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대루트기행/가야 루트

대가야 동서루트(6-3) : 우덕리산성~금사동산성(고사부리성)~수성

<2010년 7월 25일>

 

~ 대가야 동서루트(6-2)에서 계속 ~

 

 

 정읍시 덕천면 우덕리 사거리

 

 우덕리산성 이정표

 

 우덕리산성이 있는 시루봉 동북 산록의 손바라기(한자로 客望)마을에서는 동학에 이은 우리 민족 신흥종교의 비조 강증산 선생의 탄생지이기도 하다. 증산은 이 마을 시루봉 이름을 딴 호이다.

 

 시루봉(104m). 우덕리산성은 시루봉을 에워싼 토성으로 두승지맥 상의 자라고개를 넘어면 나오는 남부여 중방성인 고사부리성을 방어하는 외곽성이다.

 

 우덕리 토성

 

 정 동쪽으로 정읍천 너머 대산리산성이 이곳 우덕리산성과 호응하며 고사부리성을 방어하고 있다.

 

 증산상제 강세지. 증산 선생은 하늘의 상제님으로서 세상에 내려온 곳이다 라는 의미일터...

 

 마침 유모차가 대문앞에 있네...

 

 손바라기 마을의 보호수

 

 남쪽으로 내장산 줄기인 입암산이 보인다. 내장산에서 호남정맥은 하나의 기맥을 분기하는바, 그것이 바로 영산기맥이다. 영산기맥은 내장산 입암산으로 가지를 쳐 영산강의 서벽을 이루며 목포 유달산까지 힘차게 남으로 주행하는 기맥이다.

 

 근거리에서 바라 본 우덕리산성

 

 동녁의 우덕리 벌판. 대산리토성은 잘 못찾겠다.

 

 시루봉과 우덕리산성

 

 황토현을 넘기 직전 북에서 남으로 바라 본 우덕리산성

 

이 조그마한 고개가 황토현이다. 1894년 5월 백산에서 봉기한 동학농민군이 질풍노도같은 기세로 관군을 제압한 승전지이다. 외세의 개입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평등한 세상이 되었을까? 요즘 의제설정권한을 지닌 조중동이 쥐바기가 연일 주창하고 있는 '공정한 세상'이라는 가치를 신문에 도배하고 난리다. 진보 진영도 '공정'이라는 가치에는 반대하지 못하고 동조할 것이란 요지의 특별 기획을 싣기고 했다. 이들은 '공평한 세상'이라는 핵심 내용은 배제한 채 '공정한 세상'이라는 형식에 불과한 빈그릇을 무슨 대단한 가치인 양 선전하고 있다. 재정학의 영원한 화두인 '가장 공평한 것이 가장 효율적인 것이다'라는 말의 의미를 되새겨 보길 바란다. 1894년 동학농민군들이 왜 죽창들고 일어났는지 한번 되새겨보길...

 

 

황토현 전적지

 

 황토현 전적지 기념관 뒤로 두승산이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기념관. 시간이 없어 기념관은 둘러보지 못했다.

 

 정남으로 바라본 두승산.

 

적란운(소나기구름)도 세개, 벤치도 세개... 하늘도깨비 연출한 사진이다. ㅋㅋㅋ

 

 두승지맥상의 자라고개 넘기전 남녁으로 바라본 두승산 전경

 

 서쪽으로 두승지맥이 북으로 주행하고 있다.

 

 두승지맥 상의 천태산(196.5m) 천태산 서쪽 산록 하단부가 정읍시 영원면 은선리 일대로 남부여의 중방성인 고사부리성이 있었던 곳으로 사료된다.

 

 

 

 두승산 전경

 

 도계교 삼거리에서 바라본 천태산. 이곳 삼거리에서 두승지맥상의 자라고개를 넘어면 영원면 은선리에 있었던 남부여 중방성(고사부리성) 가는 길이고, 남쪽 하늘재(천치)를 넘어면 고부면 고부리에 있었던 남부여 고묘부리군의 치소였던 성황산성 가는 길이다.

