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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기행 (충청도)

세종 노고봉산성 : 고구려군이 금강을 돌파하다(1) 경부고속도로 청원나들목에서 나와 부용면 소재지로 들어가는 구 96번 지방도(2차선)를 타고 가다보면 부강공고가 나타난다. 부강공고 옆길로 죄회전하여 들어가면 달뫼방죽이 나오고 곧 달뫼마을에 도착한다. 과수원 방향으로 길을 잘못들어 개고생하며 노고성 정상에 도착하였다. 금강을 바라보며 노고성 정상으로 오르는 편안한 길은 충북의 3대 약수터로 불리는 부강약수터에서 오르는 길이다. 다음번에는 꼭 부강약수터에서 오르리라 다짐한다. 그래도 등산 한번 제대로 했다.   청원 노고봉 정상, 정상 2백m 직전에는 봉화터도 있다.  노고성에서 북으로 대국터 마을이 보인다.  고구려 연개소문이 남부여 정복을 위한 교두보로 대국터를 지목하고 실제 거쳐했다고 전해진다. 일설에는 연개소문이 고구려 남방의 궁궐터로 지정하였다고 .. 더보기
옥천 지양리산성(1) : 신라군이 금강을 돌파하다 소지마립간 8년(486년) 상주에서 백두대간 화령을 넘은 신라군은 보은의 삼년산성과 옥천 청성면의 굴산성을 개축하고 금강 도하를 꿈꾼다. 특히 굴산성의 개축은 금강 지류인 보정천 중하류 일대를 장악함으로써 신라군의 금강 도하의 든든한 배후 기지를 구축한 셈이다.옥천군 청성면 고당리는 보정천과 금강이 합강하는 곳이다. 고당리는 보정천의 협곡과 금강의 협곡이 만나는 곳으로 물살이 화살처럼 빠르고 소뿔처럼 거센 곳이다. 지금은 금강의 빼어난 절경 때문에 펜션들이 양안으로 군데군데 있다. 하지만 1500년 전 이곳은 남부여와 신라가 서로 창칼을 겨누는 국경이었다. 다행히 남부여 입장에서는 금강의 빠르고 거센 물살 덕분에 신라군이 쉽사리 건너오지 못하는 자연 방어막 역할을 하였다. 게다가 금강을 지나도 높은 산악.. 더보기
대전 마산동산성 : 신라의 금강 도하를 저지하라 대전은 산성의 도시이다. 연유는 고대 삼국간의 대회전(450년 실직원 사건~668년 고구려 멸망)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470년 신라가 지금의 보은읍 근방에 삼년산성을 축조한 이래 남부여와 신라간에는 금강을 사이에 두고 전선이 상착을 이루었다. 정확히 말하면 대전의 동쪽인 대청호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는 형국이었다. 상착은 상호 교착을 이루었다는 의미인데, 대청호 남쪽(금강 상류) 옥천 근방의 금강 연안서는 신라가 금강을 넘어 관산성을 비롯한 옥천읍 서쪽 산줄기에 요새같은 쌓은 산성들을 구축하고 금강의 지류인 서화천을 넘어 대전 동쪽 산줄기인 식장지맥을 돌파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옥천의 남쪽인 금산 일대에서는 다시 금강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였다. 이처럼 나제간에는 금강을 두고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였다... 더보기
