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

칠곡 종신성 : 감문국 정복의 중추성 감문국 정벌의 중추성인 종신성을 가려고 했지만 시간이 없어 낙산리 고분군에서 그 흔적만 보고 돌아왔다. 다음을 기약해야지. 칠곡군 약목면 관호리에 소재한 낙동강 서안의 백포성 가는 길 입구 구 25번 국도에 의해 고분군이 둘로 갈라졌다. 구 25번 국도변에 있는 낙산리 고분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로국이 감문국 정벌 이전에 이곳 낙동강 동안의 낙산리 일대 유력자들을 복속시켰을 것이다. 종신성이 소재한 냉산 제일 반듯한 고분 고분군 고분군2 고분군 뒤로 낙동강 서안에 자리잡은 선산읍의 진산 신산과 형제봉이 보인다. 주차장에서는 남녀가 데이트를 즐기고 있다. 괜시리 눈치 보이네 ^^ 고분 너머 냉산에는 종신성과 도리사가 있다. 구 25번 국도 너머 고분군 더보기
익산 낭산산성 : 백제 알야산현의 치소인가? <2010년 3월 21일> 낭산산성은 익산시 낭산면 낭산리 상낭마을 뒤산에 소재하고 있다. 3월 봄날 오후 낭산저수지 옆길로 낭산을 올라갔다. 무왕은 신라군이 관산성을 중심으로 남부여 동방 자연 방어성인 금남정맥 턱밑까지 치고 들어오자, 사비성에서 지금의 익산시 금마면 왕궁리 부.. 더보기
상주 성산산성(견훤성) : 후백제 견훤의 꿈이 서린 곳 상주 중화지역 방문 보너스로 성산산성과 청계사를 가기로 마음 먹었다. 49번 국지도를 타고 화북면 방향으로 가다가 화서면 하송리 송내마을 부근에서 오른쪽 계곡으로 가면 청계사가 나온다는 이정표를 보고 따라 들어가면 된다. 성산산성에 대해서는 상주시 홈페이지 글을 인용한다. 성산산성은 화서면 하송리와 화남면 동관리에 위치한 고성으로, 일명 견훤성 또는 대궐터라고도 불린다. 하송리와 동관리 사이, 해발 873m 고지의 남쪽에 있는 해발 710m 고지에서 746.3m 고지로 이어지는 능선과 그 서쪽 사면에 축성된 둘레 3340m의 토석성이다. 해발 873m 고지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는 능선에 이 성의 동쪽 성벽이 축성되었고, 746.3m 고지에서 서쪽으로 뻗은 능선의 북쪽을 안 대궐터, 그 남측을 바깥 대궐터라.. 더보기
옥천 지양리산성(1) : 신라군이 금강을 돌파하다 소지마립간 8년(486년) 상주에서 백두대간 화령을 넘은 신라군은 보은의 삼년산성과 옥천 청성면의 굴산성을 개축하고 금강 도하를 꿈꾼다. 특히 굴산성의 개축은 금강 지류인 보정천 중하류 일대를 장악함으로써 신라군의 금강 도하의 든든한 배후 기지를 구축한 셈이다. 옥천군 청성면 고당리는 보정천과 금강이 합강하는 곳이다. 고당리는 보정천의 협곡과 금강의 협곡이 만나는 곳으로 물살이 화살처럼 빠르고 소뿔처럼 거센 곳이다. 지금은 금강의 빼어난 절경 때문에 펜션들이 양안으로 군데군데 있다. 하지만 1500년 전 이곳은 남부여와 신라가 서로 창칼을 겨누는 국경이었다. 다행히 남부여 입장에서는 금강의 빠르고 거센 물살 덕분에 신라군이 쉽사리 건너오지 못하는 자연 방어막 역할을 하였다. 게다가 금강을 지나도 높은 산.. 더보기
대전 마산동산성 : 신라의 금강 도하를 저지하라 대전은 산성의 도시이다. 연유는 고대 삼국간의 대회전(450년 실직원 사건~668년 고구려 멸망)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470년 신라가 지금의 보은읍 근방에 삼년산성을 축조한 이래 남부여와 신라간에는 금강을 사이에 두고 전선이 상착을 이루었다. 정확히 말하면 대전의 동쪽인 대청호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는 형국이었다. 상착은 상호 교착을 이루었다는 의미인데, 대청호 남쪽(금강 상류) 옥천 근방의 금강 연안서는 신라가 금강을 넘어 관산성을 비롯한 옥천읍 서쪽 산줄기에 요새같은 쌓은 산성들을 구축하고 금강의 지류인 서화천을 넘어 대전 동쪽 산줄기인 식장지맥을 돌파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옥천의 남쪽인 금산 일대에서는 다시 금강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였다. 이처럼 나제간에는 금강을 두고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였다... 더보기
화성 당항성(당성) : 신라와 당나라 손을 잡다 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적혀 있다. "태종 무열왕 7년 여름 5월 26일, 왕이 유신, 진주, 천존 등과 함께 군사를 거느리고 서울을 출발하여, 6월 18일 남천정에 머물렀다. 소정방은 내주에서 출발하였다. 그는 천리에 달하는 병선을 이끌고 수로를 따라 동쪽으로 왔다. 21일, 왕이 태자 법민으로 하여금 병선 1백 척을 거느리고 덕물도에 가서 소정방을 맞이하게 하였다. 소정방이 법민에게 '나는 7월 10일 백제 남쪽에 도착하여, 대왕의 군사와 만나 의자의 도성을 격파하려 한다.'고 말했다. 법민은 '우리 대왕께서는 지금 대군이 오기를 고대하고 계십니다. 만일 대장군의 도착 소식을 들으신다면, 틀림없이 잠자리에서 식사를 하시고라도 달려 오실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정방은 기뻐하며 법민을 돌려 보내 신.. 더보기
괴산 미륵산성 : 신라군이 백두대간을 넘어 달천 상류를 장악하다 <2009년 12월 13일> 신라는 소지마립간 8년(AD 486년)에 삼년산성과 굴산성을 개축하였다. 신라가 상주에서 백두대간을 넘어 처음 개척한 군이 바로 삼년산군이다. 삼년산군의 치소는 지금의 보은군 보은읍 성주리의 삼년성이다. 삼년성은 백제가 초축하였고, 소지마립간대에 이르러 신.. 더보기
청주 낭비성 : 신라군이 드디어 금북정맥을 넘어 미호천에 이르다 <2009년 12월 6일> 486년 신라군은 상주에서 화령(백두대간)을 넘어 삼년산성을 수축하고 본격적으로 서진(백제 공격)과 북진(고구려 공격)을 준비한다. 특히 낭비성은 신라군의 북진과 관련하여 중요한 산성이다. 당시 신라군의 북진로는 삼년산성~노고산성(보은읍 산성리)~주성산성(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