 

 자라고개. 백산성에 집결했던 농민군들이 관군들에게 전주가는 길이 막히자 이곳 자라고개를 넘어 황토현으로 달려갔다고 한다. 또한 이곳 고사부리성과 고묘부리군은 백제부흥군과 백제지원군인 왜군들의 주 활동 무대로 신라군과 전쟁을 치루기 위해 자라고개와 하늘재를 무수히 넘고 넘었을 것이다. 이 고개를 넘어면 바로 고사부리성으로 추정되는 금사동산성과 은선리토성이 나온다.

 

 은선리에서 자라고개 가는 길

 

 자라고개를 넘어면 바로 탑립저수지가 나오고 저수지 너머 금사동 산성이 있다.

 

 금사동(金寺洞) 산성

 

지정번호 : 전라북도 기념물 제55호 

지정년월일 : 1981년 4월 1일 

소재지 : 정읍시 영원면 은선리 산26

시대 : 삼국시대

면적 : 355,396㎡ 

 

금사동 산성은 장문리(長文里)와 은선리(隱仙里)의 경계를 이루는 응봉산(應峰山)의 북쪽 계곡을 에워싼 포곡식(包谷式) 석축산성(石築山城)이다.

응봉산은 두승산(斗升山)에서 북쪽으로 천태산(天台山)가는 지맥(支脈)이 천치(天峙)에서 갈라져 서쪽으로 분기한 200m 높이와 170m 높이의 두 봉(峰)에서 북으로 가는 산 줄기가 깊은 계곡(溪谷)을 만들어 놓았다. 이 골짜기의 이름이 금사동이다. 성(城)의 이름은 골짜기의 이름 금사동을 따서 삼았다.

북쪽 골짜기에 문터(門址)와 수구(水口)가 있다. 산(山)의 정상(頂上)쪽으로는 봉우리가 있으면서 내성(內城)을 이루었고, 남문터(南門址)와 내성(內城) 북쪽으로는 우물터 세 곳과 수구터(水口址) 세 곳이 있다. 산성(山城)은 크게 내성(內城)(내성은 다시 중성과 상성의 이중 구조)과 외성(外城)으로 구분한다. 즉 금사동 산성은 3중의 구조를 갖추고 있다.

외성의 규모는 동서 길이 170m,남북 길이 620m의 평면(平面)으로 총 주위(周圍)는 2,365m에 이른다. 남변(南邊)은 길이가 778m로 산능선(山綾線)을 따라 석축(石築)하였으며, 동변(東邊)의 길이는 518m로 그 가운데 쯤에 수구(水口)가 있고 북문지(北門址)가 있다. 수구(水口) 서쪽 성안에는 폭 120m 정도의 평탄한 태지(台址)가 있으나 민가(民家)가 있던 흔적은 없다. 은선리에 살고 있는 옛날 노인들의 말에 의하면 금사동(金寺洞)에는 사람이 못 산다는 터부가 있다고 한다. 이는 아마도 남부여 부흥 전쟁 시절 신라군이 금사동 산성을 함락시키고 남부여 부흥군을 학살한 주검들이 즐비한데서 유래되었을 것이다.

내성(內城)은 외성(外城) 남단(南端)을 외곽(外廓)으로 하고, 동변(東邊) 300m, 북방(北方)에서부터 산(山) 북쪽 경사면으로 가운데를 감은 토루(土壘)와 회랑도로(回廊道路)가 지형(地形)을 따라 곡선(曲線)을 이루면서 서쪽으로 내려가는데 146m 북방 외곽에 연결된다. 내성(內城) 북변(北邊)의 길이는 1,036m로서 내성 주위(周圍)는 2,394m에 이른다. 내성은 동서(東西) 양봉(兩峰)을 감고 그 중간 안부(鞍部)는 폭 2~36m, 길이 427m 이르는 평탄한 대지(臺地)를 형성하는데 여기는 건축물(建築物)의 터(址)인 것 같다. 그 남변(南邊)의 중앙에 남문지(南門址)가 있다. 동봉(東峰)은 200m의 대지(臺址)를 이루어 산성(山城) 노릇을 한 것 같다. 서봉(西峰) 위에는 보대지(堡臺址)가 있었던 흔적이 있다. 내성(內城) 북변(北邊)에는 세 곳에 수구(水口)가 있고, 성내(城內)에는 세 개의 샘 터가 남아 있다.

