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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추론/대회전

보은 삼년산성(1) : 신라가 백두대간을 넘어 삼한통일의 교두보를 마련하다 <2011년 1월 16일> 표지사진 - 삼년산성 서벽 전경 매우 추운 겨울 오후였다.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날씨라 다른 산성 답사는 미루고 산보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삼년산성을 향했다. 그런데 왠걸! 휑한 산성은 북풍을 그대로 맞을 수 밖에 없었다. 차라리 숲속 산책길이라면 바람 정도는 피할 수 있었.. 더보기
관산성 전쟁 (3) : 옥천 삼성산성~용봉산보루~동평산성~마성산성 ~ 관산성 전쟁 (2)에서 계속~ 표지사진 - 사진 중앙 뒤 능선이 고리산성(남부여군 주둔), 앞능선 좌측이 용봉산 보루, 우측이 관산성(신라군 주둔). 서대산 옥천의 동벽을 이루는 도덕봉에서 마성산까지 이어지는 장용지맥. 그 뒤로 옥천군 동이면 지양리 동쪽의 지맥이 금강을 가로막고 있다. 필자가 답사에 실패한 지양리산성이 있는 곳이다. 지양리산성은 보은의 삼년산성에서 보정천을 따라 내려오는 최단거리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신라군이 옥천으로 진출할 때 이 지양리산성을 넘어 일시에 습격하여 관산성을 장악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길은 최단거리이긴 하지만 금강이 길을 단절시키고 우람한 지맥이 가로막고 있어 통상적인 루트로는 부적합하다. 하지만 전격적으로 기습하기에는 좋은 루트이다. 지양리산성을 쌓은 것을 .. 더보기
관산성 전쟁 (2) : 옥천 삼성산성~용봉산보루~동평산성~마성산성 ~ 관산성 전쟁 (1)에서 계속 ~ 옥천 시내. 사진의 맨 좌측 아래 아파트가 산행을 시작한 현대아파트. 아파트 뒤로 보이는 구릉이 삼양리토성이다. 좌측 높은 산이 옥천의 진산 마성산으로 정지용과 육영수 생가가 있는 옥천 구읍이다. 옥천군은 신라 때 고시산군이다가 이후 관성군으로 바뀌었다. 동쪽 서쪽. 앞 나무를 경계로 우측이 고리산, 좌측이 노고성. 동평산성과 마성산성 용봉 오르다가 바라 본 서편의 식장산 좌측의 고리산과 북쪽 능선 끝의 삼성산성. 좌측의 노고성과 우측의 고리산성. 서화천이 휘돌아가는 구천의 구진베루 절벽. 북쪽 능선 끝 자락의 삼성산성 서쪽의 옥천읍 용봉 정상 용봉산 보루에서 바라 본 고리산성 용봉산성 안내석 옥천 시내 구진베루와 고리산 용봉을 내려가며 바라 본 석축의 흔적 동평산성 .. 더보기
관산성 전쟁 (1) : 옥천 삼성산성~용봉산보루~동평산성~마성산성 표지사진 - 우측 우람한 산이 고리산성이고, 맞은편 좌측 산이 노고산성이다. 관산성 전쟁 당시 남부여군은 이 일대에 포진하며 신라군을 위협하였다. 삼성산 등산 안내도. 옥천읍 삼양리 현대아파트 뒤편 산행길이다. 간만에 관산성 일대를 산행한다. 옥천읍 전경 정자 옥천읍 시내가 시원하게 조망된다. 동북방. 동남방. 4번 국도가 영동읍으로 향하고 있다. 4번 국도는 고대에도 나제간 주요 동서 교통로와 거의 일치할 것으로 사료된다. 신라군이 이곳 옥천 일대로 침공한 주요 루트로 보인다. 남쪽 4번 국도가 직선으로 향하는 사진 중앙의 산이 옥천읍, 동이면, 이원면의 경계가 되는 도덕봉(407m)이다. 도덕봉 남서 아래 고개가 솔치인데, 고대에는 이 길로 해서 영동으로 갔다. 그런데 솔치 주변에 도적떼가 극성을 부.. 더보기
