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성기행 썸네일형 리스트형 옥천 굴산성 : 신라 굴현의 치소 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온다. "자비마립간 13년(470) 삼년산성을 쌓았다." "자비마립간 14년(471) 봄 2월에 모로성을 쌓았다." "소지마립간 8년(486) 봄 정월에 이찬 실죽(實竹)을 장군으로 삼았다. 일선계(一善界) 장정[정부(丁夫)] 3천 명을 징발해서 삼년(三年)과 굴산(屈山) 두 성을 고쳐 쌓았다." 신라군은 상주에서 반도의 척추인 백두대간상 중에서도 해발 고도가 제일 낮은 지역인 중화지역을 장악하고 이를 토대로 삼년산성을 축성한다. 470년 삼년산성의 축조는 신라가 남부여와 고구려의 분쟁지역 중심으로 들어오는 일대 반도 각축의 새로운 국면이 전개되었음을 알리는 상징적 기념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로써 신라는 남부여와는 금강 연안을 사이에 두고, 고구려와는 금북정맥을 넘어 금강의 .. 더보기 익산 용화(성태봉)산성 더보기 공주 양화산성 더보기 용인 석성산성 : 신라 구성현의 치소 고구려 광개토왕과 장수왕이 한강 하류 유역을 점령한 후 고구려는 용인 일대에 구성현을 두었다. 최초 구성현의 치소는 용인 할미산성으로 사료된다. 백제 무령왕과 성왕이 한강 유역을 회복하고 고구려 북벌을 단행한 틈을 타 신라는 약삭빠르게 한강 유역을 점유해버린다. 이때 구성현도 신라의 수중에 들어오는데, 그 이후 신라는 구성현의 치소를 이곳 석성산성으로 이전한 것 같다. 향후 한강 유역을 두고 장기전을 염두에 둔 신라의 전략에 의해 보다 튼튼한 치소가 필요했을 것은 자명하다. 이는 할미산성이 테뫼식 산성인데 비해 석성산성은 장기적인 옹성으로 포곡식 산성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서 유추할 수 있겠다. 더보기 대전 왕가봉산성 : 고대 웅진도를 감제하던 보루성(2) 더보기 대전 우산봉보루와 흔적골산성 : 고대 웅진도를 감제하던 보루성(1) 더보기 영동 황간읍성 : 신라 소라현의 치소 더보기 김제 사창산성 : 백제 수동산현의 치소 더보기 임실 장암리산성 더보기 세종 노고봉산성, 애기바위산성, 화봉산성(2) : 고구려 군대가 금강을 돌파하기 위한 교두보 더보기 세종 노고봉산성, 애기바위산성, 화봉산성(1) : 고구려 군대가 금강을 돌파하기 위한 교두보 더보기 아산 연암산성 더보기 이전 1 ··· 5 6 7 8 9 10 11 ··· 2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