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대도성기행/삼국 도성 기행

소부리 : 고대 삼한의 관문이 되다(1)

<2012년 5월 20일>

 

 

 

<표제사진 - 정림사지 오층석탑>

 

 

고대 '소부리'는 지금의 충남 부여군 부여읍 일대이다. 소부리는 한자로는 '사비'라고 표기했다. 백제 성왕은 태자 시절부터 아버지 무령왕이 소부리로 사냥을 자주 나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왜 하필 사냥일까? 소부리 사냥의 실상은 무령왕이 구마나리(웅진으로 지금의 공주시 공산성 일대)에서 소부리로 천도를 꿈꾸며 그 터를 찾아간 것이다. 하지만 무령왕 당대는 그 꿈을 실천하지 못했다. 대성 귀족들의 반대로 도성 공사가 지체된 것이다. 이를 아들 성왕이 실행했다. 성왕이 즉위하고 16년만의 일이다. 그때가 538년이다. 그리고 북부여의 정체성을 드러내며 국호를 '남부여'라고 했다. '남부여'라는 국호로 인해 지금 이 일대는 부여라는 지명이 되었다. 한국 고대사의 역사인식에 있어 부여라는 지명의 의의는 매우 크기에 부여군의 지명이 영원하길 바란다.

 

만주 송화강 유역에도 부여라는 지명이 있다. 중국어로는 '푸위'라고 한다. 바로 북부여 고대 도성이다. 그곳에 부소산이 있었다고 한다. 북부여 유민이었던 백제는 사비성 북쪽의 산을 '부소산'으로 명명하였다. 사비성은 북쪽 부소산을 포함하여 궁성을 만들고, 남쪽으로는 5부 5방의 체계로 건설한 계획도시이다. 그리고 외성인 나성을 쌓아 도성을 보호하였다.

 

사비성 남쪽은 거대한 늪지로 서해에서 금강을 따라 자유롭게 배들이 드나들었다. 수운이 편리한 곳이다. 대륙과 열도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사비성이다. 한마디로 남부여 도성인 사비성은 고대 삼한의 관문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남부여인들은 사비성이 고대 동북아 네트워크의 중심지로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염원은 실현되었다. 특히 지금의 한류로 비견될만한 열도에서의 '구다라 열풍'을 구현하였다. <일본서기>에서는 자신의 조정을 '동조'라 불렀다. '동조'란 동쪽의 조정을 말한다. <일본서기>에 '동조'는 필자가 찾은 바로는 딱 한군데 등장한다. <일본서기>의 편찬자가 무의식 중에 실수(?)로 기록한 것일 것이다. 백제계 천황가가 야마토를 지배하고 있었으니 자신들을 동생으로 지칭한 것이다. 그렇다면 남부여는 무엇일까? 바로 '본조'인 셈이다. '본조'와 '동조'의 존재. 그것은 남부여가 나당연합군의 침공을 받았을 때, 동조인 야마토 조정이 남부여에 전함 1,000척, 군사 2만 7천명의 구원군을 파견한 이유다.

 

정림사지는 사비성 정중앙에 자리하고 있다. 지금은 5층석탑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다. 필자는 5층 석탑은 무령왕 대에 쌓은 것으로 확신한다. 왜냐하면 석탑은 부소산을 향해 정북 방향으로 서 있다. 무령왕은 도성 공사를 위해 먼저 5층 석탑을 쌓아 이를 기준으로 모든 공사를 시작했을 것이다. 당시 웅진 조정의 대성귀족들은 무령왕이 단순히 사찰과 탑을 건축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석탑 속에 천도의 비밀이 숨겨졌다는 사실은 모른 채 불심이 깊은 국왕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정도야 뭐 대수로운 일이 아니니 사찰과 탑 건축에 비용을 갹출하라는 지엄한 왕명에 기꺼이 동참했을 것이다.

 

2012년 늦봄이었던 5월. 필자는 소부리 즉 부여읍을 찾았다. 남부여의 정취를 물씬 느끼고 싶었다. 그리고 당연하게 맨 처음 찾아 간 곳은 정림사지였다. 5층 석탑이 보고 싶었다.

 

 

 

 

정림사지 석불좌상. 석불좌상이 5층 석탑과 마주하고 있다. 석불은 비로자나불로 추정한다고 한다.

 

 

 

 

석불좌상은 5층석탑의 정북방에 놓여 있다.

 

 

 

석불좌상 건물을 나서면 남쪽으로 바로 5층석탑의 전경이 보인다.

 

 

석탑의 서면

 

 

 

 

석탑의 남면. 석불좌상이 정확히 가려진다.

 

 

석불좌상 건물 너머로 부소산으 능선이 보인다.

 

 

석탑의 동면

 

 

석탑이 북면

 

 

 

 

석탑 북쪽이 석불좌상 건물

 

 

불행하게도 5층 석탑 하단에는 남부여 도성인 사비성을 함락시키고 당나라 장군 소정방의 명에 의해 새긴 백제평정비문이 남아 있다. 무령왕과 성왕의 도성 천도의 비밀을 간직한 5층 석탑에 백제평정비문이 각인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동쪽 정림사지박물관

 

 

부소산, 석불좌상, 5층석탑은 정북 방향으로 나란히 서있다.

 

 

 

 

 

정림사지박물관 입구. 동쪽으로 금성산(121m)이 보인다. 금성산 아래에는 국립부여박물관이 있다.

 

입구. 정림사지박물관에는 고대 사찰과 탑 건축에 관한 자료가 풍부하여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겐 도움이 될 듯하다.

 

 

 

 

 

 

 

 

 

 

 

 

 

 

 

 

 

 

 

 

 

 

 

 

 

 

 

 

 

 

 

 

 

 

 

 

 

 

 

 

 

 

 

 

 

 

 

 

 

 

 

 

 

 

 

 

 

 

 

 

 

 

 

 

 

 

 

 

 

 

 

 

 

 

 

 

 

 

 

 

 

 

 

 

 

 

 

 

- 소부리(2)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