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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기행(경상도)

의성 금성산성(2) 소문국에 대한 전설같은 이야기이다. 정상 도착 직전 산정은 평탄지이다. 비봉산 자락이 보인다. 좌측이 비봉산이다. 금성산 정상 표지석 정상의 평탄지 휴화산인 금성산 산정. 시간 잘 맞추어 등정해야지. 재수없으면 터져!! ㅎㅎㅎ 500여평이 죄다 명당혈이라네. 부자되고픈 사람! 줄을 서시요! 전망바위 전망대 전망대에서 금성면 소재지를 바라보다. 소문국은 경북 중부지역의 중심하천인 위천의 지류인 쌍계천이 만든 긴 계곡의 충적지에서 신라 김씨 왕조의 기틀을 마련했을 것이다. 전망대에서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정상의 삼각점 삼각점은 안내문의 설명처럼 모든 측량의 기준점이 되는 국가중요시설물이므로 파손 등 효용을 해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비봉산 정상에서도 금복주 유리 조각 발견. 천년이 지나도 .. 더보기
의성 금성산성(1) 금성산은 사화산이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화산이라는 사실이다. 소문국은 죽은 신라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신라라는 사실이다. 필자는 전설같은 이야기를 찾아 금성산을 오른다. 가는 도중 보이는 금성산 수정사 계곡 우측의 비봉산 줄기 좌측의 금성산 우측의 비봉산 줄기 수정사 계곡은 좌측의 금성산 줄기와 우측의 비봉산 줄기 사이 긴 골짜기이다. 금성산과 그 산줄기 주차장에서 바라 본 비봉산과 그 산줄기 등산 안내도 오후 5시에 산행을 시작하는 관계로 제1코스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금성산과 비봉산의 전설. 비봉산은 남쪽에서 바라보면 옥녀양발형의 형세라고 한다. 금성산 산행 초입 시와 함께하는 산행길 10여분 오르자 바로 금성산성이 나타난다. 산 8부 능선까지 산성이 이어져 있다. 산 아래로 향하고 있는.. 더보기
하동 고성산성 : 가야 굴촌의 치소이자 역사의 뒤안길로 가는 은자의 비성 토요일(26일) 월드컵 16강전(우리나라:우루과이) 보자고 해 진주로 갔다. 2:1로 패했지만 만족한다. 다음날 오전 식사를 마치고 대전 가는 길에 하동 고성산성을 둘러보기로 작정했다. 오늘날 진주는 신라 신문왕 5년(685년)에 비로소 거타주로부터 분리되어 청주(菁州)로 불리다가 경덕왕(재위기간 681~691년) 대에 이르러 강주로 개명했다. 고려대에 이르러 오늘날과 같은 진주라는 지명을 갖게 되었다. 신문왕 대 청주는 영현이 둘이었다. 하나가 가주화현으로 오늘날 남강의 지류인 양천강 중상류의 합천 삼가면 일대로 비정되며, 다른 하나는 굴촌현(정덕본(正德本)에는 ‘굴재현(屈材縣)’으로 되어있으나, 주자본에는 ‘굴촌현(屈村縣)’으로 표기되어 있음)으로 역시 남강의 지류로 지리산에서 발원한 덕천강 하류에 .. 더보기
거창 거열산성(2) 더보기
거창 거열산성(1) 더보기
예천 원산성(2) : 신라군의 대 고구려 전진기지 예천 원산성(1)에서 계속 제2전망대(용포대) 가는 길 제2전망대 용포대. 용포대 장악 후 점심을 즐기고 있는 산악회 회원들. 아! 하늘도깨비도 배고프다! 회룡대보다 이곳 용포대의 전망이 더 좋다. 자~ 감상시간. 내성천이 멋지게 회룡포를 휘감아돈다. 회룡포나 하회의 '회'자는 '휘감아돈다'는 의미의 한자이다. 큰강이 또아리를 튼 형국이므로 용자는 당연한 것이고. 내성천이 동쪽에서 힘차게 밀려오는 모양이다. 동녁 끝의 산은 안동시와 예천군의 경계에 있는 보문산(641.7m)과 학가산(870m) 일대로 보인다. 고구려군이 백두대간을 넘어 신라를 침략한다면 내성천이 자연해자가 되고 백두대간 옥돌봉(1244m) 부근에서 분기한 문수지맥이 자연 산성이 된다. 원산성은 문수지맥의 끝자락으로 삼강이 합강하는 묘한 .. 더보기
