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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기행 (충청도)/대전, 옥천

대전 질현성과 6개의 보루 : 남부여 동부전선을 방어하라

<2010년 12월 10일>

 

 

 

표지사진 - 질현성 보루에서 바라 본 대청호

 

식장지맥은 금강기맥이 금산의 인대산(662m) 부근에서 가지를 쳐 대전의 동벽을 이루며 북류한다. 남에서 북으로 주행하는 덕분에 서쪽의 대전과 동쪽의 금강을 정확히 가른다. 이러한 자연 지형 때문에 식장지맥 상에는 고대 남부여의 방어성이 즐비하다. 즉 식장지맥은 남부여의 동부전선 최전방인 셈이다. 금산, 옥천, 대전을 지나는 식장지맥 상과 주위 능선에 보루를 포함하여 30개 이상의 산성이 분포하고 있다. 남부여는 크게 금강을 자연해자로 하고 식장지맥 능선을 방어성으로 하며 신라군의 공세를 막았던 것이다.

이러한 방어전략의 중심에 바로 질현성과 6개의 보루가 있었다. 질현성(迭峴城)은 대전시 동구 가양동에서 추동 넘어가는 질티재 북쪽 산정에 있다. 고대에는 질티재를 넘어 북으로 청주(일모산성)를 가든지 아니면 동으로 보은(삼년산성)을 갈 수 있는 요지였다. 물론 질티재는 나제간의 간선이 아닌 지선이다. 간선은 줄골재이다. 그리고 신라군이 옥천의 관산성을 통해 식장지맥을 공략하자 대전에서 옥천가는 4번 국도가 지나는 마달령과 자모리 고개가 중요시 되었다. 하지만 질티재는 줄골재와 더불어 식장지맥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이런 연유로 두 고개의 주변에 위치하는 산성들은 청주와 보은 방면의 신라군을 방어하는 핵심 요지라 할 수 있다. 질현성과 6개의 보루는 이러한 군사적 필요에 의해 쌓은 기념물이다.

질티재는 구 경부고속도로 대전터널 서쪽 아래에 있는 가양비래공원 뒤 고개길이다. 가양공원 뒤에서 우회전하면 구 대전터널 가는 길이고 직진하면 질티재를 갈 수 있다.

 

 

질티재의 이정표

 

 

추동 넘어가는 질티재. 이곳을 통해 청주나 보은 방면으로 진출할 수 있다.

 

 

질현성 가는 등산로

 

 

3분여 오르다가 좌측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가면 질현성 안내비가 나온다. 수풀이 많은 계절에는 산성 내부를 보기 어려우므로 정상적인 등산로 따라 질현성 산정으로 가는 것이 좋다.

 

 

질현성 서벽이 보인다.

 

 

이정표

 

 

질현성 서문터로 사료된다.

 

 

서문터 오르는 중에 바라 본 석축

 

 

서문터인지는 확실치 않다. 필자의 추정일 뿐이다.

 

 

좌측이 산성 내부이고 오른쪽이 서벽임

 

 

산성 내부. 그 뒤쪽이 정상의 장대지 가는 북벽.

 

 

북벽이 울타리 모양 둘러처져 있다. 08년 여름에는 수풀로 가득하여 답사하는데 혼난 기억이 떠오른다. 

 

 

장대지 가는 길

 

 

산성 내부. 오른쪽 아래가 서벽이다. 질현성은 성 둘레가 800m 정도에 이른다. 따라서 질현성 주변의 보루들을 통제하고 관리한 본부성으로 사료된다.

 

 

서북벽의 석축을 따라 오르는데 석축이 불안하므로 산성 내부 길로 가는 것이 안전하다.

 

 

북벽의 석축

 

 

장대지 부근

 

 

장대지에서 바라 본 북벽

 

 

장대지 부근의 평탄지. 건물터임이 분명하다.

 

 

내려오며 되돌아 본 질현성 장대지.

 

 

질현성과 보루 사이의 고개. 오늘은 일행이 있어 아무래도 자세한 답사는 못할 듯하다. 어이~ 기다리시게나! ^^

 

 

이정표. 오늘의 목표는 질현성에서 계족산성까지다.

 

 

보루를 오르면서 바라 본 질현성 장대지 부근.

 

 

멀리 동남방으로 식장산 부근의 식장지맥 능선이 조망된다. 이 높은 산 줄기가 바로 남부여의 동부전선이다. 보이는 식장지맥 너머가 옥천이며 신라군이 관산성을 위시한 주변에서 남부여 동부전선격인 식장지맥을 넘어려고 호시탐탐 노려보고 있었을 것이다.