괴산 미륵산성 : 신라군이 백두대간을 넘어 달천 상류를 장악하다 신라는 소지마립간 8년(AD 486년)에 삼년산성과 굴산성을 개축하였다. 신라가 상주에서 백두대간을 넘어 처음 개척한 군이 바로 삼년산군이다. 삼년산군의 치소는 지금의 보은군 보은읍 성주리의 삼년성이다. 삼년성은 백제가 초축하였고, 소지마립간대에 이르러 신라가 백두대간을 넘어며 개축한 것이다.에 따르면, 삼년산군에는 2개의 속현이 있었다고 한다. 하나가 굴현이고 다른 하나가 살매현이다. 굴현의 치소는 지금의 옥천군 청성면 소재지인 보정천 가의 언덕에 쌓은 굴산성이다. 신라는 삼년산성과 동시에 굴산성을 개축한 것을 보면 금강의 지류인 보정천까지 개축하여 백제의 금강 저지선까지 위협하였던 것이다.한편 살매현의 치소는 지금의 괴산군 청천면 일대에 있었을 것으로 비정된다. 특히 미륵산성 아래 공림사와 그 입구인.. 더보기
청주 낭비성 : 신라군이 드디어 금북정맥을 넘어 미호천에 이르다 486년 신라군은 상주에서 화령(백두대간)을 넘어 삼년산성을 수축하고 본격적으로 서진(백제 공격)과 북진(고구려 공격)을 준비한다. 특히 낭비성은 신라군의 북진과 관련하여 중요한 산성이다. 당시 신라군의 북진로는 삼년산성~노고산성(보은읍 산성리)~주성산성(보은군 내북면 창리)~낭성(청원군 미원면 성대리)과 돌봉산성(미원면 성대리)~구라산성(혹은 구녀산성으로 불리며 청원군 미원면 대신리 금북정맥인 이티고개 동북방에 소재)~낭비성(청원군 북이면 부연리)과 할미성(북이면 영하리)으로 이어져 미호천의 지류인 보강천 남안에서 고구려와 대치하게 되었다. 또한 고구려도 부도인 국원성(지금의 충주) 즉 남한강 유역에서 음성과 괴산을 거치며 금북정맥을 넘어 미호천의 지류인 보강천 상류로 지향하고 있었다. 증평군 도안면 .. 더보기
청양 우산성 : 남부여부흥군의 든든한 후방기지 충청도라는 고유지명에는 지금의 충청북도만을 가리키는 '충주+청주'의 의미 이상이 없다. 즉 충청도는 지금의 우리가 인지하는 것과는 달리 단어상 의미에는 충청남도를 배제시키고 있는 것이다. 오리지널 충청도는 오히려 지금의 충남이라고 볼 수 있고, 여기에 적합한 단어는 '내포'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청도라고 불리울까? 그런데 옛날에는 홍청도라고 불러 '홍주(지금의 홍성)+청주'의 의미로 불려 전 충청지역을 대변하는 말이 있었다.그런데 '홍청도'라는 말이 왜 사라지고 '충청도'라고 불렸을까? 지금은 우리가 호남을 반역의 고향으로 많이 부르지만(여기에는 동학농민전쟁, 광주학생의거, 여수순천반란사건, 518민주화운동 등 근현대 반봉건반외세반독재 운동이 호남에서 많이 일어났기 때문에 생긴 비교.. 더보기
대전 우술성 : 남부여 동부전선의 참모본부 삼국사기 잡지 지리조에 따르면, 남부여의 우술군에는 속현이 둘인 바, 노사지현과 소비포현이 그것이다. 노사지현은 오늘날 대전 유성이며, 소비포현은 고려때 덕진현이었으며 오늘날 대전 유성구 덕진동 적오산 부근 일대였다. 우술군은 신라에서는 비풍군, 고려와 조선에서는 한 단계 격하되어 회덕현으로 불려졌다. 지금의 대전시 대덕구 읍내동 주변 일대 지역이다. 따라서 남부여의 우술군은 지금의 대전광역시 전체를 포괄하는 지역이며, 옥천 지방까지 신라군이 진격한 것을 보면 우술군 지역은 남부여의 동부전선에 가까워 우술성은 이 동부전선의 참모본부격이 되었다.회덕이라는 이름은 '대인회덕(大人懷德) 소인회토(小人懷土)' 즉 '대인은 가슴에 덕을 품고, 소인은 가슴에 고향을 품는다'라는 말을 인용해 생긴 것이라고 한다. 회.. 더보기