예천 원산성(1) : 신라군의 대 고구려 전진기지 에 따르면, 수주군에는 속현이 넷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난산현인바, 오늘날 문경시 산양면, 산북면과 예천군 용궁면 일대로 추정한다. 신라에서는 수주군이 북쪽 국경 근방으로서 백두대간을 사이에 두고 고구려와 대치하고 있었다. 고구려에서 남하한 내물마립간 세력이 낙동강 중상류 지역을 장악하고, 동해 방면에서는 형산강 유역의 서라벌 지역까지 손아귀에 넣는다. 그러나 고구려 군벌 세력 출신이던 내물마립간 이후 고구려 군사 원조에 힘입어 낙동강 중상류 지역에서 왕조를 유지하던 신라는 전통적인 종속관계를 정리하고 싶어 했다. 그때가 바로 눌지마립간 34년(450년) 신라의 하슬라 성주 삼직이 고구려 변경 지역 성주를 살해한 사건이후부터다. 450년 전후에도 고구려 남쪽 변경은 백두대간을 넘어 오늘날 경북 북부 지.. 더보기
함양 사근산성 : 대가야 교통의 결절지를 보호하라 고대 산성은 누구에 의해 축조되었는냐에 따라 계통적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그러나 필자의 분류법은 조금 다르다. 초축(처음 쌓음)과 수축(고쳐 쌓음)의 개념에 따라 분류하되, 대개 수축은 정복의 결과 이루어 진다. 함양 사근산성은 초축은 대가야가, 수축은 남부여나 신라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리고 고려 우왕 6년(1380년) 왜의 침입에 의해 허물어진 것을 조선 성종대에 전략적 가치가 인정되어 수축하였고 임진왜란을 거쳐 오늘에 이른 것이다. 지금 같은 산성의 규모는 조선 성종대나 임란후에 이르러 결정되었을 것이나 대가야부터 산성을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종대의 전략적 가치란 왜가 남해를 거쳐 진주를 지나 남강 상류를 거슬러 이곳 사근산성에서 팔량치와 여원재를 넘어 남원으로 침입할 수 있고 아니면 백두대.. 더보기
함양 방지산성 : 가야의 백두대간 루트 육십령을 사수하라 아주 소박하고 아담한 기념물이다. 가치 무한대인 예술품 하나를 감상하고 난 느낌이다. 방지산성은 말 그래도 꽃다운 연못같은 산성이다. 한국의 산성 중 포곡식 산성 전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산성이 몇 개나 될까? 방지산성처럼 깔끔하고 아름다운 시골처녀 느낌의 기념물은 처음인 것 같다. 산성은 백두대간 육십령 아래 함양군 서상면 소재지 서편의 구릉에 위치하고 있다. 가야나 남부여 시절 중시되었을 산성이었으며, 신라의 삼한통일 이후 그 중요성은 어느 정도 감소하였고, 신라의 삼한통일 이후 이 지역의 통치자인 성주가 안빈낙도하며 세월을 낚았을 법한 산성이다. 야심가가 머무를만한 곳도 아니고 설혹 야심가가 정치적으로 좌절하여 이 산성의 주인이 되었더라도 정치 무대는 곧 잊을 법한 곳이다. 함양 사근산성 답사.. 더보기
상주 성산산성(견훤성) : 후백제 견훤의 꿈이 서린 곳 상주 중화지역 방문 보너스로 성산산성과 청계사를 가기로 마음 먹었다. 49번 국지도를 타고 화북면 방향으로 가다가 화서면 하송리 송내마을 부근에서 오른쪽 계곡으로 가면 청계사가 나온다는 이정표를 보고 따라 들어가면 된다. 성산산성에 대해서는 상주시 홈페이지 글을 인용한다. 성산산성은 화서면 하송리와 화남면 동관리에 위치한 고성으로, 일명 견훤성 또는 대궐터라고도 불린다. 하송리와 동관리 사이, 해발 873m 고지의 남쪽에 있는 해발 710m 고지에서 746.3m 고지로 이어지는 능선과 그 서쪽 사면에 축성된 둘레 3340m의 토석성이다.  해발 873m 고지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는 능선에 이 성의 동쪽 성벽이 축성되었고, 746.3m 고지에서 서쪽으로 뻗은 능선의 북쪽을 안 대궐터, 그  남측을 바깥 대궐.. 더보기
고령 의봉산성 : 대가야 낙동강 방어선 최고 사령부 기지 고령군 성산면 상용리와 운수면 신간리 경계에 위치한 해발 551m의 의봉산 정상에는 옛날 대가야 낙동강 방어선 최고 사령부가 위치한 산성이 남아 있다. 의봉산 정상에 서면 신라의 최전방 기지인 달구벌성(현재 달성공원)을 중심으로 좌우로 펼쳐진 신라군의 참호들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낙동강을 대가야 동방의 천연 해자로 삼고 의봉산성을 중심으로 좌우로 포진한 대가야 고성들이 지금도 신라군과 한판 큰 전투를 벌일듯 한눈에 다가온다. 88올림픽고속도로 동고령 나들목에서 나와 성산면 소재지에 들어섰다. 의봉산성에 최접근하기 위해서는 일월정으로 가야한다. 일월정은 성산면 소재지에서 우회전하여 고탄리로 들어가야 한다. 도광사 가는 길로 운수면 넘어가는 담밑재 가기 직전에서 우회전하면 일월정에 도착할 수 있다. 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