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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루트기행/가야 루트

대가야 동서루트 (5-2) : 합미산성~성미산성~용암리 석등~가는정이 마을

<2010년 6월 6일>

 

대가야 동서루트(5-1)에서 계속

 

성뫼산성에서 내려와 마이산 남쪽의 30번 국도를 타고 마령면 소재지로 향했다. 마령사거리에서 우회전하면 마령면 강정리가 나온다. 합미산성은 강정마을 맞은편 봉우리에 축성된 성으로 북쪽에 월운마을이 위치하고 있다. 성은 북서쪽 계곡에서 남동쪽으로 능선을 따라 축성되어져 있다. 남서, 북동 성벽은 계곡 쪽으로 내려 오면서 대부분 파괴되었으나 성벽의 흔적은 뚜렷이 남아 있다고 한다. 아직까지 성벽이 온전히 보존되어 있는 곳은 남동쪽으로 높이는 약 4.5m이며 길이는 약 70여m가 그대로 남아 있다. 성의 전체 길이는 약 600m정도 이며 남동 성벽으로 보아 높이는 약 4-5m일 것으로 추정된다. 성 내부에는 무수한 기와편과 삼국시대 토기편을 수습할수 있었던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보인다.

 

'합미성'이란 뜻은 '쌀을 모아둔 성'이란 의미이다. 전국에는 합미성이 많은데, 와전되어 '할미성'으로도 불렸다. 이를 한자어로 표기할 때, '노고성'으로 기록하였다. 따라서 '합미성'='할미성'='노고성'이다.  '쌀을 모아둔 성'으로 추정컨대, 대부분의 '합미성'은 위기시 장기 농성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진안의 합미산성(강정리산성)도 남부여 시절 난진아현에 외부의 적이 침입하였을 때, 진안읍의 성뫼산성을 버리고 이곳 마령면 강정리 '합미산성'에서 농성전을 수행하였을 것으로 사료된다.

 

 월운로타리에서 바라본 마령면 강정리 합미산성

 

 우측(남쪽)이 강정마을로 마령면 소재지 가는 길이고, 좌측(북쪽)이 월운마을이다. 산성 앞으로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원신암 마을 상추막이골 데미샘과 마이산 탑사 약수에서 발원한 물이 합미산성 앞에서 합류하여 섬진강을 이루며 임실 관촌면 성미산성 앞까지 흘러간다. 모든 강의 발원지는 여러 곳(계곡)이겠지만, 일반적으로 발원지라고 하면 최장 발원지를 말한다. 섬진강의 최장 발원지는 데미샘이다. 데미샘이 있는 봉우리를 '천상데미'라고 하는데, '데미'라는 말은 '더미(봉우리)'의 전라도 사투리로 섬진강에서 천상으로 올라가는 봉우리라는 뜻으로 '천상데미'라 불리워져 왔으며, 이 샘이 천상데미에 있다고 하여 ‘데미샘’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섬진강은 백제시대에는 다사강, 고려 초에는 두치강으로 불리다가, 고려 말에 섬진강으로 불리게 되었다. 섬진강의 유래에는 재미난 설화가 전해진다. 고려 말 지금의 전남 광양시 진성면 섬거마을에 왜구가 침입하자, 수 만 마리의 금두꺼비가 강변에 나가 울어댐으로써 왜를 물러가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합미산성에서 대가야 동서루트로 추정되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 물론 두 길의 최종 목적지는 임실군 관촌면 성미산성이다. 하나는 강정리 합미산성에서 구절양장 같은 섬진강을 따라 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지름길로 고개만 3개를 넘어야 한다. 아무래도 시간상 고대 가야인들은 협곡인 섬진강루트보다는 고개루트를 선택하였을 듯하다. 고개들이 그닥 높지는 않기 때문이다. 특히 군사적, 통신적 목적에서는 말의 동선을 고려할 때, 고개루트가 대가야 동서루트로 합당해 보인다.

 

 배고개. 진안 마령면에서 진안 성수면 넘어가는 고개이다. 성수면은 임실에도 있다.

