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 4일>
익산 금마면과 왕궁면 일대는 고대에는 지모밀지로 불렸다. 무왕은 소부리(사비)에서 이곳 지모밀지로 천도를 꿈꾸었다. 미륵사와 미륵산성, 왕궁을 축조하며 성왕이 못다이룬 남부여 완성을 위하여 매진했다. 미륵산성은 그 꿈의 중심에 있었다.
<2012년 11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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