모서리를 지향하고 있다.
수레티로 내려가는 등산로에서 바라 본 산성의 서벽
수레티로 내려가는 등산로
남벽 가는 우측의 임도를 버리고 좌측 정상가는 길로 오르자 헬기장이 나타난다. 좁아 보인다.
정상을 향해서...
남쪽 장대지
봉수대 안내판
정상 표지석. 이곳이 정상이다.
삼각점
정상의 장대에는 봉화터도 있다.
산성의 북쪽. 남한강의 지류인 청미천 유역으로 고구려 대에는 개차산군으로 불렸다.
아쉽게도 남벽 부근에서는 사진을 찍지 못했다. 그곳에서는 음성들판과 죽산들판이 다 보여 뷰가 좋았는데... 항상 결정적일 때 문제가 생기는 법...망이산성은 다시 오르고 싶은 산성이라서 다행이다. 다음에는 수레티로해서 올라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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