 

 성수면 넘어가는 배고개

 

임실 성미산성은 신라와 백제가 대립하고 있던 6~7세기에 걸쳐 백두대간을 국경으로 하는 주 저항선과 섬진강 상류와 지류인 오수천, 요천을 따라 진안, 임실, 남원을 잇는 제2의 방어선 성격을 띠고 있으며,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따르면, 무왕 605년 2월에 각산성을 축성하였다고 하는 바, 이곳 임실 성미산성을 각산성으로 비정하기도 한다. 또한 <삼국사기 신라 본기>에는 태종무열왕 661년에 두량이성과 정읍 태인에서 백제군 2,000명의 목을 베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곳 성미산성 주변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추정한다.

 

성미산성을 중심으로 대리산성(신평면 대리), 방현리 산성(관촌면 방현리), 슬치리산성(관촌면 슬치리) 등이 임실 관촌면 일대에 집중 분포되어 있는 까닭은 앞서 설명한대로 나제간 백두대간을 국경으로 하는 주 저항선 다음으로 진안, 임실, 남원을 잇는 제2의 방어선상에 위치하는 지정학적 특성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성미산성은 성미산(430m)의 정상을 안고 남쪽 사면(斜面)을 축성한 좁은 정삼각형으로 둘레가 517.5m나 된다. 성미산성 안에서는 승석문 토기편 등이 출토되었으며, 우물 터도 발견되었다. 특히 2007년 전북문화재연구원이 성미산성 추정수구지 및 남편 대지 일원에서 발굴 조사 중에 출토된 유물 중에는 다량의 '백제 오부명 기와'와 통일신라시대로 추정되는 금동여래입상이 있다.

 

<임실 성미산성 발굴조사 현장설명회 자료>에 따르면, 1) 성미산성에서 출토된 백제 오부명 인장와의 부명은 ‘上'□'中'□'下'□'前' 등이며, 그 외 ‘五'□‘水' 등이 있다. 백제 고도지역 이외에서 백제 오부명 인장와가 확인된 예는 청주 부모산성(전), 금산 백령산성(상부), 정읍 고부 구읍성(上部上巷) 등이 있는데 이들 지역과 함께 백제시대 오부체제 및 지방통치제도를 연구하는 데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2) 금동여래입상은 팔엽연화문의 좌대 위에 서 있는 높이 9.8㎝의 입상으로 통견의를 입고 있으며, 가슴 아래에는 늘어뜨린 U자형의 주름이 확인된다. 수인은 통인을 하고 있다. 이러한 형태로 보아 8세기 말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전북지역에서 이러한 호신불이 출토된 예는 익산 왕궁리 5층 석탑 내부에서 출토된 국보 123-4호 청동여래입상과 익산 사자암에서 출토된 청동약사여래입상 등이 있다.

 

 성미산 전경(431m). 소리개재와 설치재를 넘어 구신천 계곡을 들어오면 성미산과 방미산이 좌우에서 위협하며 호령하는 듯하다.

 

 성미산. 오른쪽이 섬진강으로 빠지는 협곡이다.

 

 방미산(568.6m)

 

 좌산교 부근에서 바라 본 성미산성.

 

 좌산교. 구신천이 섬진강에 합류하는 지점이다.

 

 좌산교와 공수봉(367m). 공수봉에도 산성이 있다. 좌산교 서쪽에는 공수봉산성(방현리산성)이 동쪽에는 성미산성이 있어 대가야 동서루트를 비호하고 있다.

 

 좌산교 북쪽

 

 좌산교 남쪽. 높은 교각은 건설중인 전주광양간고속도로이다.

 

 임실군 관촌면 소재지 사선대 부근의 섬진강. 앞 능선은 섬진강이 직선으로 부딪히는 덤재 능선. 이곳에도 신평면 대리산성이 있다. 4개의 산성이 분포하고 있는 임실군 관촌면 일대는 고대 남부여 내지 대가야 핵심 방어지역이었다.

 

 사선대에서 바라 본 성미산성. 앞으로 전주광양간고속도로. 뒤쪽은 방미산. 보리밭이 인상적이다.

 

 좌측의 공수봉

 

 우측(동쪽)은 성미산성, 좌측(서쪽)은 공수봉산성. 양 산성이 섬진강을 비호하고 있다.

 

관촌면 소재지에서 나와 남원 가는17번 국도를 타고 관촌역 앞에서 우회전하여 신평면 가는 49번 지방도를 타자마자 다리를 건너면 신평면 대리산성이 보인다. 

 

 신평농공단지 뒷편의 덤재 능선상에 대리산성이 있다.

