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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추론

안성 죽주산성 : 신라가 고구려의 십자 결절지를 장악하다 <2011년 2월 20일> 표지사진 - 포루와 나무 진흥왕 11년(550) 봄 정월에 백제가 고구려의 도살성(道薩城)을 빼앗았다. 3월에 고구려가 백제의 금현성(金峴城)을 함락시켰다. 왕은 두 나라의 군사가 피로한 틈을 타서 이찬(伊湌) 이사부(異斯夫)에게 명하여 군사를 내어 공격하여 두 성을 빼앗아 증축하고.. 더보기
임실 성미산성(2) : <삼국사기>의 각산성인가? &lt;2011년 2월 8일&gt; ~ 임실 성미산성(1)에서 계속 ~ 표지사진 - 성미산성의 동벽 임실 성미산성에 대한 고고학적 결과 전북문화재연구원은 2007년 3월 2일부터 임실 성미산성에 대한 발굴 조사를 시작하여 7월 5일 현장에서 현장설명회를 개최하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A. 전북문화재연.. 더보기
임실 성미산성(1) : <삼국사기>의 각산성인가? &lt;2011년 2월 13일&gt; 표지사진 - 임실 성미산성 동벽 * 학계에서 각산성을 임실 성미산성으로 비정하고 있다. 필자는 바로 이전의 &lt;청양 두솔성&gt; 편에서 무왕 6년(605년)에 축조한 각산성을 청양 두솔성으로 추정하였다. 이러한 의문점을 해결하기 위해 임실 성미산성을 답사하였다. 오늘 글은 602년.. 더보기
청양 두솔성(豆率城) : 법왕이 기우제를 지내며 사비도성을 예비하다 &lt;2011년 2월 7일&gt; 표지사진 - 칠갑산 정상에서 바라 본 우측의 형제봉. 두솔성은 적곡리 절골 계곡을 감싼 포곡식 산성이다. 이곳 칠갑산 정상과 형제봉 능선들이 모두 두솔성의 경계이다. 형제봉에서 한 능선이 절골 계곡아래로 향하며 산성을 형성한다. 법왕 원년(599) 겨울 12월에 살생을 금하고, 민.. 더보기
보은 관기리산성 : <삼국사기>의 모로성인가? &lt;2011년 2월 8일&gt; &lt;표지사진 - 보은 관기리산성 전경&gt; 자비마립간 13년(470) 신라군은 사벌주(지금의 경북 상주)에서 백두대간 화령을 넘어 보은 삼년산성을 축조하였다. 신라가 삼년산성을 축조한 것은 장차 반도에서 벌어질 사국간의 대회전을 예비하는 기념물로 평가할 수 있다. 그.. 더보기
부여 당산성 : 영혼의 군대가 지키는 애처로운 보루성! 그들을 진혼하라! &lt;2011년 2월 6일&gt; 표지사진 - 은산 별신당 사비도성에서 서쪽으로 금강을 도하하면 규암면이 나온다. 규암면에서 29번 국도를 타고 북으로 가면 고대 남부여 고량부리현의 치소가 있던 청양의 우산성이 나온다. 사비도성에서 청양의 우산성을 거쳐야 남부여 부흥군의 거점인 내포로 들어갈 수 있다. .. 더보기
보은 삼년산성(2) : 신라가 백두대간을 넘어 삼한통일의 교두보를 마련하다 &lt;2011년 1월 16일&gt; ~ 보은 삼년산성(1)에서 계속 ~ 표지사진 - 삼년산성 남동벽 구간 산성 동남방. 보은군 마로면 방향으로 백두대간 화령을 통해 사벌주(상주)로 가는 길이다. 동벽 구간 세월의 무게에 철옹성 삼년산성도 구간 곳곳이 허물어지고 있다. 산성의 동남방 동문 부근 동문지 .. 더보기
보은 삼년산성(1) : 신라가 백두대간을 넘어 삼한통일의 교두보를 마련하다 &lt;2011년 1월 16일&gt; 표지사진 - 삼년산성 서벽 전경 매우 추운 겨울 오후였다.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날씨라 다른 산성 답사는 미루고 산보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삼년산성을 향했다. 그런데 왠걸! 휑한 산성은 북풍을 그대로 맞을 수 밖에 없었다. 차라리 숲속 산책길이라면 바람 정도는 피할 수 있었.. 더보기
