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추론/남부여부흥전쟁

부여 당산성 : 영혼의 군대가 지키는 애처로운 보루성! 그들을 진혼하라!

<2011년 2월 6일>

 

 

표지사진 - 은산 별신당

 

 사비도성에서 서쪽으로 금강을 도하하면 규암면이 나온다. 규암면에서 29번 국도를 타고 북으로 가면 고대 남부여 고량부리현의 치소가 있던 청양의 우산성이 나온다. 사비도성에서 청양의 우산성을 거쳐야 남부여 부흥군의 거점인 내포로 들어갈 수 있다. 내포에는 오서산과 봉수산을 배경으로 임존성이 굳건히 버티고 있었다. 지금의 29번 국도는 사비도성에서 내포로 들어가는 고대 교통로와 거의 정확히 일치한다. 규암면에서 지금의 은산천을 거슬러 북으로 가다보면 나발티가 나온다. 이 고개의 남부여 부흥군 경계병이 우산성으로 들어오는 나당군을 보고 나발을 불었다고 하여 나발티라고 하였을까? 아무튼 나발티를 넘어면 지천의 지류인 온직천이 나온다. 온직천을 따라 북으로 내려가면 지천 본류에 이르고, 이 지천을 따라 다시 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고량부리현의 치소인 우산성이 나온다. 우산성을 통과하여야만 내포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온다.

 부여 당산성은 은산천 동쪽 절벽에 위치하며 나당군의 진로를 가로막고 있었다. 해발 60m에 불과한 작은 구릉에 불과하지만 그 배후에는 칠갑산을 배경으로 남부여 두릉윤성으로도 추정되는 적곡리산성이 버티고 있어 만만한 형국이 아니었다. 더구나 지근거리에는 증산성도 부흥군에게 가담하고 있어 나당군 입장에서는 여간 골칫거리가 아니었다. 따라서 나당군은 내포의 임존성을 공격하려면 먼저 당산성, 증산성, 적곡리산성을 모두 혁파하여야만 배후가 끊길 위험을 차단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칠갑산 주변의 부흥군 세력을 타절시키지 않고는 우산성을 거쳐 내포의 임존성을 공격한다는 것은 하세월이 될 것이다.

 고대 사서에는 나당군의 공격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문무왕 3년(663) 5월 백제의 옛 장수인 복신(福信)과 승려 도침(道琛)이 옛 왕자인 부여풍(扶餘豊)을 맞아 세우고, 웅진성(熊津城)에서 머무르고 있었던 낭장(郞將) 유인원(劉仁願)을 포위하였다. 당나라 황제가 인궤(仁軌)에게 검교(檢校) 대방주자사(帶方州刺使)로 삼은 조칙(詔勅)을 내려 이전의 도독(都督)을 맡았던 왕문도(王文度)의 무리와 우리 군사를 이끌고 백제의 군영으로 향하게 하였다. 싸울 때마다 진영을 허물어 향하는 곳마다 앞을 가로막음이 없었다. 복신 등이 유인원의 포위를 풀고 물러나 임존성(任存城)을 지켰다. 이미 복신이 도침을 죽이고 그 무리를 아울렀으며, 배반하고 도망한 자들도 불러서 세력이 자못 늘어났다. 인궤는 유인원과 함께 합쳐서 잠시 갑옷을 풀고 군사를 쉬게 하면서 바로 군사의 증원을 요청하였다. 조칙을 우위위장군(右威衛將軍) 손인사(孫仁師)에게 보내 병사 40만을 거느리고 덕물도(德物島)에 이르렀다가 웅진부성(熊津府城)으로 나아가도록 하였다. 왕은 김유신(金庾信) 등 28명의 장군을 이끌고 그들과 함께하여 두릉윤성(豆陵尹城)과 주류성(周留城) 등 여러 성을 쳐서 모두 항복시켰다. 부여풍은 몸을 빼어 달아나고 왕자 충승(忠勝)과 충지(忠志) 등은 그 무리를 이끌고 와서 항복하였는데, 홀로 지수신(遲受信)만이 임존성을 차지하고서 항복하지 않았다. 겨울 10월 21일부터 그들을 공격하였지만 이기지 못하였다. 11월 4일에 이르러 군사를 돌렸는데, 설리정(舌利停)에 이르러서 전투의 공을 따져 상을 차별하여 주고 크게 죄수를 풀어주었다. 의복을 만들어 남아 있는 당 나라 군사들에게 주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문무왕 3년 조>


 도침을 죽인 복신은 663년 5월 웅진성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단행한다. 당시 웅진성에는 낭장 유인원이 이끄는 당나라군이 주둔하고 있었다. 나당의 구원병이 웅진성으로 치닫자 그제서야 복신은 포위를 풀고 임존성으로 퇴각하였다. 이때 나당군은 부흥군의 근거지를 토벌할 결심을 하고 군사 총 동원령을 내린다. 대방주자사 유인궤는 군사의 증원을 요청하였고, 당 고종은 우위위장군 손인사가 이끄는 40만을 덕물도로 파견하였다. 기록에는 웅진성으로 나아간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덕물도에서 지금의 남양만~아산만~삽교천과 무한천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내포를 직접 공격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문무왕은 김유신 등 28명의 장군들과 함께 두릉윤성과 주류성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이는 나당군이 내포의 북과 남에서 양동작전을 구사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로써 남부여 부흥군도 최후를 맞이한다. 하지만 오서산과 봉수산 즉 임존성 일대의 남부여 부흥군을 완전히 토벌하지는 못한 것으로 <삼국사기>는 기록하고 있다. 지수신이 지키는 임존성을 재차 공격하였지만 이기지 못하고 설리정으로 돌아와 전투를 마무리한다.