 

 좌측 능선 제일봉에 대리산성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평면 소재지에서 섬진강 상류를 따라 서쪽 용암리 가는 745번 지방도가 대가야 동서루트가 된다. 용암리 가는 길에 바라 본 섬진강 상류. 이 물은 섬진강 상류 호수인 옥정호에 흘러 들어간다.

 

 아! 섬진강!

 

섬진강 상류가 만들어 놓은 절벽.

 

 섬진강과 절벽은 대가야 동서루트를 심심치 않게 한다.

 

 섬진강 상류는 서쪽으로 흘러 옥정호로 들어간다.

 

 용암리에는 보물 제267호인 아름다운 석등이 있다.

 

 안내판

 

 

 

 임실 용암리 석등

 

 고대 영화로왔던 절은 간곳 없고, 아름다운 석등만이 남아 불법의 위대함을 증거하고 있구나!

 

신평면 소재지에서 섬진강을 따라 내려온 용암리 방면을 대가야동서루트로 비정한 까닭은 용암리 석등 때문이다. 고대(고려때 가지도)에는 거대한 절이 교통로(루트)상의 숙식과 말을 해결하는 장소였다. 조선에 들어와서야 숙식과 교통수단(말) 해결을 역원제가 대치한 것이다. 이는 조선이 유교국가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려때까지는 교통로상의 큰 절들이 자체 승병을 보유하며 외부의 적을 막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그 결과 승려들의 정치, 군사 참여도 빈번하였다. 용암리 석등의 규모로 보아 이곳에도 큰 절이 있었을 것이고 게다가 평지상에 위치한 것으로 추정컨대 용암사지는 이 일대 정치를 주도한 중심지로 판단된다.

 

 규모를 짐작케하는 용암사지.

 

용암사지는 대가야 동서루트 상의 요지를 점유하고 교통로를 산적이나 외부의 적으로부터 보호한 듯하다. 용암사지 앞으로 섬진강이 S자의 협곡을 그리며 힘차게 흘러간다. 지금은 섬진강댐으로 인해 옥정호라는 큰 호수가 만들어져 대가야 동서루트가 물에 잠겼지만, 이곳 용암사지에서 임실군 운암면 가는정이 마을까지 섬진강 루트를 통해 쉽게 갔을 것으로 사료된다.

 

 용암사지

 

 절터와 석등

 

 고대 대가야 동서루트였던 섬진강 루트는 옥정호로 인해 갈 수 없어 우회하여 옥정호반을 따라 임실 운암면 가는정이 마을까지 가야한다. 용암리에서 우회전하여 13번 군도를 타고 대치를 넘어 운암면 소재지까지 가서 749번 지방도를 타고 옥정호 드라이브 코스로 가는정이 마을까지 갈 수 있다.

 

 신풍면에서 운암면 넘어가는 대치. 비가 와서 차안에서 찰칵.

 

 운암면 소재지에서 가는정이 마을 가는 드라이브 구간 중에 보이는 옥정호. 이 옥정호 아래 물속에 대가야 동서루트가 잠자고 있다. 지금은 옥정호의 섬으로 존재하지만 저곳도 고대 동서루트 상에서 보면 올려다 보았을 봉우리였을 것이고 핵심루트 상의 요지로 산성이 존재할 수도 있겠다. 참고로 이 사진은 2007년 11월 4일 호남정맥 국사봉 아래 전망대에서 찍은 것임.

 

 가는정이 마을 삼거리. 동서루트는 이곳 가는정이 마을에서 정읍시 산외면 소재지를 거쳐 고대 남부여 대시산군의 치소였던 정읍시 태인면을 향한다. 가는정이 마을은 호남정맥상의 낮은 고개로 섬진강계인 임실군과 동진강계인 정읍시의 경계에 위치한다. 가는정이 마을을 내려가면 동진강계인 산외면부터는 해발고도가 급격히 떨어진다. 드디어 동서루트는 서해 연안의 평야지대에 도달한 것이다. 이곳 가는정이 마을까지를 대가야의 최대 세력권으로 보는 관점도 있다. 물론 하늘도깨비는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지만, 일측면 합리성을 갖춘 학문적 주장이므로 언급해 두는 바이다.

 

 가는정이 마을에서 정읍시 산외면 내려가는 계곡

 

~ 대가야동서루트(5-2)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