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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추론/주류성을 찾아서

부안 우금산성(2) : 남부여 부흥군의 聖地 주류성인가?

<2010년 9월 16일>

 

~ 부안 우금산성(1)에서 계속 ~

 

 

 표지사진-북벽 봉우리에서 바라본 우금암과 서벽

 

 서벽 산책로

 

서벽 구간

 

 저 멀리 북벽 봉우리가 보인다

 

 북벽 뒤 능선을 조망하다

 

 서벽에서 변산의 서녁을 감상하다

 

 좌측 뒤 능선이 의상봉 줄기일 듯...

 

 뒤 능선이 옥녀봉(354.7m). 앞 능선이 우슬재 줄기.

 

 아래 마을이 부안 상서면 청림리 남수동과 남선동 일대이다.

 

 서벽 산책로

 

 북벽 봉우리

 

 동쪽 앞 능선이 우금산성의 동벽 구간이다. 그 뒤의 우측산이 주류성(우금산성)의 동방 방어성인 부안군 주산면 소재 소산리토성이 있는 주산(231.1m)~목방산(146m) 줄기이다. 소산리토성은 목방산 정상의 테뫼식 산성으로 둘레가 330m인 보루성이다. 사진 좌측의 뒷산은 사산저수지 동쪽의 선봉(107m)으로 순 우리말로 '뉘엉메'로 부르는 곳이다. 이 산의 정상에도 둘레가 270m에 이르는 보루성인 부안군 주산면 소재 사산리토성이 있다.  소산리토성과 사산리토성은 주류성의 동방 보루성으로 적들을 협공하기 위한 병력 분산 배치에 이용되었을 것으로 사료된다.

 

 서문터로 추정된다.

 

 

 

 서문터는 위기시 탈출구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상서면 청림리 유동으로 내려가 내변산(지금은 부안호가 들어서 있음)을 거쳐 서해로 나갈 수 있다.

 

 서쪽 성벽의 석축

 

 서문터 부근에서 변산의 서쪽을 조망하다

 

 우금암

 

 동쪽을 조망하다. 좌측 산이 주산 줄기로 소산리토성이 있어 주류성을 동쪽에서 방어하고 있다.

 

 

 

 바위를 잘라낸 흔적. 주류성 석축시 우금산 주변의 바위를 이용하여 성돌을 만든 것 같다. 너무도 매끈하게 잘 잘라 놓았다.

 

 

 

 서벽

 

 북벽을 향하여

 

 우금암과 서벽 구간이 조망된다

 

 남쪽으로 개암저수지가 보인다. 좌측 능선이 주류성 동벽 구간이다.

 

 앞 능선이 우금산성 동벽구간이고, 그 뒤로 주산의 소산리토성이 조망된다.

 

 우금산성 동벽구간이 조망된다.

 

 남쪽의 개암저수지

 

 서쪽의 내변산 일대

 

우금암

 

 우금암과 서벽구간

 

 우슬재 줄기와 부안 상서면 청림리 창수동 계곡

 

 북벽 부근에서 북쪽을 조망하다.

 

 

 

 

 

 북벽을 향하여

 

 북벽

 

 북벽에서 바라본 내변산의 群山

 

 

 

 앞 능선이 주류성 동벽 구간이고, 좌측의 사산저수지 동쪽 산이 뉘엉메로 사산리 토성이 있다. 우측은 주산으로 소산리토성이 있다. 두 토성 모두 주류성의 동방 방어성 기능을 하였다.

 

 남쪽의 개암저수지. 이 골짜기가 남부여 부흥군의 왕궁인 이궁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된다.

 

 우금암

 

 서북방의 내변산

 

 

 

 

 

 주류성의 동벽 능선과 그 뒤의 주산

 

 북벽 정상

 

 

 

 서남방으로 내변산 자락이 일견된다.

 

 우측의 제일봉이 의상봉이다.

 

 북쪽을 조망하다

 

 사산저수지와 뉘엉메의 사산리토성. 남부여 시절 사산저수지까지 배가 들어왔을 가능성이 높다. 주류성의 남쪽 항구는 부안 줄포면의 줄포이며, 북쪽 항구는 부안 상서면 고잔리의 목포이다. 그런데 주산의 '주자'가 '배 주(舟)'이므로 우리말로 '배산'이다. 물론 배 모양을 닮아서 주산이라 칭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주류성 동쪽 지금의 사산저수지까지 배가 들어왔다고 해서 주산이라 칭했을 가능성도 배제키는 어렵다. 지금은 청호저수지 공사로 인해 밀물시 두포천으로 역류하는 바닷물을 막아 고잔리 목포 일대가 평야지대이지만, 청호저수지 공사 이전까지만 해도 목포일대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 지금도 목포에는 배를 매었던 '배매돌'이 논 한가운데 덩그러니 남아있다. 그리고 주류성의 북쪽 항구인 목포와 사산저수지까지 직선거리는 3Km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곳 사산저수지까지 바닷물이 들어왔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만약 고대 지형도를 떠올려 보면 이곳 변산이 줄포(정확히 말하면 남부여 흔량매현의 치소였던 지금의 보안면 유천리 토성 북쪽의 원남포와 고현리 일대)와 사산리 일대만 육지와 연결되어 있을 뿐 하나의 큰 섬이었을 것 같다. 변산이 육지로 연결된 길이는 고작 4.5km 밖에 안된다. 결론적으로 주류성은 바닷물를 자연 해자로 하는 철옹성이었던 것이다.

 

 주산과 소산리토성

 

 북벽에서 남쪽을 조망하다. 정면으로 보이는 산은 장지산(134m).

 

 사산저수지와 뉘엉메의 사산리토성. 사산리토성은 주류성의 동쪽 항구를 수호하는 기능도 겸했을 것으로 사료된다.

 

 북족으로는 주류성의 북방 방어성이 있던 부안 읍내가 어렴풋이 조망된다. 부안읍 좌측의 고성산(68.3m)에는 역리산성이 있어 주류성 북방에서 적들을 방어하였다.

 

 북쪽의 뒷 능선 너머에는 청호저수지와 계화도 간척지가 나온다. 이 일대는 8개의 보루성이 있어 웅진강에서 서해를 따라 남하하는 적선들을감시하다가 아군의 군선들이 출동하였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계화도와 청호저수지 일대 또한 백강구의 유력한 후보지이다.

 

 북벽 정상

 

 북벽 정상에서 서쪽의 내변산을 바라본다.

 

 우금암과 주류성의 서벽

 

 좌측 능선이 주류성의 동벽이고 우측 계곡이 왕궁인 이궁터로 추정된다.

 

 

 

 북방의 부안읍 일대

 

 동쪽의 사산저수지와 뉘엉매. 우측의 주산.

 

 사산저수지와 뉘엉메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