관산성 전쟁에 대하여 관산성 전쟁 1) 관산성 전쟁에 대한 반도와 열도의 현존 기록 진흥왕 15년(554) A. 백제의 왕인 명농(明襛)이 가량(加良)과 함께 와서 관산성(管山城)을 공격하였다. 군주(軍主)인 각간(角干) 우덕(于德)과 이찬(伊湌) 탐지(耽知) 등이 맞서 싸웠으나 전세가 불리하였다. B. 신주(新州)의 군주인 김무력(金武力)이 주(州)의 군사를 이끌고 나아가 교전하였는데, 비장(裨將)인 삼년산군(三年山郡)의 고간(高干) 도도(都刀)가 급히 쳐서 백제왕을 죽였다. C. 이에 모든 군사가 승리의 기세를 타고 크게 이겨서 좌평(佐平) 네 명과 군사 2만 9천 6백 명의 목을 베었고, 한 마리의 말도 돌아간 것이 없었다. 문무대왕은 이미 영공(英公)과 함께 평양을 격파하고 돌아오며 남한주(南漢州)에 이르러 여러 신하.. 더보기
보은 매곡성과 호점산성(2) : 신라가 금강 도하를 꿈꾸다 <2010년 10월 17일> ~ 보은 매곡성과 호점산성(1)에서 계속 ~ 표지 - 호점산성 들어가는 성안골 입구과 호점산성 전경 호점산성은 둘레가 2.5km에 육박하는 대청호 연안 최대의 산성이다. 매곡성과 호점산성은 고려말 무신(武神)으로 추앙받는 최영 장군에 대한 전설이 깊이 베어있는 비밀스런 성터이다.. 더보기
보은 매곡성과 호점산성(1) : 신라가 금강 도하를 꿈꾸다 남부여의 일모산군(치소는 지금의 청원군 문의면 양성산성)에는 두개의 속현이 있는바, 두잉지현(치소는 지금의 연기군 남면 미호천 연안의 당산성)과 미곡현이다. 보은 매곡성은 바로 남부여 미곡현의 치소이다. 보은 매곡성은 지금의 보은군 회인면 소재지 회인천이 남쪽으로 굽어흐르는 동쪽에 솟은 해발 186.5m의 아미산 위에 축조되었다. 그래서 매곡성은 산이름을 따서 아미산성으로도 불린다. 신라가 남부여의 미곡현 치소를 정복한 후 현의 이름을 변경하여 매곡현으로 불렸다. 이 때문에 미곡성보다는 매곡성으로 더 잘 알려지게 되었다. 표지사진 - 보은 매곡성 전경 남부여 미곡현은 금강의 조그마한 지류인 회인천(최초 이름은 웅암천) 일대의 변경이었다. 지금의 행정구역으로는 보은군 회인면과 회남면 일대이다. 당시 나제간.. 더보기
천안 사산성(2) : 신라가 여제의 화약고에 뛰어들다 <2010년 10월 15일> ~ 천안 사산성(1) 에서 계속 ~ 사산성 정상에서 바라본 성거산. 성거산성이 있다. 위례산(523m). 위례산성이 있다. 정상의 헬기장 북쪽의 안성천 유역. 안성천을 사이에 두고 여제간에는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이 사이를 신라가 차지한 것이다. 안성천 유역의 평택. 평택은 고대로.. 더보기
천안 사산성(1) : 신라가 여제의 화약고에 뛰어들다 <2010년 10월 15일> 서울에서 내려오는 길에 안성나들목에서 나와 1번 국도 가에 있는 국보 7호 <봉선 홍경사 갈>을 둘러보고 사산성에도 올랐다. 표지 - 사산성 정상에서 바라 본 서쪽의 금북정맥 “소나는 백성군 사산 사람이었다. 그의 아버지 심나는 힘이 남보다 뛰어났으며 몸이.. 더보기
모산성 전투(2) : 신라가 남부대간을 넘어 섬진강 상류 장악을 시도하다 <2010년 10월 10일> ~ 모산성 전투(1)에서 계속 ~ 표지 - 봉화정에서 바라본 장수 번암면 소재지 아막산성(모산성) 산행을 마치고 짓재(복성이재)에서 장수 번암면 방향의 751번 지방도를 타고 봉화정에 도착한 후 번암면 소재지인 노단리를 조망해본다. 번암면 소재지 북쪽에는 동화호가 있다. 백두대.. 더보기
모산성 전투(1) : 신라가 남부대간을 넘어 섬진강 상류 장악을 시도하다 <2010년 10월 10일> 산에 오르기엔 조금 더운 날이긴 해도 가을 하늘을 마음껏 느낄 수 있어 좋았다. 가끔 가을 마무리에 바쁜 꽃뱀들이 나와 하늘도깨비를 놀래키기는 해도 말이다. 오늘은 백두대간을 오르기로 한다. 하늘도깨비가 대간 산행을 시작한 건 아니다. 대간에 산성이 있으니 오르는 거다... 더보기
오산 독산성(2) : 부여로와 나당로의 십자 결절지를 장악하라 <2010년 8월 27일> ~ 오산 독산성(1)에서 계속 ~ 서벽 구간 수로 수구 서벽 산책길 서벽 치성 산책 나와 운동하는 부부 서벽 치성 서쪽의 황구지천이 자연 해자를 이루며 발 아래로 흐르고 있다. 화성시 정남면 일대 서문2 산성의 서북쪽 조망 서문2를 나오서 서벽을 바라보다. 산성의 서북방. 북쪽으로.. 더보기