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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기행 (충청도)/대전, 옥천

대전 사정성 : 과연 <삼국사기>의 사정성인가? 동성왕 20년(498년) 가을 7월에 사정성(沙井城)을 쌓고 한솔 비타로 하여금 그곳을 지키게 하였다.  성왕 4년(526년) 겨울 10월에 웅진성을 수축하고 사정책(沙井柵)을 세웠다.  사정성(沙井城)은 에 이름은 있으나 위치가 불명확한 성 중의 하나로 나온다. 대전 중구 사정성은 에 나오는 사정성으로 비정되고 있다. 사정성의 위치는 신라에서 백제로 들어오는 길목에 위치해 있다. 백제 성왕 대에는 지금의 사정성 아래에 책을 설치하고 이 일대를 직접 통제한 것으로 보인다. 책까지 설치한 것을 보면, 신라가 관산성 즉 지금의 옥천 일대까지 국경선을 넓혀 백제로서는 사람들의 이동에 민감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후 성왕은 관산성 전투에서 최후를 맞이한다.     사정성은 필자가 거주하는 곳과 가까워 언제.. 더보기
대전 금고동산성 대전 금고동산성은 갑천과 금강이 만나는 합수부에 축조한 백제 산성이다. 더보기
대전 흑석동산성 : 황산벌로 향하는 길목을 지키던 <삼국사기>의 진현성인가? 대전 흑석동산성은 에 등장하는 정현성 혹은 진현성으로 비정되고 있다. 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태종무열왕 7년(660) 8월 2일 백제의 나머지 적병이 남잠성(南岑城)·정현성(貞峴城)·▣▣▣성을 차지하고 버텼다. 또 좌평 정무(正武)가 무리를 모아서 두시원악(豆尸原嶽)에 진을 치고 당나라와 신라 사람들을 노략질하였다. 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당나라 용삭 2년(662) 7월에 인원,인궤 등이 웅진 동쪽에서 복신의 남은 군사를 대파하고, 지라성(支羅城) 및 윤성(尹城), 대산(大山), 사정(沙井) 등의 목책을 함락시켰는데, 군사를 죽이고 사로잡은 것이 매우 많았으며, 군사들을 나누어 그곳에 계속하여 주둔시키고 수비하게 하였다. 복신 등은 진현성(眞峴城)이 강가에 있고, 높고 험하여 요충지로.. 더보기
옥천 지양리산성(2) : 신라군이 금강을 돌파하다 둔주봉 보루를 답사하고 보니 2010년 5월  답사에 실패한 지양리 산성을 찾고 싶었다. 5C 중엽 백두대간 화령을 넘은 신라군은 삼년산성, 모로성, 굴산성을 축조한 이후 백제군을 금강 동안에서 몰아내고 급기야 금강 도하를 꿈꾸게 된다. 그 꿈을 실현할 교두보가 있으니 그 산성이 바로 아동혜현의 치소인 화학리산성이다. 지금의 화학리산성은 고대에는 아동혜현의 이름을 따서 아동혜성으로 불리웠을 것이다.아동혜성을 장악한 신라군은 금강 동안에 여러 개의 보루성을 구축한다. 그러면서 금강을 도하하여 남부여 관산성 기습의 꿈을 꾸었다. 그 보루 중의 하나가 둔주봉 보루이다. 신라군이 둔주봉 보루에 서면 눈에 거슬리는 산성이 하나 있다. 바로 금강 건너편에서 신라군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는 지양리 산성이 그것이다. 오.. 더보기
