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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기행/백제 산성

금산 마전리산성(추정리산성) : 남부여 성왕의 최후 거처지

<2014년 3월 22일>

 

 

 

<표지사진 - 마전리 산성 동벽구간에서 바라본 동북방의 추부분지. 옥천 관산성으로 향하는 길이다. 우측 제일봉이 서대산(904.1m)이고, 중앙 멀리 보이는 산이 고리산성(환산성)이며, 좌측 맥이 남부여 동부전선인 식장지맥이다. 남부여 성왕은 이곳 마전리산성에서 당시 고리산에서 본진을 이끌고 있던 태자 부여창을 만나러 갔다가 관산성 아래 구진베루에서 신라군의 포로가 되어 참수를 당하고 만다.>

 

 

- 마전리산성, 성왕이 구진베루로 출발한 장소

 

금산 마전리산성은 추정리산성으로도 불린다. 이곳 사람들은 추정성으로 부른다. 산성의 북동쪽으로 소옥천(혹은 서화천)이 흐르며 추부분지를 일구어 놓아 시야가 매우 좋다. 소옥천은 옥천 관산성 서쪽 바로 아래에서 구진베루(혹 벼루)를 만들고 대청호로 들어간다. 그런데 구진베루는 남부여 성왕(490~554년)이 참수당한 곳이다. 성왕은 이곳 마전리산성에서 당시 고리산성에서 본진을 이끌고 있던 태자 부여창을 만나러 갔다가, 관산성 아래 구진베루에서 신라군의 포로가 되어 참수를 당하고 만다.

 

<삼국사기 잡지 지리지>에 의하면, 남부여 황등야산군에는 영현이 둘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진현현이고, 다른 하나는 진동현이다. 황등야산군은 지금의 충남 논산시 연산면 일대로 비정하고, 진현현은 지금의 대전광역시 유성구 진잠 일대로 비정하며, 진동현은 지금의 충남 금산군 진산면 일대로 비정하고 있다. 이곳 마전리산성은 진현현의 통제를 받던 남부여 국경 방어성이다.

당시 고대 군현 체계는 철저하게 교통로 위주로 편제되어 있었다. 이는 군사의 기동과 관련하여 군현이 하나가 되어 고대 주요 간선로를 방어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삼국시대는 곧 전쟁의 시대이다. 지방 통치의 목적도 있었지만, 모든 것은 군사의 유기적인 기동체계가 우선이라고 볼 수 있다. 군현의 체계는 곧 군사의 체계로 고대 루트를 보호하는 국방의 체계 연장선상에서 해석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황등야산군은 당시 남부여 도성인 사비에서 동쪽 신라로 가는 주요 2개 루트를 보호하고 방어하는 막중한 책임이 있었다.

 

1) 사비(부여)-황등야산군(황산벌, 논산시 연산면)- 탄현(계룡시 양정고개로 추정)-진현현(대전시 유성구 진잠일대로 치소는 성북동 산성으로 추정)-대전-고리산성(옥천)-관산성

 

2) 사비-황등야산군-진동현(금산 진산면)-마전리산성(금산 추부면)-관산성

 

이는 진동현이 가까운 지금의 금산군 금산읍으로 추정되는 진잉을군의 영현이 아닌 황등야산군의 영현으로 있는 이유이다. 참고로 진잉을군은 백령성-고당리산성으로 이어지는 사비 남방루트를 보호하는 책임을 진 군이다.

 

역사의 시계를 5C 중반 관산성전쟁이 벌어질 당시로 돌이켜보자. 신라가 관산성을 기습하여 점령하자, 사비에서 출발한 남부여군은 황등야산군에서 두 진영으로 갈라진다. 하나는 태자 부여창이 이끄는 본진으로 1)의 루트로 해서 관산성의 신라군과 대치했을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성왕이 이끄는 별동대로 2)의 루트로 이곳 마전리산성에서 전황을 지켜봤을 것이다.

그런데 전세는 신라군이 우위에 서게 되었다. 더욱이 태자 부여창이 병을 얻어 지휘하기가 곤란하다고 하므로 65세의 노왕은 고리산성의 본진에 들어가 몸소 남부여군을 지휘하기로 작정한다. 그래서 50여명의 기병과 함께 지름길인 구진베루를 지나다가 신라군의 기습을 받고 현장에서 참수를 당하게 된 것이다.

 

남부여 역사상 마전리산성과 구진베루는 성왕의 최후와 관련된 역사적인 곳으로 추정된다.

 

- 마전리 산성은 마안봉형 테뫼식 산성

 

마전리산성은 둘레가 약 580m인 마안봉형 테뫼식 산성이다. 필자는 지금까지 산성을 포곡식과 테뫼식으로만 구분하였다. 그런데 정약용 선생은 <민보의>에서 산성을 '민보(民堡)'로 인식하고, 산성의 모양을 사물에 빗대어 크게 4가지 형태로 구분하였다. 고로봉형, 사모봉형, 마안봉형, 산봉형이 그것이다. 고로봉형과 사모봉형은 포곡식산성이고, 마안봉형과 산봉형은 테뫼식산성이다.

