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20일>
<표제사진 - 부소산성에 바라본 백마강(금강). 백마강 서안에 부산이 보인다. 부산은 백마강 서안에 돌출된 봉우리로 산정에 부산성이 있다. 부산의 연유는 '삼국유사'에 '군중에는 삼산이 있어 그 이름이 일산, 오산, 부산이라고 했다'는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정림사지박물관을 나와 사비성 북방, 백마강 동안의 부소산성에 오르기로 작정한다.
부소산성 입구
사비성 왕궁터 유적. 부소산성은 평지성인 사비성과 바로 맞붙어 있다. 나당연합군에 의해 사비성이 함락되었을 때, 대부분의 도성 아녀자들이 부소산성으로 피신하였고, 당나라 군선들이 백마강에 포진하고 있어 배로 탈출하기도 어려워 낙화암에서 뛰어내린 걸로 추정된다. 노왕인 의장왕에게 삼천 궁녀가 있었을 리 만무하며, 또한 백제 여인들의 숭고한 죽음을 두고 삼천궁녀 운운하는 것은 백제에 대한 모독처럼 들린다. 이제 더 이상 의자왕에게 퇴폐와 향락의 군주로 낙인찍은 '삼천궁녀'라는 말은 사라졌으면 한다. 패망한 나라와 군주에게 붙여진 이 같은 오명들이 역사의 진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삼충사 전경
궁녀사 전경. 1965년에 세운 궁녀사는 백제 여인들의 숭고한 절의를 모욕하는 말이다. 궁녀사라는 이름의 사당은 없애야 한다고 생각한다. 백제 여인들의 절의를 숭앙할 수 있는 새로운 사당과 그 이름을 지어야 하지 않을까? 부소산 외딴 음습한 곳에 자리한 궁녀사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안타깝다.
안내문에는 삼천궁녀 운운하고 있다. 패배한 역사의 낙인은 수 천년 간다고 생각하니 애잔한 마음이 든다.
반월루
부여읍내가 보인다.
남쪽의 백마강. 백마강은 부여읍 서쪽을 감싸다가 다시 남쪽을 감싸며 흐른다.
백마강 서안의 부산성
반월루에서 바라본 남쪽 부여읍 전경. 좌측(동쪽) 금성산과 우측(서쪽) 백마강과 부산성이 보인다. 백마강이 부여읍내 남쪽으로 흐른다.
성벽 흔적
사자루
사자루에서 백마강 서안을 바라보면 정면으로 왕흥사지와 그 뒷산인 울산이 보인다. 울산 산정에는 울산성이 있다. 서남쪽 아래 부산성과 함께 백마강 서안에서 부소산성과 사비성을 보호하고 성이다.
부소산은 산경표상 금남정맥의 종착지이다. 그런데 부소산은 금강 하류 중간에 있어 그 이하 논산, 익산, 군산의 금강 지류들을 다 포함하지 못하여 부소산을 금남정맥이 아닌 금강기맥의 종착지로 일부 산꾼들은 생각하고 있다.
낙화암 가는 도중에 연리지가 있다.
낙화암 위의 백화정.
북쪽 백마강교. 좌측이 정사암이 있는 천정대로 보인다. 2년이 지나 올리다 보니 조금 헷갈린다.
고란사와 구드래를 오가는 유람선
남쪽 부산성
왕흥사지와 울산성
낙화암 안내문에는 삼천궁녀 운운하지 않아 다행이다. 삼천궁녀는 현인의 '백마강'을 통해 널리 보급된 걸로 안다. 삼천궁녀 유래는 고루한 조선 유학자들에 의해 연유되었다. 현인은 '신라의 달밤', '백마강' 등 우리 고대사를 주제로 낭만과 퇴폐적인 가사에다 독특한 음색을 비빔하여 인기를 끌었던 가수다. 필자도 현인의 노래를 좋아는 하지만 가사에 대해서는 유감이다. 더 좋은 가사로 노래를 했다면 더 좋았을 것을... 참고로 배호의 '꿈꾸는 백마강'에는 삼천궁녀란 가사가 없다.
북쪽 백마강교와 천정대
고란사로 내려가며 바라본 낙화암과 백화정.
고란사
유람선을 타고 구드래로 갈까 망설이다 보지 못한 유적(수혈건물지와 목책공)이 있어 다시 발길을 정문으로 돌린다.
군창지
영일루는 보수중이었다.
궁남지, 나성, 청산성, 금성산성 등 소부리 일대를 다 둘러보고 싶었으나, 다음을 기약하며 마무리 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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