청주 낭성산성 : 신라, 어부지리를 얻다 신라군은 상주에서 백두대간을 넘어 중화지역을 장악한다. 보은의 삼년산성 축조(소지마립간 8년, 486년)는 신라가 백두대간 동쪽의 낙동강 유역을 공고히 하고 금강 유역으로 진출하겠다는 야심의 기념물에 다름아니다. 이로부터 얼마 뒤 신라군은 보은 벌판에서 남부여군을 몰아내고 금북한남정맥을 넘어 고구려군의 근거지인 남한강 상류 지류인 달천유역으로 진출한다. 달천 상류인 청원군 미원면 성대리 터말부락 뒷산인 표고 346.4m의 산정과 남사면에 걸쳐 석축한 내성과 토루의 외곽을 이룬 테뫼식 산성이 바로 청원 낭성산성이다. 이로써 신라군은 고구려와 남부여군 사이에 끼어든다. 이로써 삼국의 국경이 개 어금니처럼 남북으로 세로로 열지어 서게 된 것이다. 신라군은 낭산산성을 토대로 한북정맥을 돌파하는 바, 한북정맥상에.. 더보기
세종 이성과 금이성 : 남부여 동부전선의 2차 방어성 를 보면 남부여 동부전선의 북부지역은 대목악군(지금의 천안시 목천읍), 서원(지금의 청주시), 일모산군(지금의 청원군 문의면 일대), 미곡현(지금의 보은군 회인면 일대)이다. 연기 이성과 금이성은 대목악군과 서원 사이의 빈틈인 미호천 지류를 따라 공략해 오는 적들을 방어하기 위한 2차 방어성이다. 특히 남부여 입장에서는 만뢰지맥을 넘어 미호천의 지류인 병천 일대에서 준동하는 신라군들이 골치거리였다. 만약 병천 일대가 신라군의 손에 넘어가기라도 한다면 금강 이북의 핵심 지역들이 전선에 노출되어 남부여 동부 전선이 급격히 확대되는 불리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고, 그 결과 남부여의 최대 생산지대인 내포(지금의 충청남도 내륙) 지역까지 위협받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비하여 남부여 동부전선 2선에 위치한.. 더보기
세종 나성 : 신라에서 남부여로 들어오는 금강길을 차단하라 연기 나성은 남부여 두잉지현 관내로 고구려나 신라에서 남부여로 들어오는 금강길을 감시하는 평지 구릉성이자 포구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남부여 군선들이 이곳 나성 포구에 정박해 있다가 이상한 낌새가 있다면 곧바로 출동했을 것이다. 연기 나성은 행정중심복합도시인 세종시의 중심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1번 국도 변에 있다. 조치원에서 1번 국도를 따라 대전 방면으로 가다보면 금강이 나온다. 금남대교 건너기 직전 금강변 왼쪽 편에 오래된 소나무 숲속에 독락정이 있고, 뒤로 낮은 구릉이 하나 있다. 이 구릉 전체가 바로 나성이다.    전체 표제 사진   나성의 서편에는 세종시 첫마을인 연기군 남면 나성리 나리재마을이 있어 마을 뒤편의 동쪽 재로 나성에 진입했다.  동쪽 재 아래 좌측길로 진입하면 오래된 미륵불이 답사.. 더보기
대전 적오산성 : 백제 소비포현의 치소 표지사진 - 대전 적오산 전경  에 따르면, 우술군에는 속현이 둘이 있다고 하였다. 노사지현과 소비포현이 그것이다. 우술군은 지금의 대전시 대덕구 회덕 일대였다. 치소는 회덕향교 뒷산의 우술성이라고 한다. 노사지현은 지금의 대전시 유성 일대로 치소는 월평동 산성으로 추정한다. 나머지 소비포현의 치소는 어디일까? 향토사학자들은 대전 안산동 산성을 남부여의 소비포현성이며, 고려때 덕진현성으로 주장하기도 한다. 과연 그러한가? 덕진산성으로 비정되는 또 하나의 산성이 있다. 바로 대전시 유성구 덕진동 적오산성이다. 적오산성은 북대전IC 요금소를 빠져 나와 처음 나오는 신호대 뒷산에 있다. 남부여에서는 소비포현이라 불렀고, 신라때에는 적조현이라 불렀고, 고려때 덕진현이라 불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덕진현은 공.. 더보기
금산 대암리산성 : 남부여와 가야의 경계성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