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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기행(경상도)/상주,군위

상주 성산산성(견훤성) : 후백제 견훤의 꿈이 서린 곳

<2010년 3월 14일>

 

 

상주 중화지역 방문 보너스로 성산산성과 청계사를 가기로 마음 먹었다. 49번 국지도를 타고 화북면 방향으로 가다가 화서면 하송리 송내마을 부근에서 오른쪽 계곡으로 가면 청계사가 나온다는 이정표를 보고 따라 들어가면 된다. 성산산성에 대해서는 상주시 홈페이지 글을 인용한다.

 

성산산성은 화서면 하송리와 화남면 동관리에 위치한 고성으로, 일명 견훤성 또는 대궐터라고도 불린다. 하송리와 동관리 사이, 해발 873m 고지의 남쪽에 있는 해발 710m 고지에서 746.3m 고지로 이어지는 능선과 그 서쪽 사면에 축성된 둘레 3340m의 토석성이다.  해발 873m 고지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는 능선에 이 성의 동쪽 성벽이 축성되었고, 746.3m 고지에서 서쪽으로 뻗은 능선의 북쪽을 안 대궐터, 그  남측을 바깥 대궐터라고 부른다. 「상산지」<여지> 편<성지>조에는 성산 산성에 대해, '주(州)의 서쪽 40리에 있다. 옛날 청계산 위에 창사(倉舍)가 있었는데 1727년(영조3)에 불에 타서 1730년 청계사 옆에다 옮겨 세우고 수구(水口)에 성첩을 쌓았다. 성은 화산과 속리산 사이 지세가 험준한 곳에 있는데 성첩이 완전하고 견고하다. 동쪽에 은성창(銀城倉)(은척)이 있고 서쪽에는 화령창과 중모창이 있으니 가히 조령과 추풍령 양쪽 길의 관방이다. 일명 견훤성이라고 한다. 둘레는 5350보인데 중화(中化)5개면의 인부가 동원되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 성의 축조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향사(鄕史)에서는 견훤성으로 지목하여 왔고, 바깥 대궐터 곳곳에서는 지금도 삼국 시대의 회청색 경질토기 조각과 고려 시대의 자기 조각, 조선 시대의 기와 조각이 발견되고 있어 고성이란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현 극락정사가 않은 자리는 조선 시대의 산성창(山城倉)이 있었던 자리요, 바깥 대궐터에서 동남쪽 약 1.5km 떨어진 산 아래의 청계마을 마을 뒤에는 견훤을 제사 지내는 신당이 있는데 위패에는 ‘후백제대왕신위’(後百濟大王神位)라 썼으며 또 신당 위 서북으로는 옛 청계사의 터가 밭으로 변해 있다. <상주시 홈페이지 인용>

 

 

 

계곡을 막아선 고성벽

 

 

성산산성의 규모가 짐작된다. 견훤의 궁궐터로 전해진다. 이 계곡의 마을 이름이 대궐터라고 불린다.

 

건너편 계곡의 고 성벽

 

 

산 정상의 자연 암벽과 조화되게 잘 축조해 놓았다. 계곡물에 떠내려가지 않고 천년 넘게 버티고 서 있는게 다행이다.

 

 

계곡과 산성

 

 

청계산

 

 

청계사 안내판

 

 

청계산

 

 

청계사 주변의 기암괴석. 대궐터 계곡은 자연 방어선이 펼쳐져 있어 계곡 입구만 차단하면 완변한 포곡식 산성이 된다.

 

 

 

 

 

청계사 대웅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