 

1) 고로봉형

'고로'는 버들가지로 만든 그릇이다. 고로는 흔히 '버들고리짝'이라고도 한다. 고로봉은 산으로 둘러싸인 모양이 마치 고로(그릇)처럼 가운데는 평평하고 깊으며, 사방이 벽으로 되어 있는 산세를 말한다. 즉 산정 8~9부 정도에서 큰 분지를 이루고 있는 형태다. 천연적인 지형 자체가 성벽을 이루므로 적은 노력으로도 큰 성을 쌓을 수 있다. 분지 내부는 작은 계곡이 많이 있으므로 물은 넘쳐난다고 할 수 있다. 둘레가 10km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의 장기농성으로 적합하다. 필자가 답사한 곳으로는 언뜻 경북 청도 오례산성이 떠오른다. 산정의 8부 정도에 대규모 분지를 이루며 계곡 끝은 폭포로 이어져 있어 한마디로 불가침의 철옹성이라고 할 수 있다. 고로봉형은 하루만에 답사하기가 힘들다.

 

2) 사모봉형

'사모(紗帽)'는 비단으로 만든 모자를 말한다. 뒤쪽이 높고 앞쪽으로 경사진 비탈이 있는 모양이며, 양쪽으로 주름이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즉 산의 높은 봉우리에서 좌우로 능선이 뻗어 내려와 앞쪽에서 트여진 곳에 계곡을 이루는 모양이 된다. 따라서 산성의 모습은 작은 계곡 한 두개를 포함한 Y자 모양으로 가지게 된다. 성벽은 높은 봉우리와 거기서 내려오는 두 능선을 따라 내려와 다시 서로 마주보고 이어진 곳이 가장 낮은 곳이 된다. 여기에 물이 빠지는 수문(수구)과 성문을 만들 수 있다. 계곡 쪽에 물을 가두는 연못을 만들어 물을 저장하여 사용하기에 수원은 충분하다. 보통 둘레가 4~6km 정도다. 우리나라 지형상 대부분의 포곡식 산성이 사모봉형을 취한다. 사모봉형은 답사에 하루 정도는 소요된다. 필자가 답사한 곳으로는 경북 상주 금돌성이 대표적이다.

 

3) 마안봉형

'마안(馬鞍)'은 말을 탈 때 사람이 앉는 말안장을 말한다. 말안장은 앞과 뒤가 높고 가운데가 잘록하게 낮은 모양을 하고 있다. 산꾼들이 말하는 '안부'가 그것이다. 산의 두 봉우리와 그 사이 안부로 이어진 양 능선을 따라 성을 쌓으므로 규모가 큰 경우는 드물다. 두 봉우리는 장대나 망대로 이용하고 안부 평탄지에 건물을 짓는다. 계곡이 없어 우물이 없는 경우네는 별도의 '저수고'가 필요하다. 멀리서 보면 산 위에 띠를 두른 듯 보이며(테뫼), 누에고치나 땅콩 모양 즉 타원형의 평면을 이루거나 삼태기 모양을 한 것이 많다. 보통 해발 2~300m의 두 산정에 쌓은 곳이 많으며, 둘레가 5~700m 정도에 이르는 것은 고대(삼국)나 중세(고려 초) 때 군이나 현의 치소로 기능하였다. 이곳 마전리산성도 마안봉형(테뫼식) 산성이다. 답사는 반나절이면 족하다.

 

4) 산봉형

'산(蒜)'은 마늘을 뜻하는 한자어이다. 마늘은 모양이 오뚝하고 봉우리가 뾰족한 형태이다. 마늘처럼 뽀족한 산봉우리의 꼭대기 부분을 돌려 성벽을 쌓은 것을 말한다. 산성의 규모가 작다. 보통 둘레가 2~300m에 불과하다. 산정에 산성이 위치하므로 물이 솟는 샘이 없어 역시 별도의 저수고를 만들어야 한다. 보통 고대 군현을 잇는 간선 수렛길의 고개마루 좌우에 쌓아 인마를 통제하거나 적을 감제하는 보루성으로 기능하였다. 답사는 역시 반나절이면 족하다. 필자는 특히 산봉형 산성들에 주목하는데, 이는 산봉형 산성들이 고대의 교통로를 확인시켜주는 기념물들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산성은 축조방식에 따라 협축식과 내탁식이 있다. 협축식은 안팎 모두 돌로 쌓은 성벽을 말하며, 내탁식은 겉은 돌로 쌓고 안쪽은 돌조각과 흙으로 단단히 다져 쌓은 것을 말한다. 한편 성문은 평거식, 계단식뿐만 아니라 현문(성벽 바깥으로 사다리나 줄을 이용해야 출입할 수 있는 문), S자로 굽어드는 문, 암문(적에게 발각되지 않고 몰래 통행할 수 있는 문), 각종 양식의 옹성을 갖춘 문, 수문이나 수구 등 다양한 양식을 볼 수 있다. 필자의 생각에는 이 정도 지식만으로도 산성 답사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마전리산성은 금산군 추부면 추정리 문화마을 뒷산에 있다.