 두릉윤성 함락 때 이곳 당산성도 신라군에 의해 함락되었을 것이다. 이때 숨진 부흥군들의 넋을 달래기 위해 부여 은산면에서는 별신당을 짓고 별신제를 지낸 것으로 사료된다. 그런데 별신당에는 복신과 도침을 나란히 모셔놓고 제를 지낸다. 복신이 도침을 암살한 것을 고려하면, 사당에 영정을 나란히 걸어놓은 것은 이 무슨 아이러니란 말인가? 

 

 

 

 

은산 별신제 전수회관

 

은산 별신당

 

 

 

 

 

은산 별신제 유래비

 

두릉윤성 일대에서 벌어진 부흥군과 나당군의 마지막 전쟁에 복신과 도침은 참가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이미 암살되어 부흥군을 이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은산 별신제의 유래에서 확인되 듯 남부여 백성들은 복신과 도침을 부흥군의 진정한 지도자로 인식했음을 알 수 있다.

 

 

 

은산천. 은산천을 따라 북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길이 부흥군의 거점인 내포로 들어가는 길이다. 은산천변 동쪽에 위치한 당산성은 작은 구릉에 위치하나, 입지적으로 부흥군의 전술적 요지이다. 만약 칠갑산 서록에 위치한 적곡리산성이 <삼국사기>에 나오는 두릉윤성이 맞다면, 이곳 당산성과 증산성은 두릉윤성의 발 같은 곳이라 할 수 있다. 발이 없으면 두릉윤성 또한 온건히 버티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청양읍의 우산성과 정산면의 계봉산성은 두릉윤성의 팔과 같은 곳으로 비유할 수 있겠다. 따라서 사지 중 어느 한곳이라도 절단(함락)된다면, 두릉윤성의  힘은 급격히 약화될 것이다.

 

별신당 우측으로 당산성 오르는 길이 있다.

 

안내문. 당산성은 이중산성으로도 불린다.

 

당산성 오르는 길

 

외성벽(우측)

 

외성벽(좌측). 지표조사 보고서가 없어 추정할 뿐이다.

 

당산성 오르는 길. 이 언덕도 외성으로 사료된다. 하지만 안내문에는 외성의 둘레가 250m로 기록되어 있어 의문이 든다.

 

부여군 은산면 소재지 전경

 

동북방으로 증산성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인다.

 

내성 오르는 길

 

내성에 올라서면 또 하나의 언덕이 나온다. 필자는 장대지로 추정한다.

 

내성 내부(좌측)

 

내성 내부(우측)

 

내성 내부에는 호를 판 흔적이 있다. 저수터인가?

 

 

장대지로 사료되는 언덕

 

서쪽의 내성벽. 그 아래가 절벽으로 은산천변에 위치한다.

 

서벽 아래 은산천

 

내성벽 아래 산책로로 이 밑에 별신당이 있다.

 

은산면 소재지 일대와 은산천

 

내성벽 아래

 

다시 내성으로 진입한다. 내성 남벽.

 

장대지로 사료되는 언덕을 올라본다.

 

장대지에서 아래 내성 내부를 바라본다. 장대지까지 고려하면 전체적으로 당산성은 삼단으로 이루어진 산성이다.

 

서벽 아래로 골이 나있어 비가 오면 은산천으로 물이 폭포를 이루며 떨어졌을 것이다.

 

다시 내성을 나와 증산성을 바라보았다.

 

내성벽(동벽)

 

내성벽(동벽). 외성은 밭으로 개간되어 있거나 묘지터로 사용되고 있다.

 

절벽 구간으로 하산하였다. 이 길로는 내려오지 않는 것이 좋겠다.

 

은산천

 

별신당

 

당산성은 서쪽이 자연 절벽으로 이루어져 따로 축성할 필요가 없다. 그 아래로 자연해자인 은산천이 흘러 동벽 부근만 튼튼히 하면 방어력이 제법 높은 산성이 될 것이다.

 

 

 

 

 

별신당 주변의 고목들을 바라 보고 있자니 문득 떠오르는 그림이 하나 있다. 바로 이름없이 스러져간 남부여 부흥군의 영혼 같은 모습이다. 일그러지고 고통에 찬 얼굴을 닮은 듯하다. 필자는 염을 올린다. 부디 극락왕생하시길...

 

 

 

 

 

당산성 서벽(절벽)

 

은산천. 이 길을 따라 북으로 올라가면 나발티가 나온다. 나발티를 넘어면 청양 우산성이 나와 가로 막는다. 우산성을 통과해야만 부흥군의 거점인 내포의 임존성에 이른다.

 

은산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