대전 계족산성(1) : 신라군의 보급로를 차단하라 표지사진 - 계족산성에서 바라 본 견두산성과 대청호 연안 계족산성은 의 옹산성으로 비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고찰하기로 한다. 옹산성에 대한 고찰 나당군은 남부여 사비도성과 웅진성을 함락시키고 웅진성에다 도독부를 설치한다. 하지만 웅진강 서쪽에서 남부여 복신의 세력이 발흥하여 웅진강 동쪽까지 세력을 확대하자 웅진과 신라를 연결하는 웅진도가 끊겨 웅진도독부성의 보급에 차질이 발생하였다. 이에 신라군은 복신의 근거지인 주류성을 공격한다. 하지만 실패로 돌아가자 이제는 웅진도독부 이남에서 여러 성들이 배반의 기치를 든다. 그 결과 웅진도독부는 고립무원의 처지에 빠진다. 이즈음 문무왕은 당나라에게 대 고구려 전쟁에 대한 참전 요청을 받게 된다. 6월에 이르러서 선왕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장례는 겨우 끝났으나 상복.. 더보기
대전 질현성과 6개의 보루 : 남부여 동부전선을 방어하라 표지사진 - 질현성 보루에서 바라 본 대청호 식장지맥은 금강기맥이 금산의 인대산(662m) 부근에서 가지를 쳐 대전의 동벽을 이루며 북류한다. 남에서 북으로 주행하는 덕분에 서쪽의 대전과 동쪽의 금강을 정확히 가른다. 이러한 자연 지형 때문에 식장지맥 상에는 고대 남부여의 방어성이 즐비하다. 즉 식장지맥은 남부여의 동부전선 최전방인 셈이다. 금산, 옥천, 대전을 지나는 식장지맥 상과 주위 능선에 보루를 포함하여 30개 이상의 산성이 분포하고 있다. 남부여는 크게 금강을 자연해자로 하고 식장지맥 능선을 방어성으로 하며 신라군의 공세를 막았던 것이다. 이러한 방어전략의 중심에 바로 질현성과 6개의 보루가 있었다. 질현성(迭峴城)은 대전시 동구 가양동에서 추동 넘어가는 질티재 북쪽 산정에 있다. 고대에는 질티.. 더보기
대전 월평동산성(1) : 고구려군이 금강을 돌파하다(2) 대전에서 유성으로 향하는 길에 있는 만년교 남쪽 표고 137.8m의 야산 정상부를 따라 쌓은 포곡식 산성으로, 성둘레는 약 710m이다. 산성 서쪽은 갑천의 지류인 성천(省川)이 흐르며 자연 해자 역할을 한다.월평동 산성의 북동쪽으로는 갑천을 따라 유성구 구성동 성두산 공원인 구성동산성이 남부여의 소비포현성이 유력한 적오산성과 남부여의 우술군성으로 이어진다. 동쪽으로는 한남정맥의 지맥인 식장지맥의 보루성들과 이어지며, 통영대전고속도로 판암IC 4번국도 맞은 편 산인 판암동 산성으로 이어져 옥천으로 나갈 수 있다. 남부여군이 지키지 못한 탄현을 옥천 지역에 비정하는 근거는 식장지맥이 옥천의 관산성과 마주하며 국경을 이룬 사실에서 근거한다. 신라의 김유신 군대가 식장지맥 부근의 산성들을 공략하지 않고 사비성.. 더보기
옥천 지양리산성(1) : 신라군이 금강을 돌파하다 소지마립간 8년(486년) 상주에서 백두대간 화령을 넘은 신라군은 보은의 삼년산성과 옥천 청성면의 굴산성을 개축하고 금강 도하를 꿈꾼다. 특히 굴산성의 개축은 금강 지류인 보정천 중하류 일대를 장악함으로써 신라군의 금강 도하의 든든한 배후 기지를 구축한 셈이다.옥천군 청성면 고당리는 보정천과 금강이 합강하는 곳이다. 고당리는 보정천의 협곡과 금강의 협곡이 만나는 곳으로 물살이 화살처럼 빠르고 소뿔처럼 거센 곳이다. 지금은 금강의 빼어난 절경 때문에 펜션들이 양안으로 군데군데 있다. 하지만 1500년 전 이곳은 남부여와 신라가 서로 창칼을 겨누는 국경이었다. 다행히 남부여 입장에서는 금강의 빠르고 거센 물살 덕분에 신라군이 쉽사리 건너오지 못하는 자연 방어막 역할을 하였다. 게다가 금강을 지나도 높은 산악.. 더보기
