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대도성기행/가야 폴리스 기행

안라국(1) : 낙동강과 남강 합류 유역의 가야 폴리스

<2011년 4월 3일>

 

 

표지사진 - 함안박물관 전경

 

 

 5월경에는 너무 바쁘기도 하고 일기도 불순하여 전혀 답사를 다니지 못하였다. 경험칙상 수풀을 헤멘다는 것도 답사를 주저한 이유이기도 하다. 아무튼 산성 답사의 계절이 지나 못내 아쉽다. 여름에는 등산로나 임도가 좋은 산성을 골라 다녀야하니 산성 답사는 제한적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지난 4월 초순경 안라국의 유물이 산적되어 있는 함안박물관을 찾아갔다. 안라국은 고대 가야폴리스의 영광과 좌절을 한눈에 고찰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나라이다. 하지만 안라국의 정체성을 무어라 단정하기에는 매우 조심스럽다. 그만큼 안라국은 미스터리한 존재이기도 하다. 미스터리란 연구가 덜 되어 단언하기 어렵다는 의미일 뿐이다. 안라국은 다른 가야 폴리스에 비해서 자료나 유적면에서는 비교적 풍부한 편이다. 참고로 안라국의 역사는 <일본서기>에 풍부하게 나온다.

 안라국은 연구 결과에 따라 반도와 열도 고대사의 크리티컬(critical) 포인트를 다시 써야 할 정도로 중요한 나라이다. 필자는 답사 후 몇 차례에 걸쳐 안라국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려고 하였으나, 상상 이상의 추론이 쓰나미처럼 밀려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답사기에는 단편적인 지적만 하고 다음을 기약하려고 한다. 아무래도 시간이라는 쓸물이 필요할 듯하다.

 

 

박물관 입구를 안라국의 전형적인 토기인 화염형투창고배(불꽃 모양의 창을 낸 굽다리접시) 모형으로 건축하였다.

 

도항리와 말산리 고분군이 분포한 산 구릉 서쪽 평지에 함안 박물관이 소재하고 있다.

 

도항리와 말산리 고분군 설명문

 

입구를 지나면 원형의 10배 정도 크기로 제작한 수레바퀴모양 토기의 모형을 전시하고 있다.

 

불꽃형 굽다리접시와 수레바퀴모양 토기는 안라국의 대표적인 토기 양식으로 사료된다.

 

안라국의 유물들은 박물관 2층에 전시하고 있다.

 

안라국은 3C초 포상팔국전쟁과 5C초 고구려군의 남정을 잘 극복하면서 이후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며 가야 사회의 일 중심으로 서게 된다.

 

안라국은 <일본서기>에 기록된 529년 고당회의를 개최하며 가야 연합군의 중심에 있었다. 하지만 가야와 남부여가 합세한 554년 관산성 전쟁에서 대패한 결과 대가야와 더불어 신라에게 정복당하고 만다. 대가야는 반역을 도모한 결과 국체까지 잃었으나, 안라국 왕조는 신라의 귀족으로 편입되어 번영을 누린 듯하다.

 

안라국 왕궁지로 추정되는 함안군 가야읍 가야리 가야동 마을 북쪽 산구릉. 조선시대 자료인 <함주지> 기록을 근거로 추정한 곳이다. 주변에는 왕궁지와 관련된 유적과 지명들이 많이 남아 있다고 한다. 남해고속도로 함안IC에서 나와 가야읍으로 들어오다 신음천 건너기 건너기 직전 공설운동장 방향으로 우회전하여 직진하면 낚시터가 나온다. 낚시터 뒷 마을이 가야동이다.

 

도항리와 말산리 고분군 모형 지형도

 

말이산 고분군(도항리와 말산리 고분군을 합하여 부르는 명칭)은 5C에 접어들면서 앞 시기의 널무덤을 파괴하면서 덧널무덤이 축조되기 시작하였다. 이는 고구려군 남정의 결과로 조심스럽게 추정하고 있다.

