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 24일>
표지사진 - 어래산성에서 동북방의 웅포 일대와 금강을 조망하다
<산경표>상의 금남정맥은 남부여 부여군 부소산성 낙화암과 조룡대 근방에서 맥을 다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산경표>의 저자인 신경준(1712~1781) 선생의 뜻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엄밀히 말하면 금남정맥은 금강 하구 남안의 군산시 월명산(103m)에서 맥을 다한다. <신산경표>의 저자인 박성태 선생은 이 맥을 금남기맥으로 적고 있다. 그리고 <산경표>상의 금남정맥은 금강정맥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에 관해 필자는 <신산경표>상의 금남기맥은 금남정맥으로, <산경표>상의 금남정맥은 금강기맥으로 부르는 것이 합당하리라 생각한다. 물론 산맥의 대가이신 박성태 선생이 숙고 끝에 내린 표기라는 것은 자명하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어딘가 어색해 보인다. 지맥꾼들은 <신산경표>상의 금남기맥을 아예 신금남정맥으로 부르기도 한다.
군산시 월명산까지 이어진 금남정맥은 하류 부근에서 대체로 금강과 평행을 이루며 서남진하고 있다. 이 일대 금남정맥 남쪽은 만경강을 중심으로 평야지대를 이루어 고대부터 반도의 곡창지대라 할 수 있다. 남부여 무왕은 이 일대로 도성 천도까지 계획하고 역사(役事)를 진행했던 적도 있다.
금강 하구는 남부여의 해상 관문으로 많은 방어성들이 즐비하였다. 그 중 금강 남안의 방어성들은 금남정맥을 따라 분포해 있다. 오늘은 이곳 산성들 중에 익산의 어래산성과 군산의 용천산성을 답사하였다.
어래산성(御來山城)은 익산시 웅포면과 군산시 나포면의 경계에 있는 해발 180.4m의 어래산 주봉(主峰)에 있는 둘레가 약 490m인 토축 농성(農城)이다. 이 산성은 고대 나루인 나포(羅浦)와 웅포(熊浦)를 거느리고 금강을 굽어 보고 있는 요새이다.
어래산(御來山)에는 흥미롭게도 고조선 준왕과 관련된 이야기가 구전되어 오고 있다. 일찍이 고조선 준왕이 위만(衛滿)에게 쫓기어 익산 금마(金馬)로 천도한 이후에 나포(羅捕) 포구에 자리잡고 있었던 공주(公州)를 만나보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하여 어래산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즉 임금이 타는 수레가 어가인데, 어래산은 어가가 왔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나포에 있는 해발 65m의 산을 공주산이라고 하는 것도 이 설화에 기인한 듯하다. 이 구전 설화의 신빙성은 희박하지만 그만큼 이 일대가 고대부터 수륙 교통의 요지로서 중시되어 번창했다는 것과 고조선의 준왕은 아닐지라도 고대 군주가 직접 순행하면서 공주를 대동한 적이 있었을 것이란 추정은 가능하다. 필자는 그 인물을 남부여 무왕과 선화공주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만큼 남부여 무왕은 금강 하구와 만경강 일대의 평야를 중시한 군주이다.
어래산성에서 북쪽의 금강 연안을 바라보면 익산시 웅포면 입점리고분군이 훤히 보인다. 입점리고분군의 존재는 이 일대가 남부여 세력이 금강 일대를 복속시키전부터 하나의 가야 폴리스를 이루고 있었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 그 세력의 중심 근거지로 어래산성을 주목해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어래산성 서남쪽 금남정맥을 따라가다 보면 도청산성과 관원산성이 연이어 나온다. 이들 산성들은 남부여 시절 어래산성과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금강하류 남안을 방어하였을 것이다. 필자는 군산 용천산성 답사때문에 어래산성의 연장산성인 도청산성과 관원산성 답사는 유보하였다. 한편 후대에 쌓았지만 이들 산성의 서쪽에는 봉수대가 있다. 불지산(佛智山)봉수대와 소방산(所方山)봉수대가 그것이다. 그만큼 금강 하류의 금남정맥은 자연 방어성으로 매우 중시된 것을 알 수 있다.
역사적으로 어래산성은 당나라 장군 소정방(蘇定方)이 백제를 공격할 때에 쌓은 보루(保壘)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오류라고 생각된다. 당나라 군대가 금강 하구에 상륙하면서 이 일대 산성들을 격파시킨다. 군산시 성산면의 오성산성이 대표적이다. 당시 어래산성도 오성산성과 더불어 이 일대 사람들이 당나라 군대에 저항하다가 함락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당나라 군대는 오성산성과 더불어 이곳 어래산성도 후방기지로 삼으면서 사비 도성을 침공한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당나라 군대가 이곳에 임시 주둔하였을 것이다. 이런 연고로 당나라 군대가 쌓은 보루라는 말이 구전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금남정맥 상의 칠목재. 칠목재에는 익산시에서 함라산 등산로를 위해 주차장을 마련해 놓아 편리하다. 칠목재로 가려면 내비게이션에 입점리고분전시관을 입력하면 된다. 고분전시관 가기 전 칠목재휴게소라는 간판을 보고 주차하면 된다.