관산성 전쟁 (3) : 옥천 삼성산성~용봉산보루~동평산성~마성산성 ~ 관산성 전쟁 (2)에서 계속~ 표지사진 - 사진 중앙 뒤 능선이 고리산성(남부여군 주둔), 앞능선 좌측이 용봉산 보루, 우측이 관산성(신라군 주둔). 서대산 옥천의 동벽을 이루는 도덕봉에서 마성산까지 이어지는 장용지맥. 그 뒤로 옥천군 동이면 지양리 동쪽의 지맥이 금강을 가로막고 있다. 필자가 답사에 실패한 지양리산성이 있는 곳이다. 지양리산성은 보은의 삼년산성에서 보정천을 따라 내려오는 최단거리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신라군이 옥천으로 진출할 때 이 지양리산성을 넘어 일시에 습격하여 관산성을 장악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길은 최단거리이긴 하지만 금강이 길을 단절시키고 우람한 지맥이 가로막고 있어 통상적인 루트로는 부적합하다. 하지만 전격적으로 기습하기에는 좋은 루트이다. 지양리산성을 쌓은 것을 .. 더보기
관산성 전쟁 (2) : 옥천 삼성산성~용봉산보루~동평산성~마성산성 ~ 관산성 전쟁 (1)에서 계속 ~ 옥천 시내. 사진의 맨 좌측 아래 아파트가 산행을 시작한 현대아파트. 아파트 뒤로 보이는 구릉이 삼양리토성이다. 좌측 높은 산이 옥천의 진산 마성산으로 정지용과 육영수 생가가 있는 옥천 구읍이다. 옥천군은 신라 때 고시산군이다가 이후 관성군으로 바뀌었다. 동쪽 서쪽. 앞 나무를 경계로 우측이 고리산, 좌측이 노고성. 동평산성과 마성산성 용봉 오르다가 바라 본 서편의 식장산 좌측의 고리산과 북쪽 능선 끝의 삼성산성. 좌측의 노고성과 우측의 고리산성. 서화천이 휘돌아가는 구천의 구진베루 절벽. 북쪽 능선 끝 자락의 삼성산성 서쪽의 옥천읍 용봉 정상 용봉산 보루에서 바라 본 고리산성 용봉산성 안내석 옥천 시내 구진베루와 고리산 용봉을 내려가며 바라 본 석축의 흔적 동평산성 .. 더보기
관산성 전쟁 (1) : 옥천 삼성산성~용봉산보루~동평산성~마성산성 표지사진 - 우측 우람한 산이 고리산성이고, 맞은편 좌측 산이 노고산성이다. 관산성 전쟁 당시 남부여군은 이 일대에 포진하며 신라군을 위협하였다. 삼성산 등산 안내도. 옥천읍 삼양리 현대아파트 뒤편 산행길이다. 간만에 관산성 일대를 산행한다. 옥천읍 전경 정자 옥천읍 시내가 시원하게 조망된다. 동북방. 동남방. 4번 국도가 영동읍으로 향하고 있다. 4번 국도는 고대에도 나제간 주요 동서 교통로와 거의 일치할 것으로 사료된다. 신라군이 이곳 옥천 일대로 침공한 주요 루트로 보인다. 남쪽 4번 국도가 직선으로 향하는 사진 중앙의 산이 옥천읍, 동이면, 이원면의 경계가 되는 도덕봉(407m)이다. 도덕봉 남서 아래 고개가 솔치인데, 고대에는 이 길로 해서 영동으로 갔다. 그런데 솔치 주변에 도적떼가 극성을 부.. 더보기
관산성 전쟁에 대하여 관산성 전쟁 1) 관산성 전쟁에 대한 반도와 열도의 현존 기록 진흥왕 15년(554) A. 백제의 왕인 명농(明襛)이 가량(加良)과 함께 와서 관산성(管山城)을 공격하였다. 군주(軍主)인 각간(角干) 우덕(于德)과 이찬(伊湌) 탐지(耽知) 등이 맞서 싸웠으나 전세가 불리하였다. B. 신주(新州)의 군주인 김무력(金武力)이 주(州)의 군사를 이끌고 나아가 교전하였는데, 비장(裨將)인 삼년산군(三年山郡)의 고간(高干) 도도(都刀)가 급히 쳐서 백제왕을 죽였다. C. 이에 모든 군사가 승리의 기세를 타고 크게 이겨서 좌평(佐平) 네 명과 군사 2만 9천 6백 명의 목을 베었고, 한 마리의 말도 돌아간 것이 없었다. 문무대왕은 이미 영공(英公)과 함께 평양을 격파하고 돌아오며 남한주(南漢州)에 이르러 여러 신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