 

 

 

함안군 유적 모형 지형도 (함안박물관과 왕궁지 주변)

 

함안군 유적 모형 지형도 (안라국 북쪽인 남강과 낙동강 합류 부근)

 

함안군 유적 모형 지형도 (남쪽 남해 진동만으로 넘어가는 낙남정맥 상의 대현 관문 부근)

 

청동기 시대 붉은 간토기의 분포로 추정컨대 함안 즉 안라국은 고대부터 한반도 최남단의 동서 교통로 상에 위치한다. 필자는 이를 포상팔국루트(육로)로 생각한다. 안라국 대에도 이 동서루트는 매우 활성화되었을 것으로 보이며 특히 영산강 유역과 낙동강 유역의 가야 폴리스를 잇는 가장 중요한 간선으로 사료된다.

 

굽다리접시. 불꽃 문양은 안라국의 상징이다.

 

가야토기는 1~3C 와질토기에서 4C 고식도질토기 단계를 거쳐 5C에 이르러 경질토기로 변화되었다.

 

소뿔모양 손잡이 항아리

 

짧은목항아리와 두귀항아리

 

안라국 토기에 대한 설명문

 

뚜껑 문양. 안라국 사람들이 남긴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문양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안라국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져야 할 듯하다.

 

뚜껑 문양

 

좀더 다가가서 보았다.

 

안라국 토기 문양에 대한 설명문

 

필자는 한반도 출토 토기 중에서 안라국 사람들이 남긴 문양이 가장 이채롭고 아름다워 보인다.

 

5C 도항리 39호분 출토 수레바퀴모양토기

 

5C 도항리 39호분 출토 이형(異形)토기

 

기대 즉 그릇받침에 대한 설명문

 

원통모양 그릇받침

 

안라국 무사의 무기와 무구에 대한 설명문

 

환두대도

 

각종 무기와 무구

 

금속에 새겨진 용 문양에 대한 설명문

 

갑옷과 투구

 

 

 

 

 

유자이기 즉 미늘쇠는 무기라기 보다는 제사나 의례용 유물로 추정된다.

 

다른 모양의 미늘쇠

 

철정 즉 덩이쇠

 

토제원통형방울과 복골

 

장신구에 대한 설명문

 

목걸이

 

마갑총 출토 마갑 사진

 

마갑총 출토 마갑 즉 말갑옷. 고구려 고분 벽화의 기마무사에도 마갑이 나온다. 고구려군의 남정 이후 안라국도 기마무사를 양성하면서 마갑을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고구려의 영향으로 본다. 혹은 안라국이 고구려에 의해 간접 지배 받은 것으로도 해석한다.

 

마갑

 

말안장

 

마구의 명칭에 대한 그림과 설명

 

좌측 상단이 등자 즉 발걸이이고 좌측 하단이 말디드리개이며 우측 하단이 말띠꾸미개이다.

 

마갑총에서 마갑이 출토된 사연을 설명하고 있다.

 

안라국의 기마무사 모형

 

기마무사 토기 모형

 

측면에서 바라 본 기마무사 토기 모형

 

안라국의 상징인 불꽃무늬에 대한 설명문

 

다양한 불꽃무늬 그릇받침

 

 

 

바리모양 그릇받침에도 불꽃모양이 투창이 있다.

 

불꽃무늬토기 분포도로 본 안라국의 영역과 대외교류에 대한 설명문

 

불꽃무늬토기 분포로 보아 안라국은 반도에서는 거창, 김천, 경주까지 교류한 흔적이 보인다.

 

열도에서는 혼슈 나라와 교토 및 나고야까지 교류한 흔적이 보인다.

 

지금의 함안고등학교 남동쪽 산구릉을 당산이라 부른다. 당산에는 고당 즉 초대형 건물지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곳이 <일본서기>에서 529년 안라국의 주도로 개최된 고당회의의 역사적 장소일 것으로 추정된다.

 

당산유적 원경 사진

 

고당의 모형

 

~ 안라국(2)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