등산 안내도. 어래산성 가는 길은 두 군데이다. 마을 뒤로 올라가도 되고 칠목재 넘어가서 민묘 오르는 길도 있다.
필자는 민묘 가는 길로 올랐다.
조금 오르다 민묘에서 북쪽을 조망하다.
칠목재 부근
어래산 오르는 등산로 입구
신금남정맥으로 산꾼들이 부른다.
등산로
북쪽을 조망하다. 금남정맥 북쪽의 금강 연안이다. 당나라 소정방 군대는 사비 도성을 침공하려고 금강을 거슬러 오르다가 후방의 안전을 위하여 금강 남안의 오성산성과 이곳 어래산성을 공격하였다.
어래산성 안내판
안내문
안내판 뒤 산성 내부로 들어가는 동벽. 식민지시대에 작성된 <고적조사자료>에 의하면 어래산성이 석축농성이라고 하나, 축성 재료로 석재는 보이지 않아 토성으로 사료된다.
동벽 우측
동벽 좌측
동벽을 오르니 평탄지가 나온다. 이곳에는 민묘 1기가 있다.
입점리고분전시관까지는 약 1km 거리이다. 이 때문에 어래산성은 입점리 고분군 주인공들이 초축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어래산성과 입점리 고분군은 하나의 가야폴리스를 형성하다가 남진하는 백제에 의해 통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어래산성이 토축이라는 점에서 매우 오래된 산성임을 짐작할 수 있다.
어래산성 동벽 가는 길이자 금남정맥 등산로이기도 하다.
동벽 등산로
산성 내부 평탄지
동벽의 등산로
평탄지
동남벽 부근 등산로
산성의 동남방
내부 장대지로 추정된다
내부 장대지로 추정되는 곳에 민묘 1기가 있다.
산성의 동남방
남벽 부근. 어래산성은 동서가 짧고 남북이 긴 테뫼식 산성이다.
어래산 정상 삼각점. 남벽 위에 삼각점이 있다.
남벽 아래
남벽과 동벽이 만나는 지점의 남문터로 사료됨
남벽 아래에서 남벽을 바라봄
우측 길이 금남정맥길로 산성 남벽과 분리되는 지점. 좌측이 남벽 구간임.
남쪽으로 금남정맥 가는 길이다. 이 길을 계속 이어가면 도청산성과 관원산성이 나온다. 어래산성과 같은 기능을 했던 남부여 산성들이다. 필자는 군산 용천산성을 답사하기 위해 이 즈음에서 도청산성과 관원산성 답사는 유보하였다. 시간이 부족할까봐 그랬는데 용천산성 답사를 마치고도 시간이 남아 조금 후회가 되었다. 그래 아껴둔다 생각하자!
다시 돌아서며 남벽 부근에서 동벽 위로 이어진 금남정맥 길을 바라본다.
동벽과 남벽이 합류하는 지점의 금남정맥 등산로
동벽 부근 평탄지를 반대 방향에서 바라보다.
익점리고분전시관 가는 등산로. 북벽가는 등산로이다.
북벽 부근의 평탄지
북벽 부근
북벽 위에 서니 웅포 부근에서 서남류하는 금강이 훤히 보인다.
웅포 좌측으로 입점리고분군이 내려 보인다.
서북방으로 나포가 보인다. 이곳 어래산성은 금강 하류 남안의 웅포와 나포라는 고대 나루터를 동시에 조망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동북방의 웅포. 금강 건너는 충남 부여군 양화면이다.
어래산성의 정북방에는 입점리고분군이 있다.
산성의 서북방인 나포. 금강 건너는 충남 서천군 한산면이다. 한산면 신성리 금강변에는 영화 'JSA(공동경비구역)'를 찍은 신성리 갈대밭이 있다.
금강을 조망한 북벽
입점리고분전시관 가는 등산로로 내려와서 바라 본 북벽
여기서 금강을 감상하다
칠목재 돌아오는 길에 바라 본 북쪽 함라산가는 금남정맥. 금강을 조망하기에 매우 좋은 등산로이다.
칠목재 휴게소 부근. 고대부터 칠목재는 금강과 만경강 유역의 평야를 잇는 주요 고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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