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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추론/탄현은 어디인가?

황산벌 전투 루트를 따라서 : 김유신의 3도 중 하나 더보기
대전 삼정동산성 : 탄현을 넘어오던 신라군을 감시하던 산성인가? 옥천군 군북면에서 대전 동구 대청동 가는 4번 국도 상 고개가 마달령이다. 이곳 마달령은 백제 탄현으로 비정되는 고개 중의 하나다. 마달령을 지나 대전 방면으로 들어오면 판암IC 부근에 당시 신라군을 감시하던 삼정동 산성이 위치하고 있다. 12년만에 다시 삼정동산성을 둘러보았다. 옥천군 군북면에서 대전 동구 대청동 가는 4번 국도 상 고개가 마달령이다. 이곳 마달령은 백제 탄현으로 비정되는 고개 중의 하나다. 마달령을 지나 대전 방면으로 들어오면 판암IC 부근에 당시 신라군을 감시하던 삼정동 산성이 위치하고 있다. 삼정동산성 가는 길은 많다. 필자는 당시 대전에 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서툴러 동신고등학교 옆길로 올라갔다. 옥천에서 대전가는 4번 국도가 삼정동 산성 동쪽 아래로 지나간다. 삼정동 산성은 이.. 더보기
논산 웅치산성(곰티산성) : 660년 신라와 백제간의 최후 결전지 <2016년 12월 31일> <표제사진 - 웅치산성 오르기 전 너럭바위에서 서남방으로 바라본 논산시 양촌면 산직리계곡> 2016년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산성 답사를 떠나고 싶었다. 멀리는 못가고 평상시 답사하고픈 마음이 꿀떡 같았던 논산 웅치산성을 올랐다. 약 2시간의 답사는 대만족이.. 더보기
완주 산북리산성(탄현산성) : 남부여의 탄현인가? 대가야-남부여 루트는 육십령을 넘어면 장계(침령산성)-와정토성(진안 용담면)-성남리산성(진안 용담면)-옥거리산성(진안 용담면)-와룡리산성(진안 용담면)-운봉리산성(진안 주천면)-대촌고개(용덕리산성)-백령산성-저구리산성(완주 운주면)-산북리산성(일명 탄현산성)-용계리산성(완주 운주면)-연산-사비성에 이른다. 이 루트의 관문이라 할 수 있는 백령성을 넘어면 서쪽으로 저구리산성과 산북리산성이 나오고, 다음으로 용계리산성이 나온다. 오늘은 산북리산성과 용계리산성을 답사하였다. 산북리산성은 행정명에 따라 '고중리산성'이라고도 하나, 실제는 산북리에 속한다. 또 산북리산성은 일명 '탄현산성'이라고도 한다. 산북리산성은 전북 완주군 운주면 산복리 숯고개를 지키는 보루성이었다. 숯고개는 한자로 탄현(炭峴) 혹은 탄치(.. 더보기
대전 구봉산 : 황산벌 가는 대전 남부 루트를 가른 산 <2012년 3월 31일> <표제사진 - 구봉산에서 바라본 노루벌과 갑천> 신라군이 옥천 관산성에서 힘들게 식장산의 산성과 보루들을 넘어온다고 해도 사비의 동쪽 벌판인 황산벌까지 오려면 다시 대전 남부 루트의 수 많은 관문(산성)들을 거쳐야 한다. 첫번째 관문 : 보문산(보문산성).. 더보기
대전 계현산성, 남부여의 탄현인가? <2010년 1월 26일> 금남정맥에서 동북으로 뻗어 대전의 동벽과 북벽을 이루는 산줄기가 바로 식장지맥이다. 많은 학자들은 대전 동벽을 이루는 식장지맥 상의 주요 고개 중에서 하나가 탄현이 아닐까 비정해 왔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계현이다. 순우리말로 '닭재'인바, 과연 계현이 <삼국사기>.. 더보기
신라군의 황산벌 진격로인 3도를 따라서(3) : 웅치로(덕목재로) <2010년 7월 18일> 신라군이 금돌성에서 출발했다면, 신라 지역의 소라현(지금의 황간면)~길동군(지금의 영동읍)~조비천현(지금의 양산면)을 거쳐 남부여 진잉을군(지금의 금산읍)~진동현(지금의 금산 진산면)을 통과해 벌곡천 상류로 들어왔을 수도 있다. 이 경우 신라군은 지리적으로 .. 더보기
신라군의 황산벌 진격로인 3도를 따라서(2) : 황령재로 <2010년 7월 18일> 필자는 대전 동부의 금남지맥상의 주요 3고개가 3도의 방향이었다고 추정한다. 3고개 중 하나는 계룡시 양정고개로서 지금도 1번(남북국도)과 4번 국도(동서국도)가 합류하여 지나가는 간선도로이다. 다른 하나는 황령재로서 논산 벌곡면 소재지인 한삼천리에서 황산.. 더보기
신라군의 황산벌 진격로인 3도를 따라서(1) : 탄현(양정고개)로 <2010년 7월 18일> 오늘은 신라군의 황산벌 진격로를 따라가 보기로 작정하였다. 출발지를 어디로 해야 할까? 출발지가 보은의 삼년산성이라면 아무래도 신라군은 청성면의 저점산성을 거쳐 옥천 관산성~마달령(내지 자모실고개)~대전 동구 삼정동산성~대전 서구 가수원~흑석동산성까지 이르렀을 .. 더보기
탄현에 대한 고찰 : 남부여 최후의 대회전에 대한 보고서 1. 탄현에 대한 사서의 기록 당나라 소정방의 13만 군대는 수로, 신라 김유신의 5만 군대는 육로를 통해 사비성으로 곧장 진격하였다. 남부여 의자왕은 이 소식을 듣고 군신들을 모아 공격과 수비 중에 어느 것이 마땅한지를 물었다. 이에 대해 <삼국사기 백제본기 의자왕 20년조> 기사는 다음과 같.. 더보기
옥천 자모실고개 남부여의 최후를 기사는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당나라 소정방의 13만 군대는 수로, 신라 김유신의 5만 군대는 육로를 통해 사비성으로 곧장 진격하였다. 남부여 의자왕은 이 소식을 듣고 군신들을 모아 공격과 수비 중에 어느 것이 마땅한지를 물으니, 좌평 의직(義直)이 나서서 말하기를 '당나라 군사는 멀리서 바다를 건너 왔습니다. 그들은 물에 익숙하지 못하므로 배를 오래 탄 탓에 분명 피곤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상륙하여 사기가 회복되지 못했을 때 급습하면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신라 사람들은 큰 나라의 도움을 믿기 때문에 우리를 경시하는 마음이 있을 것이니 만일 당나라 사람들이 불리해지는 것을 보면 반드시 주저하고 두려워서 감히 빨리 진격해 오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선 당나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