대전 마산동산성 : 신라의 금강 도하를 저지하라 대전은 산성의 도시이다. 연유는 고대 삼국간의 대회전(450년 실직원 사건~668년 고구려 멸망)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470년 신라가 지금의 보은읍 근방에 삼년산성을 축조한 이래 남부여와 신라간에는 금강을 사이에 두고 전선이 상착을 이루었다. 정확히 말하면 대전의 동쪽인 대청호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는 형국이었다. 상착은 상호 교착을 이루었다는 의미인데, 대청호 남쪽(금강 상류) 옥천 근방의 금강 연안서는 신라가 금강을 넘어 관산성을 비롯한 옥천읍 서쪽 산줄기에 요새같은 쌓은 산성들을 구축하고 금강의 지류인 서화천을 넘어 대전 동쪽 산줄기인 식장지맥을 돌파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옥천의 남쪽인 금산 일대에서는 다시 금강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였다. 이처럼 나제간에는 금강을 두고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였다... 더보기
대전 우술성 : 남부여 동부전선의 참모본부 삼국사기 잡지 지리조에 따르면, 남부여의 우술군에는 속현이 둘인 바, 노사지현과 소비포현이 그것이다. 노사지현은 오늘날 대전 유성이며, 소비포현은 고려때 덕진현이었으며 오늘날 대전 유성구 덕진동 적오산 부근 일대였다. 우술군은 신라에서는 비풍군, 고려와 조선에서는 한 단계 격하되어 회덕현으로 불려졌다. 지금의 대전시 대덕구 읍내동 주변 일대 지역이다. 따라서 남부여의 우술군은 지금의 대전광역시 전체를 포괄하는 지역이며, 옥천 지방까지 신라군이 진격한 것을 보면 우술군 지역은 남부여의 동부전선에 가까워 우술성은 이 동부전선의 참모본부격이 되었다.회덕이라는 이름은 '대인회덕(大人懷德) 소인회토(小人懷土)' 즉 '대인은 가슴에 덕을 품고, 소인은 가슴에 고향을 품는다'라는 말을 인용해 생긴 것이라고 한다. 회.. 더보기
대전 적오산성 : 백제 소비포현의 치소 표지사진 - 대전 적오산 전경  에 따르면, 우술군에는 속현이 둘이 있다고 하였다. 노사지현과 소비포현이 그것이다. 우술군은 지금의 대전시 대덕구 회덕 일대였다. 치소는 회덕향교 뒷산의 우술성이라고 한다. 노사지현은 지금의 대전시 유성 일대로 치소는 월평동 산성으로 추정한다. 나머지 소비포현의 치소는 어디일까? 향토사학자들은 대전 안산동 산성을 남부여의 소비포현성이며, 고려때 덕진현성으로 주장하기도 한다. 과연 그러한가? 덕진산성으로 비정되는 또 하나의 산성이 있다. 바로 대전시 유성구 덕진동 적오산성이다. 적오산성은 북대전IC 요금소를 빠져 나와 처음 나오는 신호대 뒷산에 있다. 남부여에서는 소비포현이라 불렀고, 신라때에는 적조현이라 불렀고, 고려때 덕진현이라 불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덕진현은 공.. 더보기
옥천 환산성(고리산성) : 남부여 동부전선 전방사령부를 가다 어쩌면 관산성 전쟁은 신라 중심의 역사 서술에서 나온 말일 수도 있다. 남부여 성왕대의 관산성 전쟁 승리와 삼한 통일을 이룩한 신라의 입장에서 보면 '환산성 전쟁' 보다는 '관산성 전쟁'이라고 명명하고 싶은게 당연할 지 모르겠다. 남부여의 근간이 흔들린 '관산성 전쟁'의 남부여 전방사령부가 위치했을 환산성을 답사하기로 마음먹었다. 옥천읍에서 4번 국도를 타고 삼양교 부근에 들어서면 산성의 트라이앵글(관산성, 서산성, 삼양리산성)이 나온다. 이곳이 바로 고대 신라의 최전방 서부전선이다. 적들이 이 트라이앵글 지역으로 들어오기라도 한다면 세방향에서 화살들이 비처럼 쏟아져 바로 고슴도치 신세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곳을 호시탐탐 노려보던 곳이 있다. 바로 옥천군 군북면 소재 노고산과 고리산이다. 이곳 노고성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