 

 

제1보루에서 바라 본 제2보루 오르는 길

 

 

제1보루에서 바라 본 추동 부근의 대청호(금강)

 

 

제1보루. 필자는 이를 제1보루라 하였지만 사실 제2보루 밑에 있어 독립된 보루라 보기 애매하다. 하지만 석축의 흔적이 있어 보루임에는 분명하다.

 

 

제1보루에서 바라 본 동남방의 식장지맥

 

 

동북방으로 대청호(금강)가 조망된다.

 

 

석축의 흔적

 

 

제2보루 전경

 

 

제2보루의 석축 흔적. 1보루에 비해 석축 흔적이 완연하다.

 

 

 

 

 

제2보루 내부 모습. 일행이 기다리고 있다. 산행 제안은 내가 해놓고 이 무슨 민폐람...

 

 

제2보루 내 망대의 돌탑 3기.

 

 

제2보루에서 바라 본 대청호

 

 

제2보루 내부

 

 

다시 제3보루를 향해 아래로 출~발.

 

 

되돌아본 제2보루

 

 

식장지맥 상의 산책로. 오른쪽(동쪽)이 금강, 왼쪽(서쪽)이 대전 시내로 식장지맥은 북쪽으로 주행하고 있다.

 

 

금강(대청호)

 

 

이정표

 

 

제3보루 오르는 길

 

 

석축의 흔적

 

 

제3보루에 이르자 동북방으로 대청호(금강)의 모습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동남방으로는 백골산과 고리산의 능선이 힘차게 동북방으로 달려가고 있다. 대청호 건너편 앞 능선이 백골산(346m)이며, 뒷능선이 고리산(579.3m)이다. 고리산과 백골산 일대에는 남부여 성왕의 맏아들인 태자 창이 옥천 관산성 일대에 포진한 신라군을 구축하기 위해 3만의 군대를 이끌고 주둔하고 있었다. 하지만 신주(지금의 진천)에서 청주를 지나 일모산성(지금의 청원군 문의)에서 금강을 도하한 김무력(김유신의 할아버지) 군대에 의해 배후를 급습당하며 몰살당하고 만다. 더구나 성왕마저 태자 창을 구원하려고 비밀리에 금산 방면에서 기병 50여명을 데리고 소옥천(서화천)을 건너려다가 구천에서 삼년산군 출신의 신라 군대 매복에 걸려 즉결 처형되는 비극마저 겪는다. 백골산은 남부여 군의 주검들이 많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곳 질현성 보루에서 고대 비극의 현장을 바라보니 감회가 새롭다.

    

 

김무력 군대는 일모산군에서 금강을 도하하고 이곳 대청호(당시에는 초원지대)를 거치며 백골산과 고리산의 배후를 쳤을 것이다.

 

 

사진에서는 금강 서안 좌측 끝 자락에 마산동산성이 위치하고 있어 일모산군(청원군 문의면 일대)에서 도하하는 적을 감시할 수 있다.

 

 

 

 

 

제3보루 내부

 

 

서쪽으로 대전 시내가 조망된다. 대덕구 일대.

 

 

제3보루의 석축 흔적

 

 

대덕구 비래동과 송촌동 일대

 

 

서북쪽으로 갑천 부근이 조망된다.

 

 

제3보루 하산길

 

 

제3보루 석축의 흔적.

 

 

되돌아본 제3보루

 

 

 

 

 

 

 

 

제4보루 오르는 길

 

 

석축의 흔적

 

 

보루 내부

 

 

대청호

 

 

제5보루 가는 길

 

 

제4보루와 제5보루 사이에는 고저차가 별로 없이 평탄면으로 이루어져 있어 두 보루는 일체의 산성으로 사료된다.

 

 

제5보루 오른 길. 만약 두 보루가 일체의 산성이라면 제5보루는 장대나 망대로 볼 수 있겠다.

 

 

보루 내부에 탑 1기가 보인다.

 

 

 

 

 

 

 

 

 

 

 

 

 

 

내려가는 길

 

 

되돌아본 제5보루. 기록에는 질현성 부근에 6개의 보루가 있다고 하나 필자는 5개 정도 밖에 확인하지 못하였다. 더구나 하나는 보루로 보기도 어려울 정도로 제2보루와 밀접하다. 일행들이 있어 속도를 내느라 놓친 탓일까? 조금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