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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추론/대회전

옥천 지양리산성(2) : 신라군이 금강을 돌파하다

<2013년 12월 29일>

 

 

<표지사진 - 지장말에서 바라 본 지양리산성>

 

둔주봉 보루를 답사하고 보니 2010년 5월  답사에 실패한 지양리 산성을 찾고 싶었다.

 

5C 중엽 백두대간 화령을 넘은 신라군은 삼년산성, 모로성, 굴산성을 축조한 이후 백제군을 금강 동안에서 몰아내고 급기야 금강 도하를 꿈꾸게 된다. 그 꿈을 실현할 교두보가 있으니 그 산성이 바로 아동혜현의 치소인 화학리산성이다. 지금의 화학리산성은 고대에는 아동혜현의 이름을 따서 아동혜성으로 불리웠을 것이다.

아동혜성을 장악한 신라군은 금강 동안에 여러 개의 보루성을 구축한다. 그러면서 금강을 도하하여 남부여 관산성 기습의 꿈을 꾸었다. 그 보루 중의 하나가 둔주봉 보루이다. 신라군이 둔주봉 보루에 서면 눈에 거슬리는 산성이 하나 있다. 바로 금강 건너편에서 신라군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는 지양리 산성이 그것이다.

 

오늘은 지난번 답사 코스였던 옥천 동이면 청마리 말티마을이 아닌 지양리 지장말에서 직접 지양리 산성을 오르기로 작정했다.

참고로 다음은 <옥천신문 : 우리고장의 산성탐방기>에 실린 지양리산성 탐방기이다.

 

 

■ 위치 : 동이면 지양리와 청마리 사이의 산봉우리
■ 시대 : 삼국시대(백제계성?)
■ 해발 : 495M
■ 형태 : 테뫼형 토석혼축성
■ 둘레 : 약 300M

■ 현황 : 테뫼형 토석혼축성이며 지양리와 청마리를 구분하는 남북으로 형성된 긴 산줄기 중 가장 높은 봉우리에 축성되었고 성벽은 토석혼축성벽임이 확실하나 모두 무너져 원형의 모습을 알아보기 힘드나 성의 윤곽만은 뚜렷하다. 성의 내부에는 평탄한 지형이 여러 곳 있으며 장대지와 망대지로 보이는 지형물이 5개나 연이어 존재하여 특이함을 보여준다.

이 곳에서의 전망은 서쪽으로는 옥천읍 전체와 멀리 마성산 줄기의 여러 성이 잘 보이며 멀리 서산성과 환산성도 잘 보이고 남쪽으로는 이원의 월이산 봉수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지양리산성은 안남에서 옥천을 가는 길목인 청마리에서 가믐골을 넘어가는 말티재와 탑산마을에서 지양리를 넘어가는 고개를 지키기 위한 백제계의 성으로 보이며 신라가 옥천 지방을 장악한 이후 폐성이 된 듯하며 안남면의 조천성과 여러모로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출토되는 유물은 확인하지 못 하였다.

■ 문제점 : 지양리산성은 안남에서 옥천을 오가는 옛길을 찾던 중 발견하게 되었으며 지장말 마을에서 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인가의 주민은 이곳에 성이 있음은 전혀 모르고 있으나 지양리산성이 있는 산의 골짜기를 ‘성조골’이라 부르고 있으므로 이는 ‘성재골=城在골’의 변음으로 추정되어 옛날 이곳의 주민들은 성이 있음을 알고 있다는 증거로 생각된다.

■ 찾아가는길 : 동이면 가믐골에서 청마리를 넘어가는 고개의 정상에서 북쪽으로 능선을 따라 약 700M 정도 올라가면 성에 다다르고 또 지장말 마을에서 탑산마을을 넘어가는 고개 정상에서 남쪽의 능선을 따라 약 200M 정도 가면 성에 다다른다.

 

 

 

지장말에서 바라본 지양리산성. 처음에는 곧장 마을 뒤편으로 오르려다 지장말 노인들께서 우회로를 가르쳐주셨다.

 

마을 우측으로 난 길을 따라 가다가 외따로 떨어진 집 뒤 능선을 타고 우회하는 길이다.

 

지양리산성 전경

 

 

 

능선을 제법 우회하는 길이니 직선주로로 산행하지 말길...

 

 

 

크게 우회하면 고개가 보인다.

 

무슨 돌일까? 서낭신에게 기도한 것이리라.

 

고개에서 좌측으로 틀면 호젓한 산길이 나온다.

 

 

 

 

 

지난번 해맸던 임도가 나무사이로 희미하게 보인다.

 

 

 

여기부터가 산성구간이지만 토석혼축의 산성이라 딱히 지표조사만으론 식별하기 어렵다.

 

 

 

서쪽으로 옥천 시내가 보인다. 관산성 구간이 희미하게 보이고, 우뚝 솟은 봉우리는 식장산(598m)이다. 식장산 너머가 바로 대전이다. 신라군이 기습하면 여기서 봉화만 올리면 관산성에서 바로 신라군의 내습을 알 수 있는 요지가 바로 지양리산성이다.

 

 

 

 

 

지양리 산성 정상부는 산꾼들에게는 알봉산으로 유명하다. 탑산~알봉산~부릉산을 잇는 구간을 산행한다고 한다.

 

알봉산 정상이 이 주변에서 조망이 제일 좋다는 것은 이동통신 중계기가 설치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알 수 있다. 가끔 산성 답사를 다니다 보면 고대 산성 위치에 7~80년대 참호나 이동통신 기지국을 발견할 수 있는데, 예나 지금이나 군사 통신 목적을 위해 위치를 선정하는 것이 다르지 않다는 것에 놀라기도 한다.

 

동쪽으로 둔주봉 보루 일대가 보인다. 물길의 흐름이 U자와 역U자를 반복하는 금강을 사이에 두고 고대에는 신라와 남부여군이 서로 대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멀리 보이는 산은 보은읍 남쪽의 금적산인 듯...

 

 

 

실제 산성의 규모는 짐작하기 어렵다. <답사기>에 의하면 둘레가 약 300m라고 한다.

 

 

 

 

통신 기지국을 설치하면서 나온 돌인지 아니면 아니면 산성의 토석혼축의 흔적인지는 잘 모르겠다. 신라군이 관산성을 정복한 후 폐성이 되어서인지 전체적으로 지양리산성은 산성으로서의 외관은 갖추고 있지 않다.

 

산성 북벽

 

북벽 아래 고개를 향해 내려갔다.

 

지장말 가는 길. 하신길은 우회로로 가지 않고 산성 북벽 아래 고개에서 바로 지장말을 내려가기로 작정한다.

 

 

 

 

 

하산직전까지 길이 그래도 좋았으나 마지막 구간에선 수풀을 헤치며 나와야 하기에 제법 힘들었다. 아무래도 답사코스로는 마을 노인께서 가리켜준 우회로가 좋을 듯.

 

 

 

되돌아본 지양리산성

 

지장말 전경

 

 

 

지양리산성

 

다시 지장말에서 바라본 지양리산성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