 

 

문화마을 입구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마전리 산성 전경이 보인다. 산성 답사하다가 느끼는 소회지만, 작은 동네 뒷산에 산성이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가끔 들기도 한다. 답사 끝엔 고대의 기념물인 산성을 목도하곤 희열을 느낀다. 유물은 훼손되어 시대를 이야기할 수 없지만, 유적은 천년 이상을 남아 그대로 고대 역사를 들려준다. 많은 돌들이 만들어내는 살아있는 역사다. 공간에는 사연이 있고, 산성이라는 공간이 만들어내는 사연은 곧 역사다.

 

 

문화마을 동북쪽으로 철마산(369.8m)이 보인다. 철마산에는 보루와 봉수지가 있다고 한다. 우라나라엔 오래된 역사만큼 산성이나 봉수의 유적이 너무도 많다. 전국 산성 답사를 다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철마산 우측으로 지난번 답사했던 대암산성이 보인다.

 

 

좌측의 철마산과 우측의 대암산

 

 

 

 

 

 

천천히 오르다 보면 된비알이 나온다.

 

 

산성의 동북벽 모서리 구간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필자는 마전리산성의 규모를 짐작하지 못했다.

 

 

된비알을 올라서는 순간, 북벽 구간이 눈에 확 들어온다.

 

 

발아래로 산성의 동벽 구간이 보인다.

 

 

 

 

 

 

 

 

 

 

 

 

북벽에서 동벽 아래를 바라본다.

 

 

동북방으로 추부분지가 보인다.

 

 

 

 

서대산

 

 

동남방으로 대암산성이 보인다.

 

 

 

 

산성의 내부

 

 

 

 

 

 

 

북쪽 장대지에 세워진 추정성지 비문

 

 

비문 뒷쪽

 

 

장대 내부 평탄지

 

 

북벽 모서리 구간

 

 

 

 

 

 

 

 

 

 

 

 

 

북벽에서 남쪽 산성 내부로 가는 길

 

 

 

 

북쪽 장대지

 

 

산성 내부는 매우 넓었다. 밭으로 개간되었다가 지금은 방치해 둔 것 같다.

 

 

 

 

북쪽 장대지 전경

 

 

서벽 구간

 

 

산성의 서남방으로 용지리 골짜기가 보인다. 멀리 보이는 산이 금산의 진산 진악산(732.3m)이다. 사진 좌측 나무 뒤로 희미하게 보이는 봉우리는 금성산으로 금성산성이 있다. 마전리산성 남쪽으로 금성산성-핏재산성-계원봉보루로 이어지며 남부여 동부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서벽구간

 

 

서벽에서 서대산을 바라보다.

 

 

서남벽 모서리 구간

 

 

서벽구간 뒤로 북쪽 장대지를 조망한다.

 

 

서벽 아래와 멀리 북쪽으로 대전 만인산(537.1m)이 보인다.

 

 

 

 

 

 

북쪽 장대지

 

 

 동북방으로 우측 제일봉이 서대산(904.1m)이고, 중앙 멀리 보이는 산이 고리산성(환산성)이다.

 

 

 

 

 

 

 

북쪽 장대지

 

 

 

 

남벽 아래

 

 

남벽 구간

 

 

남벽 아래에서

 

 

남벽 아래

 

 

남벽

 

 

남벽

 

 

남쪽 산책로

 

 

 

 

산수유인지 생강나무인지 헷갈린다. 아마 생강나무 꽃인 듯하다.

 

 

 

 

다시 산성 내부로 들어와 동벽으로 향한다.

 

 

우측 제일봉이 서대산(904.1m)이고, 중앙 멀리 보이는 산이 고리산성(환산성)이며, 좌측 맥이 남부여 동부전선인 식장지맥이다.

 

 

 

 

 

 

 

 

동쪽 철마산과 서대산

 

 

 

 

동벽

 

 

동벽에서 산성 내부를 바라보다.

 

 

서벽구간

 

 

 

 

 

서벽 계곡부

 

 

서벽

 

 

이 지점에 수구지가 있었을 것이다.

 

 

수구지 아래 계곡

 

 

 

 

 

 

처음 올라왔던 북벽 구간

 

 

수구지 아래 계곡

 

 

동벽에서 철마산보루(사진 좌측)를 바라보다. 대전통영간고속도로가 보이고 그 뒤 계곡이 장대리이다. 장대리에는 신라계 고분이 분포하고 있다고 한다.

 

 

원점으로 돌아와 산성 답사를 마무리했다. 내려오며 다시 바라본 동북벽 모서리구간.

 

 

북쪽의 만인산

 

 

마전리산성 전경

 

 

금산군 추부면은 깻잎으로 유명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