이와 같이 내외 이중, 삼중의 성터(城址)는 백제의 중요한 성터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형식의 것으로 주목되는바, 금사동산성은 <삼국사기(三國史記) 백제본기(百濟本記)>에 전(傳)하는 백제 건국의 시조인 온조왕(溫祚王) 36년의 고사부리성(古沙夫里城)으로 보이며, 백제 후기 5방성(五方城)의 하나인 중방고사성(中方古沙城)의 터(址)가 아닌가 추정(推定)되기도 한다. 성내(城內)에서는 백제의 기와 조각과 토기조각에 이어 전투 때 사용한 팔매돌(투석환) 등이 나오고, 성(城)의 주변지역에 옛 탑(塔)과 고분군(古墳群)이 분포(分布)되어 있기도 하다.

 금사동 산성

 

 서쪽으로는 고부천 너머 변산이 보인다.

 

 

 

 탑립제 너머 자라고개 방향

 

 자라고개와 탑립제

 

 금사동 계곡 들어가는 길

 

 아래 능선 뒤가 금사동 계곡이다.

 

 금사동 계곡 입구

 

 산성 입구 맞은 편에 보물 167호인 은선리 삼층석탑이 있다. 후대에 부흥군의 원혼을 위무하려고 이곳에 사찰을 세운 것 같다.

 

 석탑 건너편 금사동 계곡 입구

 

 

 

 

 

 

 

 

 

 

 

 

 

 

 

 금사동 계곡 입구

 

 

 

 

 

 서쪽의 부안 변산의 산 무리

 

 

 

 천태산 자락

 

 탑립 마을에 서 있는 이정표

 

 마을 유래 안내판. 이곳 은선리 탑립 마을 주변은 백제의 중방성인 고사부리성으로 추정된다. 특히 백제 시대의 운학리 고분과 은선리 고분군이 있는 곳으로 보아 이곳 은선리는 지방의 중심지 기능을 하였음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곳이 남부여의 중방성인 고사부리성일 가능성은 매우 높다.

 

 

 

 탑립마을에서 바라 본 금사동 계곡

 

 

 

 서녁의 변산 일대 산 무리

 

 금사동 산성

 

탑립 마을에서 조금 내려가면 은선리 토성이 나온다. 그런데 눈대중만으로 토성터를 짐작키는 어려웠다.

 

은선리 토성


 지정번호 : 전라북도 기념물 제56호 

 지정년월일 : 1981년 4월 1일 

 소재지 : 정읍시 영원면 은선리 193

 시대 : 삼국시대

 면적 : 58,696㎡ 

 

은선리 토성은 대지를 평탄하게 다듬고, 높이 약 4~5m의 토단(土段)을 쌓은 토성지(土城址)이다. 성지(城址)는 남북의 길이가 280m이고, 동서폭이 최대 160m이며 둘레는 875m이다. 서쪽 중앙에 물구멍(水口)이 있고, 동서남북에 함도(陷道)로 된 문터(門址)가 있다. 성안(城內)에서는 삼국시대(三國時代) 토기(土器), 와편(瓦片) 등이 나오고 고려(高麗) 시대의 명문(名文) 기와 등이 채집(採集)되고 있다.
은선리 주민들이 옥터(獄址)라 부르는 곳이 있는데, 토성지 안쪽에 있어 백제 고사부리성 (古沙夫里城)의 관아(官衙) 터로 보인다. 속칭 옥터(獄址)라고 불리는 곳으로는 탑립(塔立) 마을의 서북쪽에 있다. 성지(城地)에는 문루(門樓)와 우물의 옛 터가(遺址)가 있고, 흙담을 쌓은 흔적도 있고, 백제시대의 기왓장(瓦片) 등이 발견되니 옛 고사부리(古沙夫里) 시대의 관아(官衙)터로 짐작이 간다.

 

 천태산. 두승지맥은 고부천과 정읍천및동진강을 동서로 나누는 경계의 산 줄기이다. 영산기맥에서 북으로 분기하여 두승산을 거쳐 이곳 천태산으로 이어진다. 천태산 서쪽 산록에는 고분이 즐비하여 군을 이루고 있다. 고분의 지배층의 무덤이다. 따라서 고분군이 존재한다는 것은 이곳이 지방의 중심지라는 것을 확실히 지표하고 있는 것이다.

 

 토성터의 시작으로 추정되는 구간

 

 토성의 중간 구간. 헌데 고개길이 하나 있다.

 

 운학리 가는 고개길

 

 토성의 끝 부분으로 추정되는 곳

 

 금사동 계곡

 

 금사동 산성

 

금사동 산성과 은선리 토성은 상호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 즉 은선리 토성은 평화시 정무를 보던 곳이고, 금사동 산성은 전쟁시 장기 농성전을 전개할 목적 석축한 산성이다. 이러한 두개의 산성과 평지성은 이곳이 지방의 중심지임을 확신케 한다. 그리고 은선리와 운학리 고분군의 존재는 이러한 점을 더욱 확신케 한다. 다만 남부여 중방성 고사부리성인지는 남부여 전체의 영역을 고려하여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남부여 오방성 중 남방성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  

 

 남부여 중방성인 고사부리성의 포구인 고부천가의 영원면 앵성리 수성마을로 갔다.

 

 사진 오른쪽 아래로 수성마을이 보이고 그 뒤로 변산의 산 무리가 보인다. 사진 중앙이 남부여 주류성이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부안 상서면 감교리의 우금산성이다.

 

 앵성리 앵성마을 이정표

 

 이곳에서 동쪽을 바라보니 사진 좌측에 응봉산의 금사동 산성이 보이고, 사진 우측에 남부여 고묘부리군의 치소로 추정되는 고부면 소재지 뒷산의 성황산성이 보인다. 그리고 사진 중앙에는 두승산이 보인다. 두승산에도 산성이 있다. 그러고 보니 이곳 인근에는 4개의 산성이 포진하고 있다.

 

 수성마을

 

 

 

 두승산과 성황산 사이로 내장산 영산지맥 줄기인 입암산이 살짝 보인다.

 

 

 

 수성마을 수로

 

 변산 우금산성이 보인다.

 

 수성마을에 새로 생긴 신성마을

 

고부천으로 흘러가는 자연 하천

 

 고부천 풍경

 

 인공 수로

 

 수성마을은 고부천가의 포구로 고사부리성(중방성)에 필요한 물자를 교류하던 곳이다. 이곳에는 수성을 만들어 남부여 수군이 주둔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수성 마을에서 바라본 금사동산성. 수성에서 금사동 산성까지는 지근 거리이다.

 

 자연하천

 

 다시 두승산과 금사동산성

 

 

 

 

 

무지개가 보이기 시작한다.

 

 무지개를 잘 찾아 보세요

 

 

 

나중에 돌아오면서 만석보 부근에서 모악산과 두승산을 잇는 거대한 무지개를 보게 되었다. 호남평원에서 바라보는 위대한 무지개는  일대 장관이었다. 모악산에서 피어 오르는 무지개.

 

 수성마을에서 바라본 서북 방향

 

 모악산에서 피어 오르는 무지개

 

 

 

 

 

 변산 우금산성 방향

 

 영원면 소재지 입구

 

 영원면 소재지 거리에는 가로수가 운치있다. 담양 메세타콰이어 거리에 견줄만하다.

 

 영원면 지나 신태인읍 가는 길의 만석보 혁파 선정비

 

 안내판

 

 만석정

 

 만석정 뒤로 피어나는 무지개

 

 

 

 장관인 무지개. 만석보 부근에서 바라보니 이 거대한 무지개는 김제 모악산과 정읍 두승산 사이에 걸쳐져 있었다. 밧데리가 다 소진되는 바람에 이 장엄한 무지개를 담을 수 없었